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치관] 잘 산다는 것에 관하여

가치관

by 오 영택

길을 나서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다. 걷는다는 것은 어딘가로 향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교육이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접하며 배운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질이나 마음, 감정을 알아가기도 한다.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모방하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는다. 생각과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말을 듣거나 글을 접하면, 후련함을 느끼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모습에서는 불쾌함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의 행동을 보며 반면교사(反面敎師) 삼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를 평가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 평가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많다. 결국, 어떤 길을 걸어가도, 어떻게 살아가도 평가는 갈린다. 그렇기에 인생 걸음걸이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편한 걸음걸이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균형감각과 근육으로 걷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의존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걸어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희망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걷는 힘과 분명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지금 어디인지 알아야, 어떻게 나아갈지 정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상황을 알아야 제대로 걸어갈 수 있다. 결국 인생은 내가 걷는 것이다.



1) 잘 산다는 것에 관하여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바람이 있다면, "잘 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상당히 함축적인 표현이다. 각자마다의 지향하는 모습과 이미지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살고 싶다"는 말은 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후회의 마음이 가득할 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이 공허할 때, 허무함을 느낄 때 등 대개 표류하는 듯한 느낌일 때 떠오르는 마음이자 생각이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생의 목표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현재보다 나은 상황, 지금보다 뛰어난 모습 등 미래의 지향점을 반영하곤 한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기저에 있다. 각자마다의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다. 각자가 생각하는 모습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저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항상 따라할 수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의 기준이 바로 '가치관'이다. 가치관이란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점을 말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함께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치관, 내면의 나침반

가치관은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를 결정하는 내면의 나침반과 같다. 나침반이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가치관은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흥미롭게도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에서, 어떤 이는 성공했다고 느끼지만 다른 이는 그 직장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아 괴로워한다. 작은 집에 살면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행복을 키워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더 큰 집에 살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가치관이다.

다른 반응들이 존재함에도, 현대 사회는 '잘 사는 것'에 대해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높은 소득, 넓은 집, 좋은 차, 그리고 SNS에 올릴 만한 화려한 경험들. 이런 것들이 마치 성공과 행복의 증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좋아 보이는 이미지의 나열에 불과하다. 자주 눈에 띈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옳은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외의 다른 모습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고 화려한 모습들에 비해 감탄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좋아 보이는 것을 올려야 찬사받는 분위기와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 사이에서 드러내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한다.

세상은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이다. 그럼에도 사회에 암묵적으로 자리잡은 획일화된 기준은 다른 모습들을 한낱 정신승리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때론, 조롱을 일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문득 '잘 산다'는 표현에 대해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다.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지인들에게 '잘 살아?', '잘 지내?', '어떻게 지내?'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한참 고민한다. 문제 없이, 사건사고 없이 지내고 있으니,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선뜻 잘 지낸다라고 답하는 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한다. 진지하게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는지 말하는 게 맞을까 싶다가도, 가볍게 인사치레로 하는 말 같아서, 잘 지낸다라는 말 대신 그냥저냥 지낸다는 말로 얼버무릴 때가 많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나,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면 두말할 것도 없이 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잘 지내?' 라는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다. 또한, 의례상 돌아오는 '잘 지낸다'는 말에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집요하다고 여길까봐 걱정이 앞설 떄가 있다. 이런 순간들에서 '잘 산다'는 것의 모호함을 느끼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별일 없이 지내고 있지만, 정말로 잘 살고 있는 건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준을 찾아서

이럴 때마다 '잘 산다는 게 뭘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감히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모습이 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진정으로 잘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고, 가치관 역시 경험과 성찰을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매번 변하기에,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과정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에게는 가족과의 유대감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이에게는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이 우선순위다. 누군가는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모험과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 어떤 이는 사회적 기여와 봉사에서 의미를 찾고, 어떤 이는 예술적 창조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안에도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다. 때론 모순처럼 여겨지는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다른 경험을 했으며,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갖고 있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을 알다가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생활이나 SNS 등 여러 인터넷 매체들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함께 대화하거나 소식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모습들과 각기 다른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모습이나 소식, 또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차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나간다.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떤 일에 화가 나는지, 무엇을 보며 감동하는지를 통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반응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의식적으로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덕과 중용 사이에서

우리는 잘 사는 것을 활동적이고, 이타적이며 도덕적인 모습과 연관해 떠올리곤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시간을 내어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들이 좋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자신만을 위한 일에 집중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이기적으로 여겨지곤 한다.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을 분위기 망치는 사람 혹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이고, 이타적이고 활발한 모습과는 무관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긴다 할지라도 말이다. 잘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 기준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평가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치롭게 여기는 것은 개인에게 달려있다. 평가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평가 역시,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각자는 사회 구성원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생각해봐야 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고,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존재일 수는 없다. 나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생각할 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각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기에 자신만의 가치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하기 위해, 삶의 양식을 정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흔히,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결국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의미한다.

해답(解答)이란, 풀 해(解)와 답할 답(答)이 합쳐진 단어로써, '어떤 문제나 질문에 대한 풀이 또는 해결 방안'을 의미한다. 결국, 인생에서 마주하는 여러 문제나 삶의 질문들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답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혹은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여러 지식들을 통해서 가치관을 확장 및 변화를 통해서 답을 서술해나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관들이 존재한다. 각 사람의 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존재할 것이다.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모든 가치관을 다 수용할 수도 없고, 모든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맞는, 추구하는 가치관을 선별하고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완전히 이타적이지도, 완전히 이기적이지도 않는 어딘가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결국 기승전'중용'인 셈이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선택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 즉 무게중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무게중심을 찾는 과정은 세심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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