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사진 속 20대의 내 모습과, 거울 속 지금의 나는 너무도 많이 달라져 있다. 흰 눈처럼 하얗던 얼굴도, 날렵했던 턱 선과 장난기 가득했던 눈매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머리엔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가고 얼굴엔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간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던 때의 단단했던 몸도 이젠 조금씩 약해짐을 느낀다.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과 주름 가득한 얼굴, 구부정한 걸음걸이를 볼품없다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검은 머리카락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하얗게 새어버린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보며, 그 볼품없다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이 어찌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겠는가? 건방지던 어린 시절의 내 몫이며,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누님의 몫이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몫도, 온 동네 시끄럽게 싸워대던 동네 구멍가게 아줌마와 빌린 돈을 갚지 않던 어머니의 친구도, 아버지 장례식에 얼굴 한번 안 비치던 막내 작은 아버지의 몫도 있을 것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 볼품없다 여겼던 어르신들의 흰머리와 주름. 철이 들어 생각해 보니 그 안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그나마 이제 어른이 된 내게 어머니의 흰머리와 얼굴의 주름, 거칠어진 손과 발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하다 여겨지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도 지금의 어머니처럼 내 자식들에게 귀함을 받을 수 있을까?
흰머리와 주름, 그 속엔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