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은 거들뿐...
세상에는 알아두어야 하는 감독도 참 많다. 그녀의 '파워 오브 도그'는 섬세하고 정교하다.
1993년 <피아노>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언(Jane campion)은 그 후 30여 년 만에 <파워 오브 도그>로 제78회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는다. 그녀의 영화는 페미니즘 시각이 내포된 주제의식과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파워 오브 도그'는 1967년 출간된 새비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것이다.
출연
카우보이 역에도 잘 어울리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예상치 못한 섬뜩함을 연기한 코디 스밋맥피의 연기 대결이 대단하다.
줄거리
이건 서부극의 탈을 쓴 정교한 심리 스릴러이다.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
'내 생명을 칼에서 건져 주시며, 내 소중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ㅡ성경의 시편 22장 20절
어디에선가 들었던 '서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느 순간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다.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Ⅰ. 1925년 미국 몬타나에 두 형제 필과 조지, 두 모자 로즈와 피터가 있다. 형인 필과 동생인 조지는 대목장의 지주로 25년 동안 동업을 해온 사이이다. 한 번도 집에서 씻어본 적이 없는 형인 '필'은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목장에서 힘을 쓰는 일을 주로 하는 그는, 거칠고 예의 없고 동성애를 싫어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리더십이 있다. 그에 반해 동생인 '조지'는 대학교를 나오고, 목장의 안일을 맡아서 하는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다.
Ⅱ. 이웃 마을에서 식당과 숙박업을 하는 미망인 '로즈'는 종이 접기와 훌라후프를 좋아하는 아들 '피터'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식당에서 '필'의 모욕적인 행동에 두 모자가 상처를 받게 되자 '조지'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사랑이 싹터 결국 결혼하게 된다. 같은 집안에서 두 형제와 두 모자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필'은 어리숙하고 착한 동생을 그녀가 꼬드겼다고 생각하여 매사에 '로즈'의 신경을 거스른다. '로즈'는 '필'의 그런 행동 때문에 술에 의존하게 된다.
Ⅲ. 방학을 맞아 의과대학을 다니는 피터가 집에 와서 잠시 생활을 한다. 비쩍 마른 몸매와 여성적 취향인 피터를, 일꾼들은 게이라고 놀려댄다. 어느 날 피터는 숲 속에서 필의 비밀 장소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필이 매사에 영웅처럼 말하던 '브롱코헨리'에 관한 비밀이 있었다. 둘은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던 시대라 필은 남성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 권위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했던 것이다. 필은 로즈를 정신적으로 말려 죽이는 방법 중 하나로 피터를 자기 방식으로 물들이려고 한다. 처음에는 피터를 무시하고 조롱했지만 피터에게서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피터를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려고 했으나 자신이 피터를 사랑하게 될 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Ⅳ. 피터는 겉으로는 나약해 보이나 자살한 아버지의 밧줄을 끊거나, 살아있는 토끼를 해부학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해부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는 술에 의존한 채 버티는 어머니를 구할 계획을 세운다.
마치며
예상을 벗어나는 뒷부분은 압권이고, 떡밥은 제대로 수거되었다.
ㅡ 피아노를 만든 이후 30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뒤집어놓는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ㅡ 영화 속 소재와 장면들이 각각의 무게감을 잃지 않았다.
ㅡ 동성애, 질투, 백인 우월주의, 복수, 마초이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욕망과 정체성... 어떻게 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다양한 생각을 담고 있다. 마초적인 자의 비극적 결말이든 마초적인 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놀라움이든.
ㅡ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멋있지만 그가 서부극에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그를 쓰는 이유를 알았다.
ㅡ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영화의 많은 씬에 메타포가 있다.
ㅡ 폭발 일보 직전의 감정을 절제해서 긴장감이 배가되는 상승감. 몰입을 위한 감독의 선택에 경애를.
ㅡ 마지막에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장르적 쾌감. 서늘하면서도 섬뜩하다.
ㅡ 영화관에서 봤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