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전통시장이 있다. 지역을 여행하면 필수코스로 전통시장을 가는데, 대부분 5일장으로 운영을 한다.
가끔 장날 개시날짜가 맞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 ‘왜 상설로 하지 않고 5일장으로 하는 거지? 5일장은 왜 생긴 거냐?’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과거, 5일장은 지방에서 열린 ‘향시(鄕市)’의 한 형태로 고려시대부터 정비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성기를 이루었다. 농민, 수공업자, 어민 등 생산자들이 일정한 날짜와 장소에서 생산물을 교환하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었다.
5일장은 단순히 물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사회적 유대를 다지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지역민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물품을 교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통의 장소였다. 이 과정에서 따뜻한 인정과 온정이 넘치는 공동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장터는 단순한 경제활동의 공간을 넘어, 지역민의 삶과 정서,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할이 지역 공동체 내에서 꾸준히 요구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존속할 수 있었다.
5일장이라는 시간 간격은 보부상 등 이동 상인들이 인근 장터를 순회하기에 적합한 주기였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 리듬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5일장이 전국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장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영암군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대표 5일장이 있다. ‘영암 독천 5일장’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위치한 독천장은 4일과 9일에 서는 오일장이다. 이 시장은 18세기 후반부터 『동국문헌비고』(1770)와 『임원경제지』(1830) 등 역사 기록에서 확인될 만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영암 독천장은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한석봉 어머니의 떡 장사 이야기는 영암 독천장과 설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한석봉(본명 한호)의 어머니 백인당은 아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영암 지역의 장터, 특히 독천장에서 떡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설화는 한석봉이 어린 시절 스승 신희남을 따라 영암에 내려와 송양서원 등지에서 공부할 때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떡을 만들어 독천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팔았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대해선 지역 설화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한석봉 모자가 영암 덕진면 노송리에 머물렀다는 설, 또는 군서면 구림마을에 살았다는 설 등이 존재하며, 독천장까지 떡을 팔러 다녔다는 이야기는 장터의 명성과 연관되어 후대에 더욱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즉, 한석봉 어머니가 떡 장사를 했다는 구체적 기록은 없으나, 영암지역 특히 독천장과 연관된 설화가 지역민들 사이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이처럼 한석봉 어머니의 떡 장사 이야기는 영암 독천장의 역사와 지역민의 자부심, 그리고 장터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설화로 자리 잡고 있다.
영암 독천장은 1964년 장옥이 건설된 후, 일제강점기에는 독천 광산 개발과 함께 더욱 번성하였으며, 한때 우시장까지 함께 운영되어 영암읍장 다음으로 성한 장이었다.
남쪽 문수포와 서쪽 감치 포구를 통해 해산물과 각종 어패류, 소고기 등 지역 특산물이 집결하는 유통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1981년 영산강 하굿둑, 1992년 영암호 제방이 막히면서 해산물 공급이 줄고, 1980년대 중반 우시장도 사라지며 시장의 명성은 예전 같지 않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화 사업을 통해 장옥 신축, 주차장 조성 등 시설 개선이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낙지 전문 식당 골목으로 특화되어 새로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변남주, 「독천장」, 디지털영암문화대전, 2012
영암군 홈페이지
디지털영암문화대전
트래블아이, “독천5일시장, 전라남도 영암군”, 2021.
네이버 블로그, “명필 한석봉 어머니가 떡장사를 했다는 영암 독천장과 우시장”,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