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고양이 시점
지금의 집에 정착하기까지 몇 번의 과정을 거쳤다. 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아직도 그렇게 믿고 싶다, 의도치 않게 자리를 비운 거라고.) 공원 주변을 서성이던 커다란 그림자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인간이라는 족속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건대, 내가 고양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듯이 그들도 인간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털 없는 원숭이 같은 인간의 등장으로 형아와 나는 불안했다. 먹을 거를 다투던 관계는 한순간 굳건한 우애로 뭉쳤다. 그랬었다고 생각한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그는 "야옹야옹"하면서 우리를 방심하게 했다. 그러고는 커다란 미끈한 손을 우리의 거처를 향해 거침없이 집어넣었다. 순간 형아의 몸은 '휙'하고 공중부양했다. '야옹야옹'거리며 접근할 때부터 어째 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손바닥에 얹혀 붕 뜬 형아는 지퍼가 달린 투명한 플라스틱 배낭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눈 깜짝할 새였다. 마치 들판에서 바람을 타던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서 날아오르는 듯했다. 이건 어미가 모험심이 강한 형아를 집 밖에서 입으로 물어다가 데리고 오는 거랑은 달랐다. 멀리서도 형아의 떨고 있는 모습과 그렁그렁한 눈가가 역력하다. 물론, 나도 공포에 질린 건 부인하지 않겠다. 거의 숨을 쉬지도 못한 채, 온몸의 털은 곤두섰고 가슴이 요동치는 소리는 귀에 까지 들렸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바위틈으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부드럽고 털이 수북한 앞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끄집어낸 체. 그 순간, 나마저도 그러잡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 공기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등줄기에는 서늘한 식은땀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하늘을 등진 체 배낭 속으로 던져졌다. 결국에는 형아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배낭 속 형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래도 의지할 피붙이가 있어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올라왔다. 아무리 뭐라 해도 믿을 건 피붙이 밖에 없다. 형아와 나는 배낭 안을 살펴보았다. 뒤흔들리는 배낭 안에는 우리 냥이족과 멍멍이족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얇은 담요와 티슈도 있는 거로 보아서 그는 전문가이자 상습범이다. 모든 것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어미가 없는 틈을 타서 '털 없는 원숭이'가 빈집털이를 한 것이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형아와 생이별만큼은 막아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