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확인한 차이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by 김영채


아들이 태어난 후 26개국을 돌았다. 발바닥으로 국경을 넘으며 본 것은 풍경이 아니라 생활의 질서였다. 그 질서는 한국의 것과 달랐다.


유럽의 엘리베이터는 1층을 0으로 셈했다. 땅은 땅이고, 1층은 땅 위에 쌓아 올린 첫 번째 층위다. 2, 1, 0, -1로 이어지는 수직의 좌표가 그들에게는 논리다. 한국의 습관으로 누른 버튼은 엉뚱한 층에서 문을 열었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내릴 자와 탈 자가 없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쇠로 만든 문은 사람의 손가락이 버튼을 눌러야만 작동한다. 불필요한 개폐를 줄이는 것, 그것이 그들의 효율이다.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적막했다. 버스와 지하철의 바퀴가 굴러가지 않았다. 운전수들이 핸들을 놓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민원이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시민들은 기꺼이 걷거나 집에 머물렀다. 노동하는 자가 쉴 때, 서비스를 받는 자가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다. 그 불편함 속에서 노동의 신성함은 지켜진다.


한국에 온 이방인들은 우리의 자동문과 24시간 돌아가는 시스템 앞에서 당황할 것이다. 그것은 문화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관점은 내 발이 디디고 선 땅에서 나온다. 내 땅의 논리로 남의 땅을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여행은 그 폭력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는 일이다. 책이 정신의 여행이라면,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나는 길 위에서,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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