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1) 독서와 글
2) 12년간의 리더생활
3) 국토종주 라이딩
4) 생명
5) 신뢰받음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간간히 책을 읽기는 했지만, 흔한 새해결심처럼 오래가지 못했다. 지속적이지 못했던 건, 나만의 분명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 좋다니까 목표로 삼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또한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오는 데 큰 지장이 없고, 시간은 늘 부족하게 다가왔기에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러다가 대안학교 독서클럽에 1주일간 스태프로 참여했다. 일행들과 함께 참여해서 그곳에 계신 교장선생님과 점심을 먹는 시간이 주어졌다. 일행 중 한 명이 이렇게 질문했다.
책 읽으면 정말 인생이 변하나요?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하게 답변해주셨다.
네. 무조건 변해요. 우선 딱 100권만 읽어보세요.
읽었는데도 안 변하면 따지러 오세요.
간결한 답변이었지만, 확신이 묻어 있었다. 이 답변을 듣고, 속으로 읊조렸다. “안 변하면 따지러 와야지”
그날 이후, 책을 작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당시 노트북이 없던 터라, 마음에 드는 문장들과 처음 접한 개념들을 노트에 손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200페이지 가량의 자기계발서 도서를 읽는데도 1주일이나 걸렸다. 마음은 급했지만 습관의 부재로 조금만 읽어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계속 읽어나갔다.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100권을 채 읽기도 전에 "따지러 가야지"라는 마음이 사라졌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지나온 시간을 다르게 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나를 지지해주는 문장들과 살아가고 싶은 태도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독서를 습관에 들이는 방법으로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는 표현에서 답을 얻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를 실행에 옮겼다. 늘상 들고 이동했던 휴대폰을 넣어두고 책을 들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앉아서 이동하는 동안 책을 폈다. 그러자 점차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낯설었던 독서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방법을 찾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는 게 단순히 지식만 늘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고, 현상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 또한, 희망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과거를 회상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독서가 단순히 글자를 읽는 활동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독서를 통해 고민이 해결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모든 사람들의 얘기에 맞추다보면 어느 누구에게도 맞출 수 없게 된다.”, “죽은 개는 아무도 걷어차지 않는다.”와 같은 문장들은 결정을 내리는 판단 근거들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에 하나하나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와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또한 자신의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은 힘이 되기도 한다.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며 읊조리듯 문장들을 상기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힘이 되는, 혹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표현들은 마음에 자리잡는다.
이처럼 문장은 마음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문장을 만나면 안도감과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표현에 공감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마음의 고립감을 해소해주기도 한다. 동시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에 나의 힘듦을 절대화시키지 않고 상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공감받고 힘이 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외에도 독서를 하면 좋은 이유들에 대해 소개해주는 영상들은 많다. 또한 “독서하면 좋지”라는 말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책을 읽으면 좋다는 것을 느낌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비례해서 독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 역시 많다.
책을 읽으면 피곤하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대해서는 '신경가소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경가소성'에 따르면,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는 내용이다.
독서는 노동이다. 단순한 눈의 움직임이 아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피곤해지고 잠이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부분은 독서가 익숙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서 자체가 뇌 입장에서는 상당한 노동을 요구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은 '머리가 안 좋아서'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독서를 할 때 우리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언어를 처리하고, 전전두엽이 집중력을 유지하며 논리적 사고를 담당한다. 측두엽은 언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두정엽은 시각적 주의를 조절한다. 또한 후두엽이 글자를 인식하는 동안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고, 편도체는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다. 이 모든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독서는 노동이어야 한다. 노동을 하면서 숙련도와 유연성이 늘어나는 것처럼, 독서는 사고력과 이해력이 향상시킨다. 노동에서의 숙련도는 같은 시간 대비 더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라면 유연성은 일이 되게 만드는 능력과도 같다. 이와 같이, 독서에서의 이해력은 글의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숙련도에 해당하고, 사고력은 다양한 상황에서 그 지식을 응용하고 연결시키는 유연성에 해당한다.
독서 초기에는 주로 이해력이 발달한다. 이후 독서량이 늘어나면서 점차 사고력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해력과 사고력은 독서를 하지 않아도 갖출 수 있는 역량이다. 맥락을 이해하며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 등 여러 영상 매체들의 맥락을 이해하며 시청하면서 이해력과 사고력은 자연스레 향상하기 마련이다. 또한, 집중적으로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다만 대화나 영상 매체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 되기 쉽다. 영상이나 대화에서는 상대방이나 제작자가 정한 속도와 순서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영상을 멈춰가며 생각하거나, 대화 중에 질문을 던지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만큼 온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에는 능동성과 깊이, 지속성에 있다. 대화나 영상 매체는 대부분 즉석에서 소비하는 형태를 띤다. 흐름을 놓치면 다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불편함을 겪는다. 반면 독서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충분히 생각하며 읽을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읽을 수 있고, 중요한 부분에서는 멈춰서 깊이 사유할 수 있다. 반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넘어가기'를 선택할 수 있다. 읽기의 주체가 본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독서든 영상 시청이든 능동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독서는 노동이기 때문에 성과가 뒤따라야 한다. 독서에서의 성과는 바로 글쓰기이다. 독서를 하다보면 배경지식이 쌓이고, 이해력이 늘어남에 따라 읽는 속도가 빨라짐을 경험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읽으면 연결되는 내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사고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계속 독서만 하는 게 그 모습이다.
읽기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기본 도구 중 하나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읽은 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할 때 일어난다.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읽은 것을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서 얻는 가장 큰 이점은 구체화이다.
글쓰기는 사고의 정리 과정이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가시화하는 활동이다. 글을 쓰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뿐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독서를 하면서, 살아오면서 느낀 점들을 생각하면 쓸 얘기들이 분명 많음에도 글자로 눈에 보이는 순간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문장으로 표현하면 된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과 표현, 느낌이나 감정, 생각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 막막함을 경험한다.
일을 하면서 고민하고 시도해보면 자신만의 역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10여년간 독서를 하면서 독서 모임을 진행해왔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써야 할 일이 늘어났다. 읽은 책을 요약하고 질문을 만들면서 글쓰기가 익숙해져갔다. 글을 늘 술술 써내려가지는 못하지만, 처음 글을 썼을 때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큰 소득은 독서를 하면서 많이 접했던 내용들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억 저편에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조합해야 한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례들이나 반론들을 찾는 애씀이 필요하다. 나아가 글을 쓰면서 관련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만큼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글쓰기는 최고의 독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눈에 보이도록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하듯 내용들을 다시금 읽게 되고 훨씬 기억에 남는다.
결국, 독서는 글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독서는 삶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료여야 한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읽다가 멈추게 되는 그 문장과 맥락을 사유함으로써, 글로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정립해야 한다. 정립된 사고의 틀이 자신을 붙잡아준다. 비교의 언어들과 가벼운 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자 노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