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살인 사건, 그녀는 사람에게 실험을 했다

너무 쉽게 얻은 지식이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by 영초이
수면제 과량과 술을 함께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최근 모텔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소영이 범행 전 AI에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질문은 간결했다. AI의 답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정도 정보는 약 설명서에도 이미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정보 자체가 아니다. 그 정보를 어떤 의도로 질문했느냐다.


이 질문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전 피해자들에게 수면제가 든 술이나 피로회복제를 건넸으나 실패했다. 3명의 남성은 의식을 잃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여러 차례 질문을 거듭한 뒤, 수면제 양을 두 배 이상 늘려 다음 범행을 준비했다.


첫 번째 시도 - 실패 - 정보 검색 - 조건 변경


이 일련의 과정은 놀랍게도 연구실에서 실험 조건을 조정하는 방식과 지독하게 닮아 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는 치료가 아니라 살인이었다. 심지어 이번 실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적의 용량을 찾는 일과 닮은 이 과정이 치사량 설계로 변질되었다.


이 사건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김소영은 정신질환을 가장해 병원을 다니며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의료 시스템의 기본 전제는 환자에 대한 신뢰다. 의사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를 믿고 약을 처방한다. 그녀는 그 신뢰를 이용해 살해 도구를 확보했다. 고통받는 환자를 돕기 위해 구축된 의료안전망 전체를 악용하였다.


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십수년의 연구와 혹독한 검증을 거친다. 우리가 가장 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늘 하나다. 이 약이 환자에게 위험할 가능성은 없는가. 약상자에 빼곡히 적힌 이 경고문들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정보를 읽고 정반대의 계산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치명적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 이 지점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과 분노를 느낀다.




모텔 살인 사건의 수사가 계속되면서 AI의 위험성을 논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칼과 약이 그렇듯, 지식 또한 누구의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치유제가 되기도, 흉기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전문 지식에 접근하는 데 장벽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색 몇 번이면 전문적인 의학 정보가 손에 들어온다. 지식 접근의 장벽이 사라진 시대에 AI는 너무도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몸이 아파 원인을 찾는 사람에게도, 누군가를 해하려는 사람에게도 평등하게 말이다. 우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축적해 온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살인을 정교하게 만드는 참고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 뼈아프게 목격했다.


결국 이 약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이 범람하는 지식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이해시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지금은 너무도 쉽게 정보를 얻고, 믿을 수 있다. 정확한 지식을 갖는 사람이 약의 유용함을 알리고, 동시에 그 위험성도 정확하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확히 쓰이면 사람을 살리고, 잘못 쓰이면 사람을 죽인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해시키는 것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이 지식이 악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약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 질문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숙제가 된 것 같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약이 살인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그 가능성 자체가 지독하게 불하다.


글을 쓰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며,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모든 사람이 약을 이해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약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사업을 준비하며 세운 목표를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살의를 가진 자가 AI와 검색창을 두드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량한 이들이 약의 두 얼굴을 몰라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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