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보는 사람들은, 도시라는 기호가 의미하는 사물의 형상과 기억을 보고 있다. 우리 몸에 어린 시절의 나, 청소년기의 나, 청년기의 내가 퇴적되어 있듯, 도시도 현재의 모습 속에는 과거의 기억도 있다. 러시아 인형처럼 하나의 커다란 입이 다른 작은 입을 물고있듯이.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커다란 암석이 기후의 변화로 팽창과 수축으로 금이 가고, 바람을 맞아 부스러진 알갱이들이 느릿느릿 낮은 곳에 쌓이고, 홍수가 나서 물이 고였다가 물가의 가장자리가 무너져 늪이 되었다가 습지가 된 후, 주름진 치마를 두른 맨드라미, 내성적인 분꽃, 달콤한 꿀물을 빨아먹던 샐비어가 흐드러지고 관목과 교목이 숲을 이루다가 권력자의 사냥터가 되고, 화산의 폭발로 다시 파묻혔던 곳일 수도 있다. 그 흔적을 찾는 것은, 기존 내용을 문질러서 지우고 덧쓰여진 문자를 찾아 수천만 페이지를 옮겨 적던 필경사들이, 양피지 위를 기어간 자취를 따라 과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전에 쓰인 희미한 글과 새로운 글로 너저분해진 양피지위에는, 너의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부인으로 맞을 거라는 신탁의 내용도 있고, 다면체 입체의 체적을 구하는 내용도 있고, 세상의 진실은 손과 발이 묶인 채 동굴의 벽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등 뒤의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과장된 그림자 같은 거라는 내용도 있고, 전쟁의 승리를 기록하는 내용도 있고, 권태에 짓이겨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부정한 자세로 눈만 끔뻑거리는 인간이 내면의 속삭임을 적은 내용도 있고, 악덕의 미덕은 그 허리에 있다는 내용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문도 있고,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혹하는 내용도 있고, 좌충우돌의 모험의 내용도 있고, 떠도는 소문도 있다. 도시는 수천 년의 상호 텍스트가 녹아있고, 과거의 기억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 기억은 광장의 시계탑에 색이 바랜 체, 수많은 계단에 마모된 체, 사거리 길모퉁이에 긁힌 체, 다리 위 난간에 다 해진 체, 현관문 손잡이에 닳아빠진 체, 길고 퀴퀴한 복도에 먼지가 가라앉은 체,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그가 공원을 찾는 이유는 흩어진 자신만의 기억을 되찾거나 긴장의 태엽을 스르르 풀기를 위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직장생활을 하며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걷기는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는 행위이다. 한 발을 내딛고 다른 한 발을 내딛다 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그것들이 리듬을 탄다. 글은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발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발이 움직이고 손이 앞뒤로 흔들리고 심장이 뛰면 단어가 떠오르고 글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일단 공원으로 들어가면 시끌벅적함은 고자누룩해진다. 차장에서 보는 화면의 틀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사물들이 현재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완벽한 접촉이다. 그곳에는 피로에 찌든 탁한 공기도 없고, 갑자기 튀어나온 과속 방지턱도 없다. 손금 같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미묘한 빛의 효과와 불특정한 소리와 스치고 지나가는 향기가 있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소리와 향기이다. 하나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그를 사로잡는다. 시간이 멈춰 선 듯하다. 여기에선 한 치수 작은 정장을 입고 꽉 졸라매듯, 이 도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잊힌다. 게다가 목소리를 죽여 속삭이던 어른들의 대화에서 배제되어 자기 방으로 홀로 되돌려 보내지는 것 같은 서운함은 없다. 수많은 살아 있는 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명의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냥 주위사물을 보거나 들으며 어딘가에 도착할 필요 없이 느긋하게 거닐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면 앉아보고 싶은 벤치에 앉으면 된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없이 아주 느긋하게 서두르지 않으면 된다.
호수 위 데크를 걷는 아이들의 손짓들, 손은 풍선처럼 가볍게 날아오르고, 물가의 물고기들은 퍼덕이고, 수련잎은 흔들리고, 분수대에서는 부채모양으로 물을 뿌린다. 잔디는 발목을 간지럽히고, 감긴 눈꺼풀 위로 햇살이 와닿는다. 공원의 모든 유기체들이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 무대의 커튼 같던 햇빛이 서서히 기울어지고, 하늘빛이 조금씩 붉게 물들면 건물의 창문은 오렌지 색으로 빛나고 그림자는 호수에 길게 늘어진다.
이 무렵 바람이 분다면 좋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은,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바람, 집을 나서자마자 나의 몸을 낚아채는 그런 바람, 아무리 기를 쓰며 걸어도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없게 만드는 바람, 빗 속에서 우산을 빵빵하게 만들었다가 우산살을 꺾어버리는 그런 바람이 아니다. 나의 옷을 팔랑거리게 하는, 기분을 돋워 주는 산들바람이다. 산들바람 속에는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리듬이 있다. 그런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는 바람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리고 고개는 약간 추켜올릴 거다. 그런 바람이 아니라면 비가 와도 좋다. 그의 몸은 빗 속에 잠긴다. 긴 하루의 소동은 물소리에 서서히 이울고, 젖은 풀 냄새와 축축한 나무 냄새는 폴폴 새어 나온다. 덜어낸 시각은 청각과 후각으로 덧붙여진다. 다급했던 마음은 느슨해지고 몸은 삼투압이 작용하듯 수분기 가득이다. 세상은 점성을 잃고 흐르고 있다. 너저분한 세상사는 물에 씻기고 어떤 종류의 형이상학적 고양감이 허용된다. 마음은 우울과 안도의 중간쯤에 있고, 과거의 추억은 현재의 기억으로 살아나고, 욕망은 무기력해진다. 그 자리에 서서 비를 바라본다. 수많은 동심원의 물왕관, 새끼 새들이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린 듯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을 타고 미끄러지는 빗방울들, 유동체의 발랄함. 거리는 젖은 타이어들이 노면을 스치고 전조등 불빛에 아스팔트는 반짝이고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도시의 불빛은 반사된다. 어린 시절 언젠가, 그의 꿈은 택시운전사였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꿈이다. 차 안은 세상의 어수선함을 단절하는 공간이다. 언제나 그를 둘러싼 외부와 차단된 체 허공 속에 혼자 있는 느낌이다. 도시는 비에 젖고, 지면에 반사된 불빛은 살아 움직이고, 창문에 맺힌 빗방울 사이로 초점을 잃어버린 불빛은 흔들린다. 빗방울은 투덕투덕 차를 때리지만 그의 몸에는 닿지 않고, 빗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만 소리는 삭제된다. 닿을 수 없는 빗방울과 삭제된 소리. 그 후로 인생은 그의 꿈처럼 실체에는 닿지 못하고 모호함 속에 몸을 숨겼다. 간혹 삶의 본질이 그에게 닿을라치면 의도적으로 피해 갔다. 세상은 그의 바깥에 있고, 그도 그의 바깥에 있다.
6월 오후의 공원을 나서서 서점을 향한다. 마지막 태양빛이 멀찍이 떨어진 건물에 빛을 던진다. 창문은 반짝이고 건물은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이내 뉘엿뉘엿 땅거미가 늘쩡거리면서 퍼지고 가로등이 켜진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무직 노동자, 관광객, 강아지와 함께 걷는 사람, 웃음을 터뜨리고 농담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잿빛 보도를 지팡이로 두드리며 걷는 노인, 빈정대는 사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오가다 만나 대화를 하는 사람, 알듯한 누군가를 마주치면 눈을 서로 피하며 길을 가는 사람. 도시는 어떤 매력이 있어 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이 도시도 언젠가는 시간이 공간을 부식시킬 것이다. 못은 문드러지고 기둥은 분해되어 건물들이 곤두박질칠 때면, 체스 판의 말들이 빈 공간으로 옮겨가듯, 텅 빈 상태로 그들을 기다리는 옆도시로 옮아가고, 도시는 나이테처럼 확대된다.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하나씩 죽고, 그 사이를 이런저런 사람들이 역할을 대신하다, 그들도 사라지고 알고 지내던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아지면 견고하고 치밀한 도시 속에서 홀로 빛바랜 도시의 모습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