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치관] 교학상장

가치관

by 오 영택

3) 교학상장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함을 의미한다. 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가르치는 자가 있기에 배우는 사람이 존재하고, 배우는 사람이 있기에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아는 사람이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지식을 공유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장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배우는 사람 역시 배우려는 태도와 물음이 동반되어야 한다. 함께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역사적 사실과 가치관, 지식 등을 교육을 통해서 배운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여러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 생각을 교류함으로써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은 서로에게 가르치며 배우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존중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장에 그치지 않기 위한 필수조건인 셈이다. 경험적으로 알다시피,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서로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가치관이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대한 관점이기에 강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각자의 가치관을 소개할 수 있을 뿐이다. 소개하는 시간이 있어야 다음의 과정이 가능하다. 다름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성장하다.

교학상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있지 않다. '함께 성장한다'에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온전한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많은 것을 알거나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AI 시대에 지식의 습득은 무척이나 쉽고 편해졌다. 책을 읽는 인내의 시간이나 검색을 통해 자료를 찾고 선별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단순한 지적인 확장보다는 감정적, 인격적 성장이 중요해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갈등 상황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지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등과 같은 인격적 성장이 주목받고 있다.

물론 성품이나 인격에 관한 내용 역시 지식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지식만으로 체화할 수 없다. 오직 사람과 동물 등 생명을 가진 존재와의 교류 속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서로 배우며 성장한다는 것은 반응을 살펴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상황의 흐름에 따라 말이나 행동을 조절하면서 말이다. 상황이나 처지, 특성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들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늘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어렵다는 점을. 주어진 업무나 설정한 목표 등은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고, 계획을 수정하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에게도,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변수들이 무척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마음가짐, 감정이나 상황과 같은 변수들은 통제할 수 없기에 당연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조심스러워지거나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까다로운 사람, 비관적인 사람,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마주한다. 이런 마주함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입장과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저마다 다르게 반응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대응하는 방법을 익히거나 자신만의 노련함으로 응수하거나 다양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들조차 교학상장의 기회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배움과도 같다. 이를 통해 인내심을 기르고, 대처능력을 키우게 된다. 혹은 자신의 모습을 일부 발견하기도 하면서 반면교사 삼기도 한다.


상호작용

이런 어려운 인간관계에서 얻는 배움은 책이나 매체를 통해 채울 수 없는 것들이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고 해소할지,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키면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와 같은 실질적인 삶의 지혜는 자신의 시간만으로 배우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은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혜를 체득해나가는 상황들은 달갑지 않다.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상처를 받으며 굳은 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고, 없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도 통제하기 어려운데,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막을 도리가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셈이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각자마다의 관계적인 어려움이나 아픔들을 딛고 성장한 것처럼, 이런 힘듦의 과정들이 성숙하게 만든다.

물론, 나만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역시 나로 인해 마음의 힘듦을 겪었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어느 집단에 빌런이 없다면, 내가 바로 빌런이다.”라는 우스갯 소리처럼, 사람이 모인 곳에는 누군가는 맞지 않는 사람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인식은 상당히 중요하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피해의식에 빠지기 쉽고 반성의 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일반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내가 상대방을 어렵게 느끼는 만큼, 상대방 역시 나를 어렵게 느끼기 마련이다. 즐거운 대화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 서로 아쉬움을 느끼는 것처럼 불편함 역시 유사하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던 모습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덜 신경쓰거나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당시를 이해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교학상장은 거창한 강의실이나 세미나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들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를 볼 때, 그들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말로 지식이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삶으로써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누군가를 관찰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철학이나 마음가짐을 엿보며 배울 수도 있다.


평가받는 존재

주변 사람이든, 책의 인물이든, 위인이든 우리는 직접 대화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평가를 받기에 배울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동시에, 가까이 할 사람과 멀리 할 사람을 구분짓기도 한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자 현상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평가는 불가피함 역시 알아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보장되기도 한다. 각 사람의 가치관이나 상황, 감정 등에 따라 평가는 언제든지 달라지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확신으로 드러나는 한결같음과 진실함은 평균적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이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있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듯이,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그림자와 같다. 삶이 존재하기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불가분 관계이다.

결국, 항상 따라올 수밖에 없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살아갈 것인가',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설정한 목표를 향해 걸어갈 것인가'는 인생에서 항상 주어지는 딜레마를 낳는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때로 타협이 필요할 때도 있고, 좀 더 멀리가기 위해 보류해야 할 때도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변절자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하거나 조롱할 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마음보다는 행동이나 결과로 평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반대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칭찬 받을 수도 있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며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서든 선택에 따른 평가가 뒤따른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이 옳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은 일시적이다. 그것이 평가든 위로나 격려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에 반면, 삶은 지속된다. 또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말들은 어디까지나 참고 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멋진 행동이나 뛰어난 성취나 결과를 보며 동경하고 자극받아 이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이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에게는 대단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평범하게 여겨질 수 있다. 나의 행동과 말이 절대적이지 않듯이,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 역시 상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삶으로써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정규과목이 아니기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는 스스로 학습해나가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배울 수 있지만 행동규칙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매체를 통해서든 사람을 통해서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인생은 교학상장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서로 가르치고 배워가면서 함께 성장해나간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태도'라 할 수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어떤 자세로 배우려 하며, 어떤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느냐가 교학상장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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