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2일. 경기도 화성 어느 마을에서
아침부터 동네가 영 수상하더라. 말들이 골목을 빙빙 돌어. 누가 잡혀갔다더라. 누가 어디서 두들겨 맞았다더라.
나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만 빨았지. 이 나라가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더라고. 나라가 나헌테 밥 한 숟갈 더 얹어준 적이 있나. 일본 놈들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내 하루는 맨날 똑같았어. 배고픈 것도 그대로고, 사는 게 팍팍한 것도 그대로야. 쯧.
작년엔가 촌놈이 출세한 아들 덕에 경성을 가봤잖아? 이제 경성에는 그 앙팡인지 뭔지 그걸 밥 대신 먹는 세상이 온대. 근데 그 앙팡이 얼만 줄 알아? 세상에. 하루 온종일 벌어야 그 조막만 한 거 하나 살 수 있더라. 사람이 그걸 먹고 하루 종일을 살어? 카악. 퉷. 아주 그걸 보고 분통이 나더라니까.
그래서 그 경성 놈들은 첨에는 다 미쳤나 했지. 그 비싼 빵을 척척 사 먹으면서도 한글을 못 쓰게 했다고 성을 내고, 사람들 모이지도 못하게 했다고 이를 가는데. 아니 막말로 나 같은 사람들은 글을 알아야 못 쓰는 줄도 알 거 아니야. 그저 하던 대로 시키는 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지.
근데 옆집 순철이가 그러더라고. 아니라고. 나라 잃은 백성은 사람도 아니라고. 사람답게 살라면 나라부터 있어야 한다고. 몇 달 전에 그놈이 길가로 나가더니 미친 사람처럼 만세! 만세!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마을 밖으로 사라져 버렸어. 그 발광을 몇십 명이서 하더라니까? 그 소리 지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악을 쓰는지, 마을 밖까지 나가서도 그 소리가 들려.
아니 근데 이 순철이 놈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도 않아. 어디 가서 뒤졌는지. 아니면 진짜 길을 잃어버린 건지. 암튼 유별난 놈이야. 집 가장이나 돼가지고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쯧. 그놈 나가고 난 다음에 그 제수씨는 미친 사람처럼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 마을에서 떠나버렸어. 쓸데없는 짓 해서 집안만 망쳤다고.
근데 그 순철이 뒤를 내 아들놈이 따라갔다 하더라고. 그 만세 하는 데로 갔다네? 가슴이 철렁했어. 이 육시럴 놈. 거기가 어디라고 따라가. 맨날 공부한다 어쩐다 해놓고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어쩌고 우리 손으로 되찾아와야 한다느니. 그 순철이 새끼랑 같은 소리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쯧.
처음엔 화만 났어. 나라가 뭐라고. 아니 막말로 나라가 우리 집 밥상을 차려줘 봤어? 나라님이 이 술 한 병을 갖다 줘 보길 해. 아님 술 한잔을 따라주길 해?
근데 말이야. 동네를 가만히 둘러보니까 마을이 휑해. 집집마다 하나씩은 그 만세 따라 나갔다가 못 돌아온 사람이 있더라고. 순철이 놈도 그렇고. 내 아들새끼도 그렇고. 앞집 큰 놈도. 건너 김씨네 사위도. 이게 빈자리가 자꾸 눈에 밟혀.
그걸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만있질 않아. 그 썩을 놈들 거기 다 있을 것 같어. 순철이도 거기 있을 것 같고. 우리 그 자랑스러운 아들도 그 속에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든 게 이거야. 내 앉아만 있으면 영영 못 찾는다. 이제는 가족이라곤 하나 남은 내 새끼만 보고 사는데. 이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
그래서 말이야.
어제가 3월 1일이라지. 경성에서 무슨 대표라는 사람들이 뭘 주저리주저리 썼다던데. 나는 까막눈이라 그게 뭔지는 도통 모르겠어. 근데 사람들이 막 떠드는데 이상하게 누가 해보라는 것처럼 막 등을 떠미는 것 같은 거야. 마치 누가 나오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래서 나도 오늘 한 번 나가보련다. 아들 찾으러 나가야지.
오늘은 말이야. 이 지긋지긋한 술 한 병 다 비우고 나면. 나도 순철이놈 따라서 만세 길 한번 걸어볼라 해. 그 순철이놈이 뭐랬더라. 그놈 새끼가 뭐라고 소리 지르던데. 대한 독립 만세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