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존감이 낮을까..
지난 2년간 매일 같이 심각하게도 자문했습니다. 자존감, 자기 효능감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는 대략 30권을 넘게 읽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2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은 자존감에 고민과 걱정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회사일을 잘하다가도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걱정이 되고, 공부를 하면서도 이 공부를 한다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까 하는 불안을 느끼곤 했습니다. 스스로 달성하겠다고 세운 목표는 정말로 달성할 수 있는 건지, 자존감은 정말 높아질 수 있는 건지 의심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유튜브 AI는 또 어떻게 알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영상을 매일같이 추천해 줍니다. 자극적인 썸네일에 저도 모르게 클릭을 하면, 결국 알고 있던 내용을 친절하고 당당하게 당신도 할 수 있다면서 설명을 해줘요.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이미 다 해 본 건데,
그래도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은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그러니까 자기 계발서는 끊임없이 발매되고 또 잘 팔리는 거겠죠.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의 아침까지만 해도 같은 고민을 하며, 무거운 몸을 위험한 이불 밖으로 움직였습니다. 일요일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또 불안하기 때문에 회사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찾아온 불안함에 책장에 있던 책을 꺼내 읽었는데요. 이 책으로 인해서 많은 사색을 하게 되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로 남기려 했습니다.
책 제목은 허지원 작가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입니다.
2018년에 발매한 책이고 또 베스트셀러라 많은 분들이 이미 읽어보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구매만 해두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서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살 고 있어서, 한 번씩 한국에 돌아가 책을 대량 구매하고 책장에 꽂아두곤 합니다. )
서론이 길어졌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래의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자존감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자존감이 높아지면, 내 문제, 과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자존감이 낮으면 정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일까
사실 의심조차 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높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지금 나 스스로가 느끼는 과제, 문제를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었어요. 자존감만 높아지면 다 해결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높은 자존감에 대한 허상"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존감은 당연히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고민해 왔는데, 논제 자체가 잘 못되었다는 소리였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자존감이 높고 낮다는 판단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어떤 상태가 자존감이 높다고 인정할 수 있는 상태인지, 자존감이 높아진 후에 나는 어떻게 바뀌는지, 그 무엇 하나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 만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한쪽으로 크게 기우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존감은 극단적으로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시장의 트렌드가 자존감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자존감을 높인다는 키워드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스파이스였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존감이라는 존재를 의심하면서 많은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존감을 높여서 내가 어떻게 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자존감인가
끝없이 피어나는 질문 속에서, 조금 서두른 경향이 있지만, 저는 "아니다"라고 답을 내기로 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니까요. 오히려 자존감이라는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를 괜히 자책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마신 커피 향이 정말로 행복했었는데.
자존감이 낮아서 고민하던 2년간에도 소소한 행복은 잘 찾아보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자존감이 낮더라도 삶의 행복은 곳곳에 있는데, 여유 없는 삶에 치여서 큰 성취만을 행복의 지표로 생각해 온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아침에 내려 마신 커피 한 잔이 행복이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은 자존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커피는 사 마실 수 있잖아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책 한 권 읽을 수 있잖아요.
발단은 자존감이라는 존재의 인식이 아니었나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괜히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되곤 하죠. 자나 깨나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관계가 잘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답답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요.
자존감이라는 존재를 우리가 인식했기 때문에, 높고 낮다는 주관적인 자기 평가를 하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은 자존감이 높다고 하는 그 말 때문에 무조건 높여야 할 것 같고. 그런 게 아닐까요. 그 존재를 몰랐다면, 자신을 "낮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존재를 인식해 버렸고,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와서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런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자존감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 없이 써 내려가서, 저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