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으로 끝난 내 동생의 '첫사랑'

91년 생, 아폴로와 밀크시슬 사이

by 영차보

반야심경으로 끝난 내 동생의 '첫사랑'

91년 생, 아폴로와 밀크시슬 사이




“어린놈이 벌써 무슨 영양제를 이렇게 많이 먹어?”


동생 방에 가득 놓인 영양제를 보고 던진 말에 동생은 피식 웃는다.


“누나, 나도 이제 서른여섯이야.”


벌써 서른여섯이라니, 나와는 터울이 제법 지는 동생이라 항상 한참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가만 돌아보니 꼬맹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아폴로’와 ‘아이셔’를 참 좋아했던 우리 집 막둥이가 이제 ‘고용량 밀크시슬’과 ‘활성 비타민‘으로 하루를 버티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나도 좀 먹어. 피부가 이게 뭐야?”


나에게 한 무더기의 영양제를 내미는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염이 거뭇한 뺨, 점점 넓어지는 이마, 이미 상해버린(?) 그 얼굴 안에는 옛날 관청리 골목의 미소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눈빛에서 어렴풋하게 옛날 얼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의 작고 귀여웠던 내 동생.


삼십 년 전, 결코 예쁘장하다고 말할 수 없는 강화타이루 집 딸내미 대신 미모를 담당한 것은 내 남동생이었다.


“아들이 참 예쁘장하네, 딸내미는... 씩씩하고.”

디스인지 칭찬인지 모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 어린 눈에도 동생은 정말 예뻤다. 동생이 귀여워서 누가 데리고 가겠다 하는 어른들의 말에 나는 동생의 손목을 꼭 부여잡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토록 동생을 매우 사랑하는 누나였다.


“동생 아저씨 줘라.”라는 아저씨의 장난에 “얼마까지 주실 건데요?”라며 제법 대담하게 흥정했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따라다니는 귀찮다고 장날에 동생을 버리러 갔다가 이발관 아저씨에게 걸려서 잡혀 왔던 일도 내 기억엔 없는 일인 것이다.


예쁘면 얼굴값, 못생기면 꼴값을 떤다고 했던가, 누나가 열심히 꼴값을 떠는 동안 동생은 최선을 다해 얼굴값을 했다. 동생 나이 고작 일곱 살이었다.


당시 우리 가게 두 칸 옆에는 양장점이 있었다. 혜진이는 그 집 둘째 딸이었다. 그리고 혜진이네 언니 혜정이는 관청리의 고독한 늑대, 아니 수줍은 고양이였다. 그 아이는 늘 가게 안에서 조용히 책만 읽었다. 하지만 혜진이는 언니와 달랐다. 야무진 표정에 앙칼진 목소리, 차세대 골목대장의 포스를 풍기는 유치원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혜진이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일곱 살의 어울림이라 해봤자 가게 앞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소꿉장난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둘은 제법 진지했다. 문방구 앞 뽑기에서 뽑은 반지를 커플링이라며 나눠 낀 둘은 서로를 바라볼 때마다 얼굴에 발그레하게 홍조가 돌았다.


그해 여름, 동생은 혜진이를 태운 자동차를 밀며 땀을 뻘뻘 흘리곤 했다. 그래도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랑이란 건... 저런 등신짓인가.”


하지만, 땅콩만 한 그들의 키만큼 그들의 사랑 역시 짧았다. 둘의 결말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닿아가고 있었다.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그들의 풋사랑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타이루 가문과 양장점 가문의 반목 따위가 아니었다.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종교갈등’ 때문이었다.


나와 동생은 강화도에서 유일한 불교 유치원이자 지금도 운영 중인 ‘코끼리 유치원’ 출신이다. 부모님이 불교 신자도 아닌데 우리가 그곳에 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비즈니스’ 때문이었다.


당시 유치원의 수영장 타이루 시공을 우리 ‘강화 타이루’가 맡았던 것이다. 그 불심보다 끈끈한 수주 덕분에 우리 남매는 나란히 2회, 7회 졸업생이 된 것이다.

하지만 혜진이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혜진이네 아저씨는 ‘술을 한 잔도 못 드시는 양반’이었고, 아줌마는 커피잔 앞에서도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혜진이는 당연하게도 읍에서 가장 큰 교회의 유치원 가방을 메고 다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던 가을 오후였다. 항상 붙어 있던 둘이 똑 떨어져 동생 혼자 울먹거리며 가게로 들어왔다.


“누나, 혜진이가 나 지옥에 간대.”


울먹이는 동생의 말을 들어보니 사탕을 받으려고 동생이 열심히 외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문제였다.

그 시절 코끼리 유치원에서는 불경을 잘 외우면 스님들이 사탕을 나눠주셨다. 그리하여 동생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반야심경 그저 외우기만 할 뿐이었으나, 중앙교회 유치원 혜진에게 그것은 용납 못 할 일이었을 테다.

“우리 막내, 오늘 차였대요. 실연당했어요.”


내 놀림에 그날 밥상에서 동생은 엉엉 울었다. 엄마와 아빠는 동생의 눈물을 보며 귀엽다고 웃었지만, 오히려 나는 일곱 살 꼬마의 눈물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짧고 어린 사랑이 뛰어넘을 수 없는 하나님과 부처님의 틈 사이에서 깨어지는 모습에 인생의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이후 둘은 동네에서 서로를 모른척하기 시작했다. 가끔 혜진이는 “흥!” 소리와 함께 팔짱을 끼고 동생을 노려보기도 했다. 동생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겨울이 다 가기 전, 동생과 비디오 가게 딸내미가 팔짱을 끼고 관청리 골목을 누비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동생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얼굴값을 했다. 역시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히는 법이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의 끝을 계산하지 않고 문방구 반지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그들의 마음이 소중했다는 것을. 동생과 혜진이가 일곱 살에 배운 것은, 서로를 향한 서툰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삼십 년이 지나고, 동생의 얼굴은 아쉽게도 역변했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녀석은 아직도 사랑꾼인 모습 그대로 여자친구와 한 시간째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삼십 년이 지나도 동생의 혀 짧은 소리는 듣기가 몹시 괴롭다. 다만 달라진 건, 이번엔 동생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내심 바라는 내 마음이다.


자애로우신 동생 여친님이시여. 제발 방생하지 마시고 부디 거두어주시옵소서.


혜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양장점은 골목에서 가장 빨리 사라졌고, 그 뒤로 듣지 못한 그 집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아마 어디서든 야무지게 잘살고 있을 터다. 동생이 여전히 사랑꾼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