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라는 태엽에 감겨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발레리나의 하루
"국민체조 시작!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스피커에서 익숙한 국민체조 구령이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만 들어도 몸은 저절로 움직인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 대신 에어컨의 썰렁한 바람이, 소란스럽게 하늘을 나는 새소리 대신 기계들의 '우우윙'거리는 굉음이 가득하다. 온갖 회색의 기계가 가득 찬 거대한 창고에서, 그들은 마지못해 목을 돌리고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동작은 그저 하는 둥 마는 둥 할 뿐이다. 똑같은 방한복과 방한모, 안전화는 그들 모두를 익명으로 만들었다. 마치 겨울 숲의 나무들처럼, 모두가 똑같은 껍질을 두른 채 서 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컴퓨터 데이터 속에서는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다. 새벽의 고단함을 견디며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일용직 근무는 크게 신청, 확정, 출근, 그리고 퇴근 및 정산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앱을 다운로드하고 이름과 휴대폰 번호 같은 기본 정보를 입력해 회원가입을 마친다. 이후 원하는 근무일과 물류센터, 시간대를 선택해 근무를 신청하고 확정 문자를 기다린다. 문자를 받으면 셔틀버스 앱으로 탑승권을 신청하고, 탑승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뒤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준하는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 셔틀버스에 올라 QR코드를 찍고 몸을 싣는다. 센터에 도착해서는 와이파이존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체크인하고, 자신임을 증명하는 바코드를 발급받아 근무복으로 갈아입는다. 보푸라기가 너덜너덜한 방한복에 몸을 밀어 넣고 옷깃을 끌어올리며, 안전화에 발을 쑤셔 넣는다. 그의 몸은 마시멜로처럼 부풀어 올라 어쩐지 힘깨나 쓸 듯한 모양새가 된다. 완전무장한 상태로 작업장 문을 열자, 얼어붙은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고, 어릴 적 라디오의 둥근 손잡이로 방송국 눈금 사이를 오갈 때 나던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쏟아진다. 지금은 마지못해 스피커의 구호에 맞춰 억지로 몸을 움직이지만, 국민체조가 기뻤던 날이 떠오른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실에 얽혀 흔들리고 운동장에는 하얀 굵은 선들이 선명하게 그어진 운동회 날이었다. 아이들은 흰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의 체육복을 입고 호루라기를 부는 선생님을 따라 국민체조를 했다. 가을 운동회는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마음은 만국기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사원님들, 오늘 물량이 많습니다. 지금 즉시 작업대로 가셔서 작업을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지금 뭐 하세요, 관리자'라는 별명의 관리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연휴, 폭설이나 폭염 같은 악천후,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신선식품 할인 행사, 블랙프라이데이나 사이버데이, 주말 및 공휴일 전날, 매월 1일은 특히 물량이 넘쳐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물량이 적은 날은 거의 없는 셈이다. 주간조에는 '지금 뭐 하세요'를 비롯해 '조금만 서둘러 주세요', '웃음기가 사라질 겁니다', '목표량이 부족합니다', '마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관리자들이 예닐곱 명 배치되어 있다. 주문량과 처리해야 할 물량에 따라 작업 인원수와 배치가 매우 빈번하게 바뀐다. 사원들에게는 전체 목표량뿐만 아니라 매시간 달성해야 하는 목표량이 주어지고, 항상 그 수치를 넘어서야만 한다. 특히 오전 11시부터 점심시간 전까지는 당일 배송의 성패가 달린 마감 시간이기에, 이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관리자들은 어떻게든 목표량을 채워내는 데 능숙하여 마감 시간을 놓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 만족이나 새로운 성장을 위한 혁신이 아니다. 오직 얼마나 빠르게 많은 일을 처리해 이전보다 나은 경영 수치를 만들어내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준하가 다니는 회사는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이곳은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성장하는 조직으로, 타사 제품뿐 아니라 자체 브랜드 상품까지 택배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배송한다. 음식 주문 플랫폼과 OTT 서비스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오프라인과 달리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다시 보기도 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은 무한하지만, 이 무한한 공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한두 페이지의 검색결과에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첫 페이지 가장 좋은 자리에 자사 상품을 배치하고, 판매자에게는 납품가격을 낮추도록 강요하며 광고비와 판매 성장에 비례하는 장려금을 강제한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억압적인 조건 속에서도 이곳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심적으로는 싫어하면서도 대체할 다른 채널이 없다는 이유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머무른다.
여하튼,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서비스를 창조하겠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고객들이 '팡팡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다.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슥슥 스크롤을 내리며 필요한 물건을 클릭하는 순간부터 상품이 가정으로 배달되는 순간까지 고객을 감동시키겠다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라면 무엇이든 제공한다. 마치 고객밖에 모르는 기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고객 만족을 위해서라면 공급사나 판매자, 심지어 직원들에게까지 친화적일 필요는 없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먹거리부터 전자제품까지, 세상의 모든 상품을 잠자리에 들기 전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오전에 주문하면 그날 오후에 받을 수 있다. 한두 번만 이용해도 고객은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필요한 물건을 찾고 구매하는 시간과 노력, 더 좋은 상품을 더 싼 가격에 찾아내는 수고를 덜어주고, 반품까지 쉬우니 말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어미젖을 뗄 무렵 이리저리 날뛰는 송아지를 길들이기 위해 콧구멍 사이에 구멍을 뚫고 나무고리를 끼운 것이 코뚜레다. 이 허접한 코뚜레 하나로 수백kg의 소를 사람이 통제하듯, 물류센터는 수많은 직원을 바코드 하나로 일거수일투족 관리한다. 마치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씌우듯, 바코드는 직원들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는 도구다. 물류센터의 하루는 바코드로 시작해서 바코드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코드는 단순한 인식표를 넘어선다. 그것은 작업자들의 신분증이자, 배고픔을 채워줄 식권이며, 얼마나 일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화장실은 몇 번을 갔는지까지 기록하는 수단이다. 손에 쥐어진 PDA 화면은 끊임없이 다음 지시를 띄우고, 직원들은 명령에 따라 상품을 분류하고, 포장하고, 연이어 나른다. 바코드를 부여받은 직원이 물류센터에서 하루 동안 작업한 모든 양과 그 수치 하나하나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소리 없는 증거가 된다.
어릴 적 선물로 받았던 보석상자 오르골이 생각난다. 태엽을 감으면 금속성 음악과 함께 발레리나 인형이 빙글빙글 돌았다. 바코드라는 태엽에 감겨 돌아가는 물류센터의 하루는 그 오르골과 많이 닮아 있다. 태엽이 풀려가면 음악은 점점 늘어지고 발레리나의 움직임은 곧 굳어버릴 듯 삐걱거린다. 그러면 누군가 힘을 주어 태엽을 다시 돌린다. 태엽이 톱니에 걸리는 작은 소리와 태엽이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진다. 풀리면 다시 조여지고, 또다시 풀리면 손끝이 멍들 정도로 바짝 조여진다. 그렇게 발레리나는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돌다 보면, 어느새 하루의 일이 끝난다. 앱을 이용해 체크아웃을 하고 나면 얼마 후 작업 시간이 분 단위로 정확히 표시되고, '띠리링'하는 소리와 함께 입금이 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본주의의 깔끔함, 오직 숫자로만 존재가치를 말해주는 매정함이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