3-8. [생각] 드러나는 품격

생각

by 오 영택

# 드러나는 품격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모순이 있다. 계획은 멋지게 세우지만 게으름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게임이나 술 약속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습, 시험성적이 중요하지만 당장의 랭크전을 포기할 수 없는 모습, 건강하길 원하지만 담배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 살을 빼고 싶지만 야식을 찾게 되는 모습, 돈이 안 모이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한정판 게임 아이템을 사는 모습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순적인 상황들이다. '내일이 있으니까'라며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지만 한 순간의 쾌락 앞에서는 성실한 아이러니한 모습들을 몸소 경험한다. 결심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주변과 자신에게서 모순적인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말'을 하며 의사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더 쉽게 모순이 나타나곤 한다. 늘 행동보다는 말하기가 쉬운 까닭이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관계에 따라 신뢰하는 정도가 다르다. 상대에 따라 다르게 대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친밀함과 상황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관계의 깊이나 신뢰하는 정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다르게 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모습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모습에 대해 누군가는 한결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행동이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간혹 어떤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저 사람은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순적인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순은 본래 하나이다.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진짜 모습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보다, 그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을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게 더 좋다. 어찌됐던 모순적으로 비쳐지는 모습도 자신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순적인 모습을 발견했을 때나 누군가 모순적이라며 지적할 때 어떻게 입장을 정리하느냐는 중요하다. 모순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모순적인 모습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생각은 필시 말과 선택 등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모순같아 보이는 모습은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자연스러움이다.


사람은 말로 품격을 보여주고 행동을 통해 품격을 드러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품격은 필시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는다. 품격에서 품(品)은 입(口)이 쌓여서 구성된 단어이다. 다시 말해, 품격이란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멋진 말이 품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생각이 품격을 결정짓는다. 화려한 말만으로도 품격있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 품격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19년 3월 담벼락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내 방과 담벼락 사이 좁은 공간에 앙상하게 많은 줄기가 얽혀 있었다. 죽은 것처럼 말라 있었다. 그래서 지저분하게 뻗어나간 줄기들만 꺾어서 정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름이 되자 작은 포도송이가 이곳저곳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먹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나무가 포도나무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가을에 다다를 무렵에는 포도송이를 수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열매를 보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말로 표현되고 드러나는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죽은 것 같았던 나무가 열매를 맺은 것처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품격은 드러날 수밖에 없느 것이다.


우리는 품격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여야를 떠나 청문회나 의혹에 대한 규명의 자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하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다. 놀라운 선택적 기억력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사회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품격 없는 모습들은 많다. 공적으로는 겸손하지만 뒤에서는 갑질하는 모습,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충실히 의무를 다하지는 않는 모습, 정의를 외치지만 약자를 내치는 모습, 평등을 말하지만 특혜는 못 내려놓는 모습, 권한은 탐내지만 드러나는 무능력함 등 수많은 모순적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품격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품격 떨어지는 모습은 한숨을 자아내지만 반듯한 품격은 반드시 빛을 발한다. 품격은 사람을 불러모은다. 그러나 품격은 인기에 달려 있지 않고 옳음에서 빛을 발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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