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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글 Jul 18. 2022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그림책 리뷰


나는 사실 한 번도 말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전혀 예민한 구석이 없고 어떤 상황, 관계, 물건에 애착을 깊이 가지는 편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행동이 꽤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찢어지게 외로웠던 적은 있었지.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그림책을 보며 외로워서 막막했던 때를 떠올렸다. 응 맞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떠올랐다.


스웨덴에서 첫 1,2 년이 그랬다.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아 더럽게 외롭네' 하는 말이 튀어나오며 깬 적이 있다. 

그만큼 외로웠다. 스웨덴 말을 못 해서 외로운 날도 있었고 약속이 없어서 외로운 날도 있었고 너무 자유로워서 외로운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여느 때처럼 학교 가는 길이었는데 주변을 에워싼 나무들을 보며 외롭다고 느껴질 때 사람 말고 자연을 생각하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인간이 인간만 생각하는 건 얼마나 좁은 시야인지. 내 옆에 나무도 새들도 다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외로워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예전에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외로울 때는 나라는 존재가 내 머릿속에 너무 커져서 그런 거라고. 하늘을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되고 그렇게 나를 축소시키다 보면 외로움이 작아질 거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모순됨이 웃기기도 한다.

과거의 그러한 비교 불가하게 외로운 상황이 아니면 사실 나는 관계 속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는 거다. 

오히려 홀로 앉아서 나를 계속 돌아보고 나에 대해 파악하는 일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인간관계란 높은 지능과 예너지를 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에너지가 모여 섞이는 여럿으로써의 관계는 특히나 힘들다. 나도 타인들도 온전히 스스로를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더더욱 피상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대화가 대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허물없는 사람과의 일대일 관계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일대일의 관계는 책과 같다고 느낀다. 서로를 찬찬히 읽을 수 있거든.


나에게 홀로 있는 시간도 소통을 위한 시간임은 분명하다. 소통을 위해 침묵하는 시간. 여럿으로써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나이지만 내가 창작하는 책을 통해 독자를 만나거나 작품을 통해 작가를 만나면  열명 스무 명을 만나도 어떤 허례 의식 없이 솔직하게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 관계 속에서 위축되고 일그러지는 '나'와 당당한 강물 속에서 자유롭고 빛나는 '나'가 대비된다. 

인간세상에서의 내 처지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냥 흘러가는 자연. 꽃이 진다고 울지 않고 새싹이 돋는다고 환호하지 않고 그냥 순간순간 흘러가는 자연의 당당함을 본받으면 내 감정이나 주변 환경에 상처받지 않고  담대하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능 깊고 편안한 위로를 준다. 우리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제일 똑똑한 생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제일 쉽게 어리석어질 수 있는 생명인지라 자연 곁에 살아야 자연을 본받으며 그 어리석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이야기를 받쳐주는 그림은 두 말할 것 없이 정말로 아름답다.

나는 너무 그리기 어려워하는 회화적인 그림들...

물이 빛에 반사돼서 반짝이는 느낌이 책 전체에 퍼져있고 마음을 건드리고, 과슈의 탁한 느낌이 글과 너무 잘 어울린다.

화가가 글을 보며 글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넣어서 대화하는 느낌으로 그린 것 같아서 정말로 글과 그림이 서로 대화하는 느낌이다.


이런 많은 아름다운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아주 사적 취향으로는 이 책의 서사는 분명 내가 첫눈에 반해버리는 그림책 부류는 아니다.

힘든 상황도 한번 뒤틀어서 가볍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다. 그런데 한 스푼의 멍청함도 끼어 들어갈 곳이 없는 깊이 있는 글과 그림으로 채워진 이 책은 나와는 결이 약간 다르다는 생각은 분명 든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나누는 게 아무 의미가 없지만 작가 된 입장에서는 이런 책들을 보면 내가 나 스스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 가능할까. 난 오글거려하지 않을까. 개구진 얼굴이 하나도 안 나와. 내 안에도 과연 이런 목소리가 있을까 궁금해지고는 한다. 한마디로 뿅 갔다는 이야기는 아닌 거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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