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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다림

by 카이

추석 명절을 지내기 위해 어머니께로 향하는 길, 아직 20여분 정도는 더 가야 하지만 거의 다 왔노라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얼마 후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화단 한쪽에 쪼그려 앉아계신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집에 올 때마다 어머니가 항상 밖에 나와 기다리셨다는 것을 또 깜빡 잊었다. 미리 생각했더라면 좀 더 늦게 도착할 것이라 거짓말을 했을 텐데. 항상 이 모양이다.

아마도 근처에 왔다는 전화를 받으시곤 곧장 내려와 20여분을 기다리셨겠지. 그리곤 다리가 아파 아파트 화단 옆에 쪼그려 앉아 계셨을 테다.

도착하자마자 손자, 손녀들이 달려들자 어머니 얼굴에도 웃음꽃이 한가득이다. 이 순간의 기쁨을 위해, 1초라도 빨리 손주들을 보시고자 한참이나 전부터 밖에 나와 기다리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해진다.


“도원아,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처갓집으로 가기 위해 다른 때 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아들 가족을 보시며, 어머니는 애써 태연한 척하시지만 목소리엔 아쉬움이 스친다.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녀석은 오늘도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은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이제는 생각도 몸도 많이 자란 듯 다음에 다시 만나길 약속하고 기꺼이 손을 흔들어 준다.


떠나는 아들 가족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시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 늦은 밤 찬바람이 불어서인가? 오늘따라 어머니가 진하게 그립다. 어쩌면 오늘도 어머니는 ‘언제쯤 손주들을 다시 볼 수 있나?’하고 달력을 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40이 넘었건만 어머니가 보여주시는 사랑 앞에 자꾸만 부끄러워짐은 아직도 마음의 품새가 한참이나 부족한 듯하다.


다음번 어머니께 갈 때는 도착시간을 30분 정도 뒤로 말씀드려야겠다. 거짓말이지만, 어쩌면 거짓말도 신이 주신 인간만의 특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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