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떡 코너에서 항상 살까 말까 망설인다. 먹고는 싶은데 한두 개 정도만 먹고 나머진 처치 곤란이어서….남은 건 냉동실에 넣어둘 때도 있지만 거의 먹지 않는다. 떡은 쫄깃한 식감이 좋아서 먹는 건데, 먹다 남은 떡이 냉동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어서이다.
한국의 전통 떡은 궁중에서 전해지는 전통병과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발달한 전통 병과들이 있는데, 영암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떡이 있다.
‘밀개떡’, ‘문지떡’
밀개떡은 유두날이나 백중날 맷돌에 밀을 갈아 가는 밀기울을 가려내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밀개떡’ 혹은 ‘밀겨떡’이라고 한다.
문지떡은 유두날이나 칠석에 솥뚜껑 위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반죽에 솔잎이나 쑥 등을 버무린 반죽을 부어해 먹은 얇은 떡을 문지떡이라 한다.
보통 한국의 전통 떡은 쌀을 베이스로 하는데, 밀개떡과 문지떡은 밀을 베이스로 한다.
영암의 밀밭 농사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영암군의 밀 생산 역사는 일제강점기(1910~1945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식량 자급과 군량미 확보를 목표로 대규모 농장 경영과 식량 증산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특히 1918년부터 시작된 제1차 산미증식계획은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밀과 보리 같은 이모작 작물도 함께 장려되었다.
영암군은 비옥한 토지와 해양성 기후로 인해 밀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이 시기 대규모 농장 경영을 통해 밀밭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에 따르면, 1933년 전국 밀 수확량은 약 28만 8,000톤에 달했으며, 이는 현재 영암군을 포함한 전라남도 지역의 밀 생산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농민들에게 강제적인 공출을 요구하며 혹독한 노동을 강요했지만, 역설적으로 밀 재배 기술과 농업 인프라를 발전시켰다. 영암의 밀밭은 이렇게 일제의 식량 증산 정책 속에서 뿌리를 내렸다.
영암군의 밀은 단순한 식량 작물을 넘어 지역 고유의 음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가루는 쌀에 비해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으며, 고려시대부터 궁중에서 국수로 사용될 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영암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지역 특색과 결합해 밀개떡, 문지떡이 독특한 향토음식으로 발전했다.
일제강점기 영암의 농민들은 밀 재배를 통해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밀은 쌀 다음으로 중요한 이모작 작물로, 가을에 심어 이듬해 봄에 수확하는 방식으로 재배되었다. 이는 쌀이 떨어지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구황작물로서의 역할도 했다.
영암의 농민들은 밀알을 갈아 밀껌을 만들거나, 덜 여문 밀을 쪄서 말려 구황식품으로 사용하며 배고픔을 달랬다. 조선총독부의 식량 증산 정책은 영암의 농업 구조를 바꿔놓았고, 밀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지역 경제와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시기 밀 재배는 영암군의 농업 기반을 강화하며, 이후 현대적인 밀 품종 개발과 지역 음식문화로 이어지는 초석을 다졌다.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식량 증산 > 시기별 정책과 특징 > 일제시기 ~ 미군정기. 국가기록원. https://theme.archives.go.kr/next/rice/organization.action.
농업 - 디지털영암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yeongam.grandculture.net.
김정웅. (2023). 무역이 바꾼 세계사(22): 밥과 빵이. 한국경제신문.
RDA인테러뱅 - 농사로 농업기술포털. 농촌진흥청. https://www.nongsaro.go.kr.
그린매거진 vol. 177. 농촌진흥청. https://www.rda.go.kr.
보도자료. 농업기술실용화재단. https://www.atfis.or.kr.
정진영 외, 『한국 농업사』, 일지사, 2007.
조재국, 『한국의 곡물문화』, 한울아카데미, 2013.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 농업의 지역사』, 농경문화연구총서, 2020.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영암의 문화유산과 음식문화』, 2021.
전라남도 농업기술원, 『전남 향토음식 백과』,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