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갑오징어 이야기, 득량만 봄바다에서 시작된 음식

by 길가영
장흥 갑오징어_26.01.25.png 장흥 갑오징어 이야기


장흥에서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바다의 식재료 가운데 하나가 갑오징어이다. 장흥 앞바다 득량만에서는 해마다 4월과 5월이 되면 갑오징어가 몰려들고,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장흥 사람들에게 갑오징어는 특정 음식이기 이전에 계절을 알리는 신호이며, 봄바다가 열렸다는 표시이다.


득량만은 장흥을 대표하는 내만으로, 수심이 완만하고 갯벌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 해역은 갑오징어의 산란기에 특히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봄철이면 어군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장흥에서 갑오징어가 제철 해산물로 인식되는 이유는 이처럼 바다의 조건과 계절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전국 최초로 ‘청정 갯벌 생태산업 특구’로 지정된 득량만은 갑오징어뿐 아니라 키조개, 매생이 등 장흥 해산물의 근간이 되는 바다이다.


장흥의 갑오징어는 주로 회와 먹물찜으로 먹는다. 막 잡아 올린 갑오징어를 바로 손질해 먹는 회는 살이 두껍고 담백하며, 씹을수록 단맛이 살아난다. 먹물찜은 장흥 어민들의 생활식에서 출발한 음식이다. 파와 당근을 볶은 뒤 갑오징어와 먹물을 함께 넣어 찌는 방식은 복잡하지 않지만, 갑오징어의 맛을 가장 온전히 살리는 조리법이다. 검은 먹물이 배어든 찜은 장흥 바다의 인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이 음식은 지금도 봄철 장흥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갑오징어 요리는 단순한 별미가 아니라, 장흥의 계절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장흥군은 갑오징어회와 먹물찜을 한우삼합, 매생이탕, 키조개요리 등과 함께 ‘장흥 9 미’ 가운데 하나로 정리해 소개한다. 봄에는 갑오징어와 키조개, 겨울에는 매생이와 굴이 중심이 되는 구조 속에서, 갑오징어는 장흥 미식의 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장흥에서 갑오징어는 생활 속 음식으로 먼저 자리해 왔지만,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기록과 마주하게 된다. 갑오징어는 조선시대 문헌에서 오적어, 오즉, 묵어, 흑어, 남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동의보감』, 『물명고』, 『전어지』, 『규합총서』, 『물보』 등 다양한 문헌에 이 명칭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갑오징어가 당시에도 흔히 접하던 해산물이었음을 보여 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갑오징어의 생김새가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등에 긴 뼈가 있고 그 모양이 타원형이며, 살은 매우 무르고 연하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 장흥에서 먹는 갑오징어의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묘사이다. 특히 등에 있는 뼈에 대한 언급은 갑오징어가 다른 오징어류와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말해 준다.


갑오징어는 먹는 해산물을 넘어 왕실에 올리던 진상품이기도 했다. 『연려실기술』 별집에는 4월 천신품목으로 죽순과 준치, 그리고 오적어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갑오징어가 봄철에 가장 맛이 오르는 제철 해산물로 인식되었으며, 왕실에 바칠 만큼 가치 있는 식재료였음을 의미한다. 『종묘의궤』와 『진연의궤』에도 4월에 오적어를 천신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갑오징어가 일정한 시기에 맞춰 관리되던 해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상 체계는 남해안 지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성종실록』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에게 갑오징어를 봉진 하되, 제주도산보다 작다고 해서 무리하게 큰 것을 잡도록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남해안 갑오징어가 왕실 진상 체계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생산 여건을 고려하던 당시 행정의 시선을 함께 전한다.


갑오징어의 또 다른 가치는 약재였다. 갑오징어의 뼈는 해표 초라 불리며 조선시대 의약서에 자주 등장한다. 『동의보감』은 해표초의 효능으로 지혈, 제산, 염창, 통혈맥, 익정 등을 기록하고 있으며, 『본초강목』과 『식료본초』 역시 설사와 각종 질환에 사용된다고 전한다. 『각사등록』에는 고종 때 전라도에서 오적어골을 약재로 봉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갑오징어 뼈가 국가 차원의 약재로 관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조선시대 기록 속 갑오징어는 왕실의 식재료이자 약재였고,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귀한 해산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위상은 오늘날 장흥의 갑오징어 문화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득량만에서 잡히는 봄철 갑오징어를 회와 먹물찜으로 먹는 장흥의 식문화는, 생활 속 음식의 형태로 이어져 오다가 지금은 향토음식으로 정리되었다.


결국 장흥의 갑오징어는 바다에서 시작해 식탁으로 오르고, 다시 기록 속으로 이어지는 음식이다. 득량만이라는 구체적인 바다와 봄이라는 계절, 어민들의 생활식, 그리고 조선시대 진상품과 약재라는 기억이 겹치며 오늘의 장흥 갑오징어를 만든다. 그래서 장흥에서 갑오징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제철 해산물을 맛보는 일이 아니라, 이 지역의 바다와 시간, 그리고 오래된 기록을 함께 음미하는 일이다.



참고문헌

호남학연구원(호남문화유산), 「[맛 기행] 살은 진상하고, 뼈는 구급약으로 사용하다 갑오징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오징어」.

장흥군청, 「갑오징어회·먹찜」, 정남진 장흥 문화관광 홈페이지.

정약전, 『자산어보』.

허준, 『동의보감』.

이시진, 『본초강목』.

『연려실기술』 별집 제1권, 사전전고.

『종묘의궤』, 『진연의궤』.

『성종실록』.

『문종실록』.

『승정원일기』, 인조 8년(1630).

『각사등록』 호남계록 편.

국립생물자원관, 『해제로 보는 조선시대 생물자원 3』.

KBS 광주, 「맛도 크기도 모두 갑인, 장흥 갑오징어!」, 『6시 내 고향』.

KBS, 「득량만 바다의 왕자, 갑오징어 – 전남 장흥」, 『6시 내 고향』.

SBS, 「생방송 투데이 – 경력 35년, 갑오징어 잡이의 전설!」.

국민일보, 「키조개·갑오징어… 봄 바다의 성찬」.

스포츠서울, 「남쪽을 향해 튀어라, 붉은 양탄자 밟고 성큼성큼 장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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