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가치관] 태도의 중요성

가치관

by 오 영택

4) 태도의 중요성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탁월함은 가르칠 수 없다.


이 말은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에서 등장한다. 소크라테스가 덕(아레테)의 전수 가능성에 대해 깊이 탐구한 끝에 내린 결론과도 같다. 그는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다면, "왜 훌륭한 정치가들의 자녀들이 항상 훌륭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지도자도 자신의 덕을 자녀들에게 온전히 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탁월함은 단순히 특출한 능력이나 훌륭한 성과가 아니었다. 또한 기술이나 지식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목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격적 완성을 의미한다. 이런 덕목들은 수학 공식이나 기술처럼 일방적으로 배울 수 없고,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각자가 삶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깨달으며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통찰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탁월함은 성공 비결이나 행복의 공식같이 정해져 있지 않고 주입받을 수 있는 정보나 기법이 아니다. 진정한 탁월함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들을 통해 형성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유튜브에는 '누구나 쉽게 성공하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성공방법, 고득점 방법과 같은 영상들이 많다. 반면에 소크라테스가 말한 탁월함, 즉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목들에 대한 영상들에는 이런 수식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의 기원' 과 같이 역사와 사례들에 관한 영상들이 대다수다. 다시 말해, 탁월함은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를 근거로 용어의 기원을 설명한다.


빚어가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했듯이, 탁월함은 개인의 내적 성찰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성품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치관에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상황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결국, 인생의 주체자로서 어떻게 직면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태도는 스킬(skill)과도 같다.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받을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오직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역할모델로 설정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서 반면교사로 삼아 체화해나갈 수 있다. 또한, 소설이나 드라마 등 여러 매체들의 캐릭터와 사례들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기술(technology)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이나 지식을 지칭한다. 반면, 스킬(skill)은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개인적 능력을 뜻한다. 기술을 바탕으로 하되, 개인의 경험과 숙련도가 더해진 것을 스킬이라고 한다. 어떤 기술도 단순히 관찰하고 듣는 것만으로는 숙달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숙련도가 향상되고 유연성이 높아진다. 이와 같이, 태도 역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나만의 스킬이 된다.


결국, 태도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원칙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순간들에서 발현되는 살아 있는 자세다. 도예가가 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태도 역시 일상의 크고 작은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다듬어진다. 이렇게 형성된 태도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인지 멀리하고 싶은 사람인지 판가름 짓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너지

어떤 일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누구'와 함께 하느냐일 것이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질과 기분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각 사람의 태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매번 불평섞인 평가만 하는 사람이나 “여기보다 다른 곳이 나았겠다”라는 식으로 비교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는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함께 있다보면 즐거운 마음도 사그라든다. 만나야 할 일이 생기면 “또 불평을 늘어놓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해도 자기 얘기로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역시 대화가 즐겁지 않다. 자랑을 늘어놓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대화는 빨리 끝내고 싶어진다.


단지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막연하게 긍정적인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때론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서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때론, 리액션 봇(reaction bot)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일하거나 여행을 할 때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막연하더라도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낫기는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즐겁고 여운이 남는 대화와 경험은 단지 어느 성격의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 대화가 즐겁고 일을 할 때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은 이른바 '알잘딱깔센'인 사람이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사용하는 줄임말이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은 표현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일의 흐름을 알고 있어서 어떤 도구나 도움이 필요한지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 대화의 흐름이나 표정을 읽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모습,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다른 사람을 부담을 덜어주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이른바 '일할 맛'이 난다. 어디서든 예쁨받으며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과의 경험은 큰 여운이 남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능동적이라는 데 있다. 초기에는 시킨 일 위주로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도 파악해나간다. 이후로는 찾아서 일을 해나가며 성과로 보여준다. 또한, 현실적이기도 하다. 직접해본 만큼 역량이 늘어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기에 열심히 살아간다. 또한, 현실이 요행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주어진 일에 집중한다. 뿐만 아니라, 노력한 만큼 결과가 항상 뒤따르는 것이 아님을 앎에도 열정을 갖고 살아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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