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사적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와는 달리 개성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범했던 나의 삶이 부끄러워 괜스레 의기소침해질 때도 많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 내 삶 또한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전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서 여기 계신 분들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부럽습니다."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내게 사람들은 응원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끝나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웃으며 내게 이런 얘기들을 한다. -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군인 출신은 한 명도 없습니다. 소령으로 전역하신 분은 처음 만나봅니다. 특전사 출신에 파병도 다녀오셨다고요? 아내분은 특전사를 전역하시고 지금은 소방관이라면서요?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평범하시다는 거죠? -
가만 생각해 보면 15년간의 군생활, 그중 10년을 특전사에서 지냈으니 내게 평범한 사람들이란 군인, 특전사, 경찰, 소방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내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특별해 보이듯,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특별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책을 출간하겠다며 이런저런 글을 쓰는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본인이나 아내분 이야기로 글을 쓰면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왜 그런 글은 안 쓰세요?"
아내 또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왜 나에 대한 글은 안 써? 글 쓰기 소재로 너무 좋지 않아? 특전사 출신에 지금은 소방관이고, 대한민국에 그런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어?"
난 지금껏 '나'와 '아내'를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그런 평범한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나와 아내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특별하다 느낄만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오늘 큰 용기를 내어 나와 아내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결심한 이유다.
앞으로 매거진의 제목처럼 나와 아내의 러브스토리를 주로 쓰겠지만, 가끔은 나와 아내 각자의 에피소드들도 소개할 계획이다. 부디 나와 아내의 지극히 평범한 이 러브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물했으면 좋겠다. 아내와도 내가 쓴 글을 함께 읽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에 글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나와 아내의 행복한 추억도 하나, 둘 늘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년 전 결혼기념일 즈음하여 아내에게 썼던 글로 '특전사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시작하려 한다.
도로 위를 살포시 덮은 눈을 밟으며 내게 걸어오던 너를 처음 본 날. 그날, 너를 처음 만난 날 내게로 걸어오던 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보며, 내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지. 첫눈이 왔던 그날, 난 네게 첫눈에 반했던 거야.
결혼 전 처음 부모님을 뵈었던 날. 그때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아버님께 붙잡혀 고기 4인분에 비빔밥까지 먹었었지. 난 1시간 전에 이미 밥을 먹었었는데 말이야. 고기 한 점을 넘기기 위해 물까지 마셔대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어머님이 주셨던 비빔밥까지 차마 사양하지 못하고 싹싹 긁어먹었었지. 너와 네 부모님께 잘 보일 수만 있다면 배가 터져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땐 정말 그랬어.
널 만나고 2년 만에 너의 손을 처음 잡던 날, “이 손잡는데 2년 걸렸네!”라고 말하던 내게 웃어 보이던 너의 얼굴이 가끔씩 생각나곤 한다. 그땐, ‘이제 되었다.’는 생각보단 ‘이제 시작이구나!’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래지 않아 네게 청혼할 수 있었고, 큰 다툼 없이 지금까지 왔네.
언제까지고 이렇게 함께라면, 난 언제나 변함없이 널 사랑할 테니 우린 평생을 다정하고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겠지.
너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넌 잘 모를 내 기억 속의 너를 내가 많이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