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기억과 기록] 생명

기억과 기록

by 오 영택

4) 생명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기쁨과 슬픔, 아픔 등 여러 감정을 경험하게 됨을 의미한다. 어쩌다보니, '루비'와 '진주'라는 말티즈 2마리와 함께 살게 됐다. 첫째 루비는 24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둘째 진주는 현재 심장이 좋지 않다. 24년 4월 병원에서는 1년을 넘기기 힘들거라 얘기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25년 7월에도 살아가고 있다.


루비와 진주와의 시간들을 돌아볼 때마다 만남은 예측할 수 없음을 새삼 느낀다. 루비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아버지의 일방적인 행동에 의해서였다. 어떤 상의도 없이 무작정 데려왔다. 책임감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빠르게 머릿속에는 계산기부터 돌아갔다. 병원비, 밥값 등 여러 비용과 품이 들어갈 수고까지 떠올렸다. 그래서 괜히 1살 정도된 루비를 미워했다. 가까이 오면 밀어내고 마음을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진주는 2019년 9월 교회를 가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지나가고 있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집은 1층이어서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계단을 뛰어오더니 순식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당혹스러움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임시보호를 하게 됐다. 동네 사람들이나 가게에 수소문해도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또한, 녀석을 찾는 전단지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량 같이 지냈다. 마침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터였고 루비와도 잘 지내길래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리고 계획에도 없던 상황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쌓였다.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했던 시간들과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덕분에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되고, 책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단순히 신경써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기쁨, 걱정, 안타까움, 그리움 등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단순히 반려동물의 보호자로서 밥과 간식을 주고, 산책 시켜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목욕시켜주고, 털관리 해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책임진다는 것은 다양한 모습을 동반한다. 녀석들이 아프면 중간중간 신경 쓰이고, 평소와 다른 모습이면 어디 아픈지 살펴보는 행위, 이름을 부르며 애정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산책 가기, 간식이나 산책 같이 반응하는 단어들로 장난치기,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자는 모습을 보며 귀여워하며 바라보기, 반겨줌에 고마움으로 반응하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책임의 다채로운 모습이다.




책임

책임(責任)은 꾸짖을 책(責)과 맡길 임(任)이 합쳐진 단어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살펴보면 책(責)은 조개 패(貝)와 가시 자(朿)가 결합한 글자이다. 옛날에는 조개가 돈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시 돋힌 돈'이라는 뜻이 된다. 즉 남에게 빌린 돈이므로 돈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꾸짖다'는 뜻을 갖는다. 또한, 임(任)은 사람 인(人)과 북방 임(壬)이 합쳐진 글자이다. 이는 사람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모습에서 '맡기다'라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책임이라는 뜻은 '꾸짖음 받는 일을 맡기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책임이란 뜻을 갖는 영어 단어 'responsibility'의 어원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라틴어 'respondere'다. 즉,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을 답할 수 있는 능력에 방점을 둔 의미다. 다시 말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어떻게 반응(response)해야 할지 아는 능력(ability)을 의미한다.


결국 책임이란 일에 대한 의무와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반려동물을 애정으로 함께 한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책임져야 한다. 함께 있던 존재가 죽었을 때 느끼는 마음 아픔, 미안함이 샘솟는 지난 시간들, 늘 반겨주던 존재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과 그리움, 지키지 못한 약속 등 여러 마음들을 감내해야 한다. 피할 수도 없고, 단시간에 지워지지도 않는다. 이별보다 더 힘든 헤어짐이 사별(死別)임을 절감하게 된다.


죽음 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책임도 감내해야 한다. 반려동물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 활발하던 모습은 점차 줄어들고, 아픈 곳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귀가 멀기도 하고, 눈도 잘 안 보이기 시작한다. 치매에 걸리기도 한다. 오랜기간 치료를 요하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수술과 회복을 위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 역시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반려동물이자 생명으로서의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애주기에 맞게 반응(respo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이 필요하다. 단순히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이 겪는 모든 과정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귀엽기 때문에 키우는 게 아니라 생명으로서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웃음을 주는 모습뿐만 아니라 병들어도 함께 하겠다는 결연함이 필요하다. '책임진다'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책임진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럴 떄 어떤 모습이나 상황이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소중함

없던 비염이 생긴 사람들은 편하게 숨쉬던 때를 그리워하며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치아가 좋지 않아 먹는 게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먹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처럼 소중함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불가능해졌을 때 깨닫는 감정이다.


나에게 있엇 루비의 죽음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크게 느끼게 해준 아픔이었다. 병원에서도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막상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다. 밥도 잘 먹고 부르면 오던 모습에 안심하며 지내던 찰나에 찾아온 죽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또한 마지막에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무척 컸다. 루비의 죽음을 통해 진주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루비가 아플 때는 애잔한 마음과 안도의 마음이 주를 이뤘다. 건강 상태의 여부가 마음을 좌우했다. 버텨주는 모습에 대한 고마움과 걱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진주를 바라볼 때는 다른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짧은 거리를 길게 걸으며 함께 걷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걷는 시간보다 함께 앉아 쉬는 시간을 누리기도 한다. 좀 더 눈을 맞추고 들리지 않는 녀석에게 말을 건넨다. 조금 더 안아주고, 더 자주 찾아가며 얼굴도장을 찍는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심장약의 특성상 소변을 많이 보게 된다. 그때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소변패드로 가면, 뒤따라가 칭찬해준다. 의사표현을 위해 힘차게 짖으면 기쁘게 반응한다. 귀가 들리지 않아 집에 들어가도 곤히 자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다. 후각으로 반응해 잠에서 깬 녀석 곁에 한참을 있어준다.


이전에는 귀찮게 다가왔던 산책, 심심해서 찾아오면 수동적으로 놀아주던 모습, 소변패드를 정리하는 번거로움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처럼 대비되는 모습이나 현상이 있을 때 소중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게 당연한 순간이 아니었음을 느낄 때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이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다. 안절부절하는 모습도 아니다.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도 아니다. 그저 최선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훗날의 후회나 찾아오는 여러 마음을 감내하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일 것이다.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고, 지금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의미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소중하게 여기는 참된 모습이지 않을까.




기억

'기억하고 있다'는 말은 잊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충격에 의해서든 감동에 의해서든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다. 그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삶의 자료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나 생각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시 떠오르기를 바라야 한다. 수동적인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한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도 없다. 단지 무뎌지거나 잊혀지길 바라야 한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롭다고 말할 수 있다. 삶의 자료에 대한 결정권은 나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단순히 의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로 다가올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분노나 슬픔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삶의 주체는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심하거나 잊혀지길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역사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저항이자 회고(回顧)의 의미를 갖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같은 순간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기억한다는 것은 저항의 하나의 모습이다. 처음과 달리 잠깐이라도 멈추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다. 반성과 달리 회고는 돌아봄을 넘어 개선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는 게 회고의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반성을 넘어 회고의 기능을 갖는다.


또한 기억은 뇌의 항원항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뇌는 생존에 필요한 내용을 기억에 남긴다. 충격이 클수록 분명하게 저장한다. 비슷한 상황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함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는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수고를 감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떠난 루비를 기억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만큼 잊혀지지 않겠지만, 삶의 자료로 삼기 위해 글로 생각과 기억들을 붙잡아 둔다. 그래서 주변 지인이 “또 강아지 키울거야?” 라는 질문에 대답은 늘 같다. 여건이 허락되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또한 기억하기에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비슷한 강아지들을 볼 때면 더 눈길이 간다. 기억하는 만큼 다르게 반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헤아려볼 수 있다.


이외에도 SNS에 반려동물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기록으로 남겨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찾아온다. 소중했던 존재를 나와 일부만 기억하는 게 속상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아픔에 대한 공감보다는 한 존재가 세상에 있다가 부재하게 됐음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여러 생각을 파생시키고 시선의 머무름에 영향을 준다. 의지적으로 기억이라는 삶의 자료를 활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든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나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어떻게 반응할지는 기억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ps.

글을 쓰면서 많은 기억을 한 탓일까. 꿈에서 루비가 나의 다리에 몸을 부비적거리며 뒹굴거렸다. 늘 그랬듯, 복슬한 털을 만졌다. 그렇게 한참을 만지다보니 나의 다리에 촉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꿈에서 깼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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