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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이 Aug 01. 2024

편지의 미덕





편지 쓰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죽고 나서 나를 옹색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이 남아 있으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면서도 여전히 편지 쓰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소은이라는 친구를 만나는 날. 그날도 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날도 아니고, 엄청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날도 아니었지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최근에 얘가 상처받는 모습을 옆에서 너무 많이 지켜봐서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주기 전에는 늘 마음이 울렁거린다. 나는 소은이를 만나자마자 가방 안에 있는 편지를 떠올리며, 계속 '언제 주지?' 같은 것을 떠올렸다. 


"자! 선물이야!" 


나는 폭탄을 던지듯 불시에 소은에게 편지를 건넸다. 폭탄이 넘어가자 나는 그대로 무장해제 되었고 신나게 노느라 편지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리고 미션을 성공한 사람처럼 뿌듯해하며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본 것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휴지. 휴지를 가져올게." 


다급하게 달려가 휴지를 챙겨와 소은에게 건넸다. 그날 나는 소은이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내가 썼던 문장을 읽느라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은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것도 같았다. 편지에 썼던 모든 말들이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었던 다정한 말들을 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말들에 자주 울었고, 자주 위로 받았다. 그래서 더욱더 소은을 알 것만 같았고 또 그만큼 알고 싶어졌다. 


어떤 사람은 의도를 가지지 않고 다가온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그의 빈약한 손을 본다. 나는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다. 무기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그럼 나를 상처입힌 것은 무엇이지? 나는 나를 찌른 것이 무엇인지 몰라 망연자실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이곳에는 나밖에 없어. 그렇다면 나를 상처입히는 것은 나인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이쯤의 생각까지 온다면 이미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이십 대 시절의 나는 자주 이런 생각에 몰두했다. 아니, 틀렸다. 왜냐하면 지금도 자주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동안, 나의 친절한 친구들은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해줬다. 


"나는 그냥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다른 사람이 아닌 너의 마음을 제일 우선시했음 좋겠어. 그 사람들에게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소중한 네가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휘둘려서 소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시간도, 마음도, 체력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마모되기 마련이니까." 


여기저기서 깨지고 부딪치고 다치느라 나도 이제는 안다. 


실은 누군가를 상처입힐 만큼 강력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뭘 모르고, 자기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도 편지를 썼다. 너를 괴롭게 하는 일들에서 너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힘주어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나였다는 사실로 우리가 상처받아선 안 된다고. 그건 내가 나의 다정한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지만 좀처럼 믿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어떤 글은 타인에게 닿기 전에 먼저 내게 닿는다. 그건 편지를 쓰는 내가 자주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편지를 쓰는 건 어쩌면 타인의 다정을 빌려 나에게 다정해지는 일이 아닌가 하고. 


어느 날 밤에, 나는 상자에 모아두었던 편지들을 꺼내 읽었다. 어릴 때부터 모아온 편지 모음 안에는 비교적 최근의 편지부터, 이제는 봉투마저 빛바랜 편지까지 여러 편지가 섞여 있었다. 


편지를 쓰고 있을 때면 그 사람과 함께 했을 때 가장 진귀했던 경험 같은 걸 떠올리게 된다. 얘와는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런 일도 있었지. 해마다 반복해서 떠올리는 기억도 있고 어쩌다 가끔 떠올리는 기억도 있지만, 편지를 쓸 땐 온 기억을 동원하게 된다. 걔와 나만이 아는 기억을 열심히 생각해 쓰고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금 행복해지고야 만다. 


그날 밤에도, 나는 몇 개의 편지를 뽑아 읽었다. 모든 편지는 먼 미래의 행복을 당부하며 끝이 났다. 어떤 편지에도 인생 같은 건 망해버리길 바라는 글은 없었다. 어떤 관계도 끝나버림을 가정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편지에 적힌 말은 때때로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나는 지금과는 비슷하지도 그러나 다르지도 않은 고민을 하며 허우적거렸다. 그 편지들 속 이야기들은 내가 나를 아끼는 것보다 더 나를 아끼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편지의 글귀는 너무 진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편지의 독자가 오롯이 나라는 사실 때문에 그 글귀들이 진귀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날엔 문득 누군가에게 앞으로도 행복해지자고 대책 없이 약속하고 싶다. 이미 오래 알고 지냈지만, 앞으로도 지겹도록 알고 지내자고. 진심은 아주 가끔 표현되어야만 진심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언어로 편지를 쓴다. 우리 오랫동안 서로를 기대하며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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