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치관] 진정성보다는 진실성

가치관

by 오 영택

2) 진정성보다는 진실성


현대 사회는 '진정성'을 강조한다. 가치관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역시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함일 때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자기중심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의 감정, 욕구, 꿈만이 중요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는 것이다.

또한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히틀러 역시 상당한 진정성을 가지고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확고했고, 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진정성' 있게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진정성이 가져온 결과는 인류 역사상 끔찍한 참극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이는 진정성 자체가 선(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진정성은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더 강하고, 더 일관되게 나아가게 할 뿐이다. 만약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진정성은 오히려 더 큰 해악을 낳을 뿐이다.


일상 속 진정성의 함정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진정성의 함정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단이나 환경단체나 비건 단체가 자신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하거나 장사를 방해하는 모습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 매우 진정성 있게 행동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종교적 신념 등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동기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진정성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문제가 된다.

극단적인 동물단체나 환경단체는 영업중인 매장에서 시위를 하며,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살육을 일삼는 것처럼 말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에 분노한 몇몇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햄버거나 치킨을 먹는 형태로 응수한다. 동물단체나 환경단체의 신념과 가치관에 일부는 동의하지만, 전부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을 무시한 채, 그저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런 모습이 반복될수록, 그들의 주장하는 모습에는 도달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한 채 행동하기에 '도덕적 우월주의자'라는 조롱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이들로부터 파생된 이단들도 존재한다. 종교적 신념의 모습은 무척 다양하게 드러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동시대에서도 많은 사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기독교인들조차 부끄러워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혼잡한 거리에서 외치는 모습, 자신에게는 절대적인 능력과 권한이 있다며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거나 성착취를 일삼는 모습,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악마들의 놀이라고 치부하며 '심판받았다'고 주장하는 모습, 산의 통행을 무단으로 제한하고 돈을 받는 모습, 대학가나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운동모임이나 심리검사로 청년들을 꾀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 신을 위해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모습, 다른 종교인들을 학살하거나 살해하는 모습 등 다양하다.

이들의 열심은 가히 따라갈 수 없다. 이보다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신념은 절대적이기에 타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성

이처럼 진정성에는 한계가 있다. 오직, 자신이 갖은 가치관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방향으로 오랜 시간을 걸어왔기에 진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띄는 진정성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거부감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진실성'이다. 진실성은 진정성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진정성이 주로 자신의 내면과 신념에 집중되어 있다면, 진실성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l 진정성(Authenticity)
단순히 솔직한 것을 넘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며, 외부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실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며, 사회적 기준이나 기대에 억지로 맞추기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l 진실성(Truthfulness)
개인의 내면과 행동이 일치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진실에 부합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 감정, 가치관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을 포함한다. 즉, 진실성은 외부의 시선이나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를 말한다.


진실성은 우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때로는 모순적인 마음을 갖는다는 것,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님을, 자신의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는 지혜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진정성만 추구한다면 “나는 환경을 사랑하므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성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내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현실적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우선순위가 있을 수 있다. 우선, 나부터 먼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설득하는 형태로 동참을 유도해보자”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을 예로 들어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진정성만 추구한다면 “내 신앙이 절대적 진리이므로 모든 사람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성을 고려한다면 “내게는 이 신앙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을 수 있다. 내 신앙을 강요하기보다는, 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성은 타인의 존재와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 사람 나름의 맥락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진실성의 특징들

앞서 살펴본 진실성의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본 구체적인 특징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황적 유연성을 갖는다. 고정된 원칙을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둘째, 과정에 대한 관심이 크다. 결과만큼이나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다. 좋은 목적이라도 수단이 부적절하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장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자기 성찰의 습관이 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뭘까?”, “상대방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꼈을까?”,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넷째, 경계의 건전함을 유지한다. 상황적 유연성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진실함의 한 모습이다. 굴종하거나 비굴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표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이 크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모습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오히려 모르는 부분에 있어서는 모른다고 말하고,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된다.

여섯째, 실용적 이상주의를 추구한다. 실용적 이상주의는 종종 자신의 줏대가 없다고 비판을 받곤한다. 이와 별개로, 자신만의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면 계속 걸어가면 된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강요하거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모습보다는 진정한 신뢰를 받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당장 불가능한 이상을 위해 폭력적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현재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일관되게 하는 것이 훨씬 값진 모습이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진정성과 진실성의 통합

세상에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완전히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정성이냐 진실성이냐 역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위해 걸어가기만 해도 바쁜 사회이다. 어느 길을 가든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항상 세상은 진정성보다는 진실성이 더 가치롭게 여겨져 왔다는 점이다. 진실성은 현실과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모습을 띄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를 살펴보자. 노예제도는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노예를 소유하는 것은 정당한 경제적*사회적 관행이었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관에 충실하며, 그 신념에 따라 살았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질서와 경제 구조 안에서 살아갔고, 이 신념을 변함없이 고수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서양의 먼 나라들의 얘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사회적 모습이었다.

이런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늘 존재해왔다. 그리고 항상 소수로부터 움직임이 시작된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노비와 양반은 상하관계 그 이상이었다. 함께 밥상을 겸할 수도 없었고, 양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노비였다. 또한, 노비는 신분이 천한 존재 이전에 물건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럼에도 노비들을 사람으로 대하거나 친구 삼은 이야기들은 존재한다. 이런 사례는 드물다. 그렇기에 회자되고,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어 방영되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부터 자신의 신념을 실천해온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살아갔다. 노비 제도를 정당화하는 이들이 그들의 신념을 진정성 있게 유지하는 동안, 그 진정성은 상대방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며, 결국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렇기에 진정성만으로는 특정 가치관이 가치롭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노예제도는 사라졌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이유는 자명하다. 타인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은 것, 자신의 권리만이 당연하다고 주장해온 모습,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양산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모순,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행태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인권에 대해 논의되고 증진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권을 갖는 것에 동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진실성은 가치관들 중에서도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특징이 있다. 결국 법으로 제정되고 존중이 결여된 가치관은 밀려나는 모습을 띠게 된다. 하지만 가치관은 사라지는 물체가 아니다. 소수에 의해 가치롭게 여겨지거나 또 다른 가치관의 기원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재생산되고 다른 가치관의 태동의 근원으로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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