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2

<24화> π(3.14...)

by 김영


'소설은 무용(無用) 하기 때문에 유용(有用)하다. 모든 유용한 것은 그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소설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다. 빵이 없으면 배고픈 우리를 억압하고, 물이 없으면 목마른 우리를 억압한다. 소설은 무용하기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지 않고, 대신 억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소설은 위험하고,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은 뜬구름 잡는 거짓말이고, 어떤 소설들은 희망보다 절망을, 교훈보다는 혼란을 낳기 때문이다. 거짓말에 대해 말하자면, 소설에서 거짓은 중요한 요소이다. 거짓을 통해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통해 거짓을 말한다. 그리고, 절망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혼란을 통해 교훈을 준다. 드러냄으로 감추고, 감춤으로 드러낸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가 쓴 '섬'이라는 책의 추천사다. 삼촌 집사는 추천사나 서문을 싫어한다. 자기 작품을 자신이나 남들이 설명한다는 것은 이미 작가가 패배한 것이다. 독자가 재미없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니, 재미있을 텐데, 해봤자 상황만 우스워진다. 그렇지만 이런 글을 보면 당초의 생각을 번복할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과연, 하고 독자가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번뜩이는 글이기는커녕, 끄적거린 글들은 누군가의 글을 흉내 낸 글이든지, 아니면 읽고 또 읽어 마침내 자신이 쓴 글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여기저기서 끌어들인 단어들은 도드라져 눈에 거슬리고, 문장과 문장을 건널 때마다 미끄러지기 일쑤고, 덜 익은 사고는 사변적이고 부자연스럽다. 이야기는 촘촘한 인과관계는 커녕, 비 내리는 땅처럼 어지럽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반응으로 서로가 제각기 움직인다. 물론, 오랜 시간 단어와 문장들 사이에서 고민하며 서성거린 느낌이 있긴 하다. 계속 생각에 잠겨,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조금 더 썼다가 또 지웠다.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리지는 마라. 그가 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말과는 관련이 없다. 단지, 머리가 나쁜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주제넘은 자만심까지 있다.


글 한번 제대로 써보자는 그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아름다운 글을 보면 정체 모를 질투심이 솟지만 하찮은 글을 볼 때면 기분이 안온해진다. 간혹, 스스로 아름다운 글을 쓸 때면 모든 힘듦은 잊히고 끈질기게 달라붙던 우울감도 그 순간은 사라진다. 잠시 비를 피하는 순간처럼 어려움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이다. 나와 세계를 잠시 차단하는 피안의 세계. 진정, 글 한번 제대로 써보자는 그는, 별이 총총 떠 있는 하늘을 우러러보듯, 소설을 향한 티 없는 고귀한 희망보다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글로서 신뢰받지 못한 그들에게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거다. 성공해서는 자신이 남모르게 고생해서 쓴 작품도, 그다지 고생하지 않은 척할 거다.




부음

<학원 강사 김 모 씨는 2018년 10월 23일 오전 4시 28분 연수구의 한 PC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손님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동일 오전 6시 12분에 숨졌다. 42세. >


π(3.14...)는 원주율이다. 원의 크기와 관계없이 지름에 대한 원둘레 길이의 비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도형으로 원을 생각하고, 원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다. 기원전의 아르키메데스부터 원주율을 구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소수점 5조 자리까지 계산이 되었다. 3월 14일은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라고 알고 있지만 수학자에게는 원주율을 기념하는 '파이(π) 데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수학자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이처럼 수학에서 π는 중요한 수이다. 뿐만 아니라 π이외에도 중요한 숫자가 있다. 0은 없음을 나타내는 수이고, 1은 자연수가 시작이 되는 수이고, i는 허수 단위로 제곱해서 -1이 되는 수이다. 그리고, 자연상수 e는 자연현상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수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다. 수학에서 중요한 숫자 0과 1은 물론 수학 분야인 대수학(i), 해석학(e), 기하학(π)에서 각각 기본으로 여기는 상수가 하나의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세상의 본질을 아름다운 소네트처럼 보여준다.


(오일러 등식)



k의 수강 기호는 파이(π)이다. 그에게 있어서 말은 마음을 전달해 주는 주요 수단이 아니라 마지못해 내뱉는 보조수단이다. 표현하기 싫든, 표현력이 약하든, 그의 말을 길게 들은 적은 없다. 그저 상투적인 표현에 어정쩡한 몸짓만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자리에 오래 있지를 못하고 좀이 쑤셔했다.


그는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다. 확실한 것은 세상사에 시들해진 남자라는 것과 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듣기 싫어하는 말은 술을 줄이라는 말이다. 그는 매번 '오늘 한번 제대로 취해보자'라는 듯이 술을 마셔댄다. 술을 마시다 죽는 게 꿈인 거 같다. 그도 안다. 언젠가 술이 자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날이 오고, 술 마시면 행복하지만 그건 불안한 행복이란 걸. 술이 깰 때면, 취기 탓에 주변 배경은 비비 꼬였다가 풀어지기를 되풀이한다. 간밤에 얼마나 술을 마셨던지 입안은 바짝 말라 붙고, 멀리서 얼음이 갈라지듯 머리가 잘게 쪼개지는 두통이 시작된다. 그리고는 치열했던 전투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처럼 고독감과 우울감과 패배감과 무기력이 들러붙는다. 어제의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한다.


그가 지나친 음주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때 셀렘과 열정과 영감의 원천이었던 그녀가 경멸의 대상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슬퍼서일까, 아니면 미래의 불안감을 잊기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경멸해서일까, 아니면 이 세상 둘만의 경험인 섹스에도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인생의 실낱같은 반전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과거의 위대함을 돌이켜야지 현재의 구렁텅이에서 숨통이라도 튀일수 있어서일까.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은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도 그랬을 거다. 외모는 보통이지만 나름 명문대학에 다녔고, 온갖 잡기에 능했으니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을게다. 수학강사로서 실력도 훌륭하다. 여기까지 말하면 부러울 만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드물다. 그 이유는 술 때문이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면 삶을 조금은 덜 비극적으로 보게 되고, 또 한잔 들어가면 불안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또 한잔 들어가면 위대했던 순간으로 그를 데려다준다. 거기에는 잔소리하는 와이프도 없고, 애잔한 아이들도 없고, 채찍질하며 불타는 링을 통과하라고 부추기는 직장상사도 없다. 현재의 절망이 깊어질수록 술이 이끄는 과거 영광의 길로 쉽게 빠져든다. 알코올이 모세혈관의 구석구석을 지날 때면 그를 짓이기던 시간의 짐은 무뎌지고, 거칠기만 했던 외부세계는 불안한 내부 세계에 화해를 청하며 균형을 타진한다. 물론 술이 취해 있을 때나 가능한 평화이다. 그 평화를 유지하려면 계속 술에 절어 있어야 한다. 계속 절어 있지 않으면 비참한 자신을 또다시 발견하게 된다. 고독 속에 홀로 깨어 자신에게 물어본다. 지금 무엇을 해야 되냐고, 그러면 남아있던 취기는 술에 다시 취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짓눌리기 싫으면 쉬지 말고 취하라고 한다. 다시 취한 세계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지 않아도 되고, 불쾌한 삶을 응시하지 않아도 되고, 남루하고 궁핍한 삶을 잊을 수 있다. 여기에서 깨어나면 우울감과 패배감과 무기력이 다시 들러붙는다. 술 마시다 죽는 게 꿈인 그는, 10월의 허리춤에 결국,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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