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북한강 종주길, 남한강 종주길, 오천강 종주길, 금강 종주길, 동해안 종주길, 제주 종주길, 4대강 종주길, 영산강 종주길, 섬진강 종주길. 모든 자전거 종주길을 완주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인증구간 길이만 해도 1,857km이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나서도 일행들을 모아 종주길 여러 곳을 탔으니 못해도 3,000km는 족히 라이딩 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종주길 라이딩을 시작한 것은 여행이자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2017년 12월 12일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기에 들었던 마음이었다. 마침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의 황금연휴라 불리던 추석기간이라 함께 갈 인원을 모으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4명이서 서울-부산 라이딩이 첫 도전이었다.
처음 장거리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가다가 타이어 터지면?”, “사람 치면?”, “다른 자전거와 부딪히면?”, “날씨가 안 좋으면?”, “브레이크가 고장나면?” 등 사고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했다. 우려의 말들도 많았다. “사고나면 어떻게 하려고?”, “체력이 안 될 거야”, “생각보다 힘들거야” 등 사고와 힘듦에 대한 말들이었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터라 두려움이 커져갔다. 드라마에서 보면 트럭이나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사고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그러나 처음으로 여행을 마음먹은 만큼, 그리고 여러 경우들을 고려해 이것저것 챙겼다. 구간별 예상시간이나 오르막 정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등을 살펴봤다. 그러나 어느 구간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과 같은 '사고'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일행들도 처음이었던 터라 많은 물품들을 챙겼다. 일회용 샴푸, 파스, 여벌 옷, 속옷, 타이어튜브, 각종 공구, 라이트, 후미등, 공기주입기, 보조배터리, 충전기 등 가방 한 가득 채웠다.
각자의 역할과 물건들을 구비하고 역할을 나누고 출발했다. 우리의 속도는 느렸다. 평균 시속 10km였다. 하루 10~14시간 정도 라이딩하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무거운 가방과 많은 오르막, 중간중간 함께 찍는 사진으로 인한 늘어짐이었다. 힘들었지만 매일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어떤 구간에서 힘들었는지, 어떤 풍경이 좋았는지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으며 라이딩을 이어갔다.
처음이든 나중이든 함께 하는 라이딩의 묘미는 서로 다른 것에 감탄하고, 함께 얘기할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힘들었던 구간에 대해 회고하며 하소연하며 웃는 시간을 누린다. 이런 기억과 순간들이 서로에 대해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만들어 준다. 뿐만 아니라, 각자 힘든 순간이나 상황에서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볼 수 있다. 자는 시간 빼고 며칠을 함께 보내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임을 경험하는 게 함께 하는 여행의 묘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쳐오는 가운데 오르막길을 만나면 “10번만 더!” 하며 페달을 밟으며 격려한다. 옆에서는 “하나, 둘, 셋, ... 한 번만 더!” 하며 숫자를 세준다. 먼저 오르막을 오르면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일행을 기다린다. 일행이 거의 다 올라오면 “고생했다”라며 박수쳐줬다. 중간중간 힘들 때마다 에너지 바와 이온 음료를 먹으며 감탄하기도 했다.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다고?!” 하며 쉼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하는 여행인만큼 마음의 불편함도 생기기 마련이다. 도착까지 한참 남았는데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초조해지기도 한다. 야간 라이딩을 대비해 라이트를 준비했지만 추석이었던 터라 지방은 금방 어두워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오후 6시만 되면 캄캄해졌다. 가로등도 많지 않아 라이딩이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 가득한 가방과 느린 속도 탓에 점점 지쳐갔다. 지쳐갈수록 인내심이 줄어드는 것도 경험한다.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즈음에는, 2~3시간을 넘게 달려도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없어 일행 중 한명은 울기까지 했다. 추석기간이라도 이럴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당혹스러웠고, 비상용 에너지 바는 없고, “내가 왜 사서 고생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행들이 번갈아가며 가방을 매줬다. 서로 돌아가며 앞뒤로 가방을 두른 채 목적지를 향해 갔다.
이처럼 함께 여행한다는 건,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때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동시에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순간 짜증나서 속도를 내 거리를 두었다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일행들을 기다린 적도 있다.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야간 라이딩을 하며 누군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을 때, 화를 낸 적도 있다. 걱정되는 마음과 내가 주도한 모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때론 목적을 잊은 때도 있었다.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는 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자는 암묵적인 약속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빨리 도착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기다리며 함께 가는 게 맞음에도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함께 한다는 건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으며, 빨리 가자고 보챈다고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동시에 자신의 약한 모습이나 부끄러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함께 하기에 참아보고 이해를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내적 성장과 나 역시 이해받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때의 순간을 회상하며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추억으로 남는다.
혼자 라이딩을 떠난 적이 있다. 6월 초, 목포에서 세종, 세종에서 연풍, 연풍읍에서 안동댐까지 매일 100~140km를 라이딩 했다. 여름이라 일찍 해가 뜨고 늦게 지는 만큼 10시 즈음 여유롭게 출발해도 라이딩하는 게 문제가 없었다.
혼자 라이딩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단연코 '자유로움'이다. 쉬고 싶으면 그늘진 곳에서 마음편히 쉬었다가 다시 출발해도 괜찮다. 또한, 목적지 역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가도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 다시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다른 것 신경쓰지 않고, 풍경을 보며 마음껏 감탄하며 눈에 담을 수 있다. 이런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나만의 속도로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이처럼 자신만의 호흡으로 나아가는 게 진정한 자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자유롭다는 느낌외에도 다양한 경험들을 맞이했다. 연풍읍에서 안동댐까지 가는 날에는 막막함을 느낀 적이 있다. 70km를 탔음에도 아직 반밖에 안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일이었다. 분명 한참을 달렸는데, 반이나 남았다는 막막함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늘진 곳에 대(大)자로 누워 목적지를 바꿀지, 예정대로 갈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했다. 경험적으로 구비해놓은 비상식량을 나누어 먹으면서 가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관리하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이처럼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상황을 점검하며 움직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함께 떠나는 것에 비해 변수는 적기에 비교적 결정을 내리기에도 수월하다. 동시에 이런저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된다. 풍경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나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기기도, 소리를 내어 '가자! 가자!' 하면서 스스로 다독이기도 했다. 때론 200번씩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자유(自由)'는 스스로 자(自)와 말미암을 유(油)가 합쳐진 단어이다. 즉, 자기 스스로가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느끼는 마음이나 찾아오는 생각, 그로 인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자신만의 호흡으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시선을 마음껏 옮길 수 있는 것, 사색에 잠기는 것, 감탄하는 것, 머물고 떠나는 것과 같은 결정과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다. 이로 인해 마주하는 상황과 변화에 대해서도 직면하겠다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유란, 외부 조건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