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특수전 사령부 예하 11공수특전여단에서 중대장을 마치고 특전사 요원들을 교육하는 특수전 교육단(현재는 특수전 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화기교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아내는 특수전 사령부 직할 부대인 707특수임무단에 복무 중이었는데, 장기복무 비선과 부상 등의 이유로 특수전 교육단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전입을 온 것이었다.
아내가 부대로 전입 오던 날, 그날이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보고할 문건이 있어 차를 타고 본청(부대장 집무실이 있는 건물로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등의 참모부가 근무하는 곳) 건물로 이동 중에 아는 여군을 만났고, 그 여군의 부탁으로 아내를 본청까지 데려다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아내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귀엽다'였다. 마침 그날 첫눈이 왔었는데 내 차로 폴짝폴짝 뛰어오던 아내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이성적으로 끌렸다기보다는 '좋을 때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참고로 아내와 나는 6살 차이다.)
당연히 조수석으로 탈 줄 알았던 아내가 갑자기 뒷자리에 탔을 때는 '특이한 여자네'라고 생각했었다. 그 자리는 일명 '상석'이 아닌가? 나중에 아내에게 왜 그랬었냐고 물으니 운전석 옆자리는 주인이 있을 것 같아 그랬다고, 내가 결혼 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첫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다. 본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눈이 오는데도 차를 몰고 그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려 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결국 중간에 차가 멈춰 서 버리고 말았다. 핸들을 좌우로 움직이고, 후진과 전진을 반복한 끝에야 겨우 겨우 언덕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룸미러를 통해 훔쳐본 아내의 모습,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아내에게 호감이 생긴 것 같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떠날 것 같지 않은 사람. 밝고, 통통 튀는 성격에 당황한 표정이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 내가 기억하는 아내의 첫인상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용기 내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여군 부사관에게 "오늘 전입 온 여군이 있는데, 소개 좀 시켜줘요"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여군은 잠시 후 깔깔 거리며 웃더니, 걱정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땐 정말 몰랐다. 2년간 손 한 번 못 잡아 보고 애만 태우게 될 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