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은 스테파네트를 만났을까?
어릴 때, 나는 막연하게 서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따져보면 강화는 다리를 건너 한 시간이면 서울에 닿는 엄연히 수도권이며 말도 서울말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막연한 환상을 품게 되는 것이었다.
맥도널드와 KFC를 보면 그랬고, 영화관을 보면 그랬고, 시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오는 파랗고 푸른 버스를 보면 그랬다.
특히, 지나가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우리 엄마 친구, 우리 아빠 친구, 우리 아빠의 아는 사람의 친구, 우리 엄마 친구의 아는 사람인 관계로, 내가 강화읍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반나절 안에 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특히 그랬다.
그리고 그 시절 ‘서울책방’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서울책방’은 우리 ‘강화 타이루’ 옆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서점이었다. 헌책을 사고팔기도 하고, 책을 빌려주기도 하는 책방으로 기억한다.
‘서울책방’은 관청리 골목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강화는 ‘토박이’라는 말보다 ‘타지 사람’이라는 말이 더 낯설 정도로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 ‘서울책방’ 아저씨는 ‘서울’이라는 완벽한 타지에서 굴러들어 온 사람이었다.
아저씨의 뒤통수에는 ‘서울에서 제법 큰 출판사를 다녔다더라.’ ‘가방끈이 어마어마하게 길다더라.’ 하는 소문이 따라다녔지만, 그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확실한 건, 그가 강화로 들어오게 된 이유를 스스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노라’라고 밝혔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미스터리에 싸인 채 관청리 골목에 스며든 그는, 우리 아빠와 동갑내기였지만, 처자식 하나 없이 혈혈단신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등장과 동시에 우리 골목의 공식 노총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나이 든 남자가 혼자 살아 안쓰럽다며 혀를 쯧쯧 찼다. 동네 아저씨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어서 참한 여자한테 장가들어야지.”라며 훈수를 두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는 혼자 살 운명이에요.”
희고 고운 얼굴, 안경 너머로 지적인 눈빛, 아나운서 같은 단정한 목소리까지 그는 어린 나의 눈에도 멀끔한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결혼이 선택의 영역이 아니던 시대에 노총각 아저씨는 많은 사람의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상상에 부채질한 것은 다름 아닌 서책 아저씨였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술에 취하면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린다고 했다. 무슨 하소연도, 사람의 이름도 내뱉지 않고, 그냥, 그냥, 아주 서럽게 눈물만 서럽게도 떨어트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서울 아저씨 눈물의 이유를 열심히도 추리하곤 했다.
그가 가진 미스터리와 무관하게 나는 서울책방을 참 좋아했다. 내가 서울책방을 드나든 건, 책이나 우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곳은 책방이라는 간판을 단 동네 유부남들의 피난처였고, 나에겐 짭짤한 용돈벌이 장소였기 때문이다.
가게 안은 늘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아저씨들은 삼삼오오 모여 빨간 조각을 맞추기에 바빴다. 나는 아빠가 안 보이면 습관처럼 책방 문을 열었다. 아빠 옆에 붙어 있다 보면 자연스레 담배 심부름을 하게 됐고, 그 대가로 쏠쏠한 거스름돈을 챙길 수 있었다.
그날도 불순한 의도로 책방 안에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들의 자리는 길어졌고, 서책 아저씨는 지친 얼굴이었다.
그는 가게를 한번 휙 둘러보고는 곧 가게 문을 열고 나가더니 문 앞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보던 나도 쪼르르 따라나서서 옆에 앉았다.
가게 앞 남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게 앞에 앉아 그날의 노을을 같이 보았다. 하늘이 붉게도 어둡게도 보여, 화려하면서 초라한 광경이었다. 한참 하늘을 멍하게 보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너는 이야기책을 좋아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이라는 소설이 있단다. 거기에는 목동과 아주 예쁜 소녀가 나와. 아름다운 이야기야.”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가만히 그들을 떠올렸다. 양을 이끄는 외로운 목동과 노란색 긴 머리에 드레스를 입은 소녀, 동화 속에 나오는 평화롭고 조용한 동산, 아름다운 이야기.
“아저씨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다시금 소리 없이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소설처럼 사랑했지.”
어렸던 나이였지만, 나는 아저씨의 무거운 비밀을 조금 들춰보는 것 같았다.
그날, 그의 눈빛에 비춘 저무는 해를 보며, 우는 것처럼 보이는 웃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은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의 쓸쓸한 표정으로 말미암아 '분명 목동과 아가씨의 사랑, 아름다울지언정 행복하진 않았겠지'말없이 생각했다.
그날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아저씨가 말한 ‘별’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아저씨와 서울책방 모두 골목에서 볼 수 없게 된 다음이었다.
가끔 나는, 그날과 같은 노을을 볼 때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날마냥 쓸쓸하고 찬란한 기분이 들 때에도 책방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나누던 이야기의 기억을 쓰다듬다가 그때 묻지 못한 것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아저씨, 이제 스테파네트는 잊었어요?”
그렇게 물어도 내 상상 속 아저씨는 빙그레 웃을 뿐이다.
아저씨의 눈이 참 깊던 그날처럼 말이다.
그리고, 삼십 년이 더 지나 문득 그때를 떠올리다가 나서 알게 된 것은,
온 동네가 장가가기를 그토록 바라고, 걱정하고, 가끔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던 그 노총각의 나이가 기껏해야 서른다섯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 아직 창창할 나이, 돌까진 아니어도 자갈쯤은 소화할 수 있는 나이.
서른다섯.
나는 이미 서책 아저씨보다 한참 위인 누님이 되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날의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깊고 쓸쓸한 눈빛이 없다. 아직도 고독이니 삶의 깊이는 도저히 모르겠다.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 뿌셔뿌셔가 맛있을 뿐이다.
내 마음속, 언제나 서른다섯 진짜 어른의 눈빛을 가졌던 서책 아저씨는 지금 어떤 별을 보고 계실까. 곁에는 누가 있을까.
어찌 됐든 너무 외롭지 않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