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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 Jun 30. 2023

특전사 작업의 정석

평범함을 거부한다.

  사실 군인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32살이었는데, 부대 안에서도 동기나 선배들 중 미혼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군인들 연봉이 적지 않을뿐더러 군마트와 복지회관(식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을 이용할 수 있어 생활비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게다가 혼인 신고와 동시에 지급되는 군인 아파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32살의 나이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내가 좀 정상적이지 않은가?'란 생각도 했었다.


  그런 시기에 정말로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 혼자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지. 그동안 몇 번의 실패를 통해 터득한 연애 기술들을 총 동원하여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우연한 첫 만남을 인연으로 바꾸기 위해선 남들과 다른, 창의적이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개팅 같은 뻔하고 평범한 데이트로는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어필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고심하며 방법을 찾던 중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원래 특전사 요원들의 주 임무가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의 군생활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여군 회식', 저녁에 부대 여군들이 회식을 한다는 정보를 확보하고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먼저, 가장 친한 여군 두 명을 섭외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여군 부사관과 동기였던 간호장교. 둘은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들로부터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고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이랬다.

1. 야근을 하던 중 우연히 저녁을 먹으러 간 것처럼 군복을 입고 여군들이 모여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2. 그러면 같은 사무실의 여군 부사관이 내게 같이 식사하자고 얘기한다.

3. 하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한다. 그러면 간호장교가 억지로 나를 자리에 앉힌다.

4.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5.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두 명의 여군은 나에 대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어간다.

6. 그리고 2차로 노래방에 가기로 하지만, 난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며 인사를 한다.

7. 그러면 또 두 명의 여군은 적극적으로 나를 끌고 노래방으로 들어간다.

8. 노래방 비용은 회비에서 지출할 테니 난 센스 있게 음료와 술을 준비한다.

9. 그리고 노래방에서 가진 모든 끼를 발산하여 아내에게 나를 어필한다.

10. 노래방을 나오면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작전의 목표는 명확했다. 첫째, 나를 뇌리에 각인시킨다. 둘째, 궁금증을 유발한다. 셋째,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결정적 전투 시기와 장소는 노래방으로 선정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후로 아내는 나를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후 있었던 -태권도 협회 특전사 체험 행사- 를 함께 지원하면서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어떨까?'란 생각도 했었다고 하니,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이번엔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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