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12년간 교회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주로 구성원들을 가르치고 프로그램 기획하는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10여년간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지식을 정립하는 데 힘썼다. 처음부터 리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열심이 있는 형들과 누나들 밑에서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배우게 되었다. 물론 항상 좋은 리더를 경험한 것은 아니다. 좋은 리더를 만났던 만큼, 미흡한 리더를 만나기도 했다. 여러 리더들을 경험하면서 이들에게 존재하는 차이를 발견하였다. 바로 자발성이었다. 좋은 평가를 받는 리더들은 스스로 결정한 사람들이었고, 그렇지 못한 리더들은 관습적으로 계속 하거나 상황에 의해 결정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좋은 리더라고 느낀 리더들은 늘 열심이었다. 배운 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내용들까지 살펴보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표현으로 지식을 공유해줬다. 이런 리더들에게 질문할 때면 만족스러웠다. 고민한 흔적이 보였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가정을 얘기하며 공유해줬을 때 함께 공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지점에서 어떤 리더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리더를 하면 회의감이 깊게 찾아올 때가 있다. 서비스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번아웃일수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진 탓일 수도 있다. 사실 리더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 가깝다. 기획하고 팀원들을 신경쓰고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모든 서비스 업무가 힘든 게 아닌 것처럼, 회의감을 느끼게 만드는 경우는 따로 존재한다. 바로 진상같은 사람을 대할 때이다.
자신의 권리는 강하게 주장하지만 의무나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진상이라고 부른다. 서비스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진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자신의 편의에 대해서는 빠르게 계산하지만 다른 사람의 배려와 수고에 대해서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또한 늘상 불평을 표출하기 바쁘고 요구사항을 계속 제기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모된다. 기획하고 진행할 때 또 어떤 불평이 들어오지 않을까 신경쓰게 되는 모습을 발견할 때 마음이 힘들었다.
리더를 하면서 마음이 크게 힘들었던 때는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처음으로 리더를 했을 때 있던 일이다. 팀원 중 한 명이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일찍 가야한다고 해서 보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다른 모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리더모임에서 듣게 되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고,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모임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또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터라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 매번 경직되어 있었고 유연성도 부족했다. 이런 이유들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떤 리더가 되길 원하는가?" 자문하기 시작했다. 자극이 되기도 했고, 나만의 특출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미흡함에도 함께 해주고 있는 다른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나만의 강점으로 만들고 싶은 요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리더십'에 관한 여러 책들을 찾아 읽었다. 공통점으로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모임의 이유를 분명히 하라. 다시 말해, 왜 구성원들이 시간을 내어 모임에 참여하는지, 이 모임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모임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지적 만족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줌으로써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목표를 분명히 하라. 어느 모임이건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고 상기시키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친목만을 위한 모음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넷째, 역할을 분배하라. 리더는 진행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리더의 궁극적인 역할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게 리더의 과제이다. 어떤 사람과 함께 가기를 원하는가,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를 파악해야 함께 나아갈 수 있다. 리더는 만능일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리더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방향을 잃거나 성과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리더의 책임이다. 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점,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한 점, 개선되지 않는 점 등 리더가 책임져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잘 됐을 때는 유리창을 통해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바라보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거울을 보라”
이를 기반으로 어떤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싶은지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공해줄 수 있는 나만의 강점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 때 가치롭다고 여기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하기를 기대하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 마음이 편한지,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는지 등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결국 '리더'는 단지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매니저의 역할이 아니다. 자신만의 강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지향하는 바를 이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씁쓸했던 사건을 계기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리더로서, 그리고 나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두 번째로 마음이 힘들었던 이유는 "리더니까 비난받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이 말에 깊은 염증을 느꼈다. 한 공동체에서 8년간 리더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이외에도 스터디 모임이나 독서 모임을 꾸준히 운영해왔다. 좋은 평가 덕분에 다른 공동체에서 청년부 간사로 청빙제안을 받고, 모임을 만들고 리더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제안받았다. 공부하는 것을 지향하고 배움을 중시하는 곳이라 수락하여 공동체를 옮겼다.
1년간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갈까 생각하였지만, 이곳이 나의 가치관과 신념에 더 부합하여 남아서 활동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다음으로 온 후임분과 함께 활동했다.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스터디 모임을 운영해나갔다. 또한 리더로서 계속 공부하고,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는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이 있었다. “함께 활동하며 노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등장했다. 확실히 노는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부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볼멘소리처럼 계속 등장했다.
새롭게 나타난 일행들의 주장이었다. 기존에 있던 멤버들도 그들과 함께 가기 위해 의견을 수용했다. 그렇게 활동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나의 성향과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기에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친목과 친밀함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전 공동체에서도 몇 차례 겪었던 상황이었다.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친밀하게 계속 연락하며 지내게 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게 인간관계인데, 단지 활동만 같이 한다고 친밀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속얘기를 할 수 있고,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오래가는 게 친밀해지는 것인데, 이런 주장은 친해지는 것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나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활동하다보면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속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친밀해지는 과정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반대했던 이유는, 평일에는 연락하지 않다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일요일에만 함께 활동하자고 하는 것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친밀한 사람들은 주중에도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며 인생에 대한 고민들을 나눈다. 함께 놀러가거나 하지 않아도 진중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며 내적 친밀감이 쌓여 친해져 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진실함이 보이지 않았다. 바라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의 성향과 방법의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활동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나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고, 해야 할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으니 제외시켜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게 좋게 보일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시나 뒤에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시간 리더를 해온 사람이 반대를 하니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리더가 함께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 “다같이 하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 모르느냐” 등 비난이 뒤따랐다. “리더는 욕 먹는 게 당연하다”, “리더니까 감안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를 압박했다. 이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었다. 아니, 이미 경험했던 것이지만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이유가 불분명해지는 활동을 관습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왜 해야 하는가?',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등으로 이유를 명확히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 대한 제기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방향성보다 안정감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유가 뭐가 됐든 리더는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는 집단의식을 갖고 있음을 절감하게 됐다.
동시에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리더로 활동하면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였을까. 상대적으로 오래 본 사람의 얘기보다 자신과 직접 대화한 일행의 얘기만 듣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었다. 따로 밥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하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배신감과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허탈한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시간이 지나 그렇게 주장하던 사람들은 떠났고,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리더의 자리는 정말 쉽지 않구나를 절감했다. 늘 쉬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리더니까 당연히 욕 먹는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내 모습을 직면할 수 있었다. 내 모습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하게 있지만,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 언어이다.
12년간 가르치고, 따로 스터디 모임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모임 진행 횟수만 1,500번이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서 발견하게 되는 점은 리더는 소외당한다는 사실이다.
리더를 하다보면, 늘 문제에 마주한다. 그러다보면, 리더들끼리 모여서 함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얘기들이 주를 이룬다. 또한, 모임을 진행하면서 팀원들을 신경쓰고, 그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끝마칠 시간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리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은 다음으로 밀린다. 발생한 사건이나 문제에 신경쓰거나 좀 더 신경 써야 할 사람에 집중하다보면 잘하고 있는 리더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리더는 점점 메말라간다. 많은 이들 속에 있지만,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경험한다. 리더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리더 역시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리더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내 리더가 다른 리더보다 더 뛰어났으면 좋겠고, 배울 점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더는 슈퍼맨, 원더우먼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리더는 극히 드물다. 리더가 외로워지고 바빠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임에도 그들 역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리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에 따라 시간을 가치롭게 보낼 수 있고, 힘겹게 버티는 것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더에게는 책임이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은 책임지는 것을 번거롭거나 버거운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결과까지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다. 기획하고 운영한 사람만이 질 수 있는 게 책임이다. 반문이나 결과에 대한 의문과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리더여야 한다. 리더는 방향을 설정하고 동기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리더는 더 많이 생각하고 늘 고심해야 한다. 불평과 불만의 언어들이 늘상 마주하게 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리더에게 애씀과 고뇌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렇다고 팀원들과 모든 것을 공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스스로 만든 리더에 대한 이미지일 수도 있고, 그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혼자만의 분투일수도 있다. 그렇기에 리더는 자신을 늘 돌보아야 한다. 문제와 다른 사람에 신경쓰느라 자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소외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관심을 줄이는 소외 역시 리더가 메말라가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리더는 역소외 현상을 겪게 된다. 리더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