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길 때마다 친구는 자주 내게 '넌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라고 타박했다. 무언가 경애하는 세상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것에 흠뻑 빠져들어 내가 그것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길 소망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잠깐 그 세계의 아름다움을 맛보곤 다시 다른 세계의 아름다움으로 휩쓸려가곤 했다. 나는 나의 게으름은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잠깐 피아노를 연습하고, 몸이 조금 둔해질까 생각하면 달리기를 하러 운동화를 신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빵이나 쿠키 같은 것을 굽고, 삐뚤빼뚤한 선을 그으며 그림을 그리고, 엉성하게 춤을 춘다. 지식과 배움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 늘 틈새 시간에는 책을 끼고 살고, 만나지 못한 삶이 어디선가 밀려들어올 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며 영화나, 드라마를, 공연을 찾아다닌다. 매일 무언가를 기록하고 글을 쓴다. 더 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고, 그러므로 듣지 못하는 것들을 더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내게 올 때마다 느껴지는 벅참에 이끌려 사람을 사랑하고, 내게 없는 멋진 점들을 찾아 눈을 반짝인다.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생길 때마다 여지없이 "당신의 세계를 알고 싶어요!"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누군가가 어떤 세계와 가깝다면 기꺼이 나 역시 그 세계를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취의 측면에서 아주 조금씩 이어지던 그 행위들에 나는 자주 박한 점수를 매기지만(왜냐하면 위의 문장을 나열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족한 점을 언급하며 어떤 미진함을 상쇄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그것들 모두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김겨울 작가는 <아무튼 피아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피아노에 대한 나의 성실은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성실로, 매일 네 시간씩 바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네 달 이상 쉬지도 않는 종류의 것이다."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성실로 이어져오던 각각의 세계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다시금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같은 책에 이어 나오는 구절을 생각한다.
"우리의 느릿느릿한 쇼팽도 예술이며 그 안에는 아마추어의 미학이 있다. 아마추어의 미학이란 유창한 곡 해석을 의도치 않게 배제하는, 악기와 곡에 대한 애정으로 더듬더듬 이어지는 불안전성의 미학이다. 아마추어가 연주하는 곡은 매끄럽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역설적으로 그 더듬거림이 악기와 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피아노에 대한 이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은유와 같다. 그래서 나는 앞서 쓴 문장들을 다시 수정해 보기로 결심한다.
계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음표들이 분명하게 음악처럼 들릴 때, 내가 매일 듣고 위로받던 음악이 나의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올 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복잡하게 뭉개진 생각들이 글이나 그림, 그 무엇으로든 표현될 때 나는 조금은 내가 된다고 느낀다. 불안정한 감정의 파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실감한다.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그 감각이 아주 조금씩 나를 미래로 데려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내가 어제의 나와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매일 새롭게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있는 힘껏 좋아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인간들이 너무나 미웠지만, 또 내가 아주 깊은 수렁에 빠질 때마다 나를 구한 건 내가 있는 힘껏 좋아했던 그 누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내가 겪은 삶의 그 무엇도 어떻게든 극복하리라고 다짐할 만큼은 이 삶을 꽤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그것들에 대해서 더 잘 말해보자고 다짐한다. 틀리고 더듬거리기 때문에, 무용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적는다.
매번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반드시 00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반드시 성실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냐하면 어딘가 부러질 가능성 같은 것들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거창한 다짐을 남발하고, 그렇게 실패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나는 자주 나의 성실에 게을러질 테니까. 그리고 어느 날은 그게 위안이 되어 나도 내 인생을 향한 이 절망적인 짝사랑이 조금 더 다정해지길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