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에세이
어느 날, 책상 서랍 구석에서 오래된 만년필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눈에 띈 건 낡고 흐릿해진 몸체였다. 반들거리는 금빛 장식도, 매끈한 디자인도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싸구려 만년필이었다. 하지만 그 만년필을 손에 쥐는 순간 묘한 감정이 스쳤다. 꼭 오래된 기억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잉크는 말라붙고, 펜촉은 닳아 있었지만 그 만년필은 여전히 오래된 친구처럼 내 손에 익숙했다. 나는 그 펜으로 캘리그라피를 하곤 했다. 서툰 손길로 종이에 꾹꾹 눌러 글씨를 쓰던 날들, 글씨 하나에 마음을 담아보려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낡은 만년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떤 물건들은 단순한 쓰임새를 넘어 우리의 흔적을 담는다. 이 싸구려 만년필도 그랬다. 비록 외관은 볼품없이 변했지만, 그것은 한때,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이 만년필 속에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나의 첫 시도와 설렘, 그리고 마음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년필이 지금 내게 들려주는 속삭임은 단지 과거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며, 만년필에 새로운 잉크를 채워 넣었다. 닳고 닳은 펜촉에서 잉크가 번지며 종이에 첫 자국을 남길 때, 그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