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혜와 사랑
요새 SF 소설이 유행이라 그런지 과학에 조금 관심이 간다. 그래서 그림책 채색을 하며 몇몇 과학 강의를 들었다. 과학이라는게 의외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보편적 지혜를 주는 것 같다. 인간세상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구나 이해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필요한 수준까지 아주 얕게 배운 바로는 그 어떤 분자도 DNA도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분자들은 그냥 미친듯이 운동하다가 우연히 자석처럼 붙고 떨어지고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렇게 분자들이 우연히 만나서 생명이 탄생했고. (무생물을 이루는 무기물에서 생물을 이루는 유기물이 태어나는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이건 너무 충격적었이다.) 생명 속 DNA도 목적성을 가지고 살아남으려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들의 몸 속에서 여러 경우의 수로 합을 맞춰보다가 우연히 어떤 DNA들이 많은 세대를 거쳐 괜찮은 팀을 이루어 살아남았고 그게 현재의 인간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아직 원자니 분자니 DNA니 유전자니 너무 헷갈려서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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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인간은 지금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꽤 자만심 가득한 생물이다. 너무너무 작은 존재가 끝도 없이 커다란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다보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사건에는 방향성과 목적이 반드시 있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생명의 태초에 대해 이 것을 처음 시작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신을 믿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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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합리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든게 우연이라는 거다. 생명도 우연, 인간도 우연, 내 삶도 우연의 결과물이다. 어항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너는 도대체 왜 사니 하지만 삶에 목적성이 없는게 생명의 차원에서는 이상한게 아니다. 다만 사람은 물고기보다 감정이 좀 복잡하잖아. 감정이 배고픔만큼이나 몸의 건강을 좌지우지하니까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생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생명을 보살피는 차원에서 허무함을 피해야 한다. 다른게 아니고 사랑이란게 필요하다. 그런데 개개인의 사적인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사랑의 감정은 그때 그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주 디테일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그렇게 섬세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대신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한방에 내 엄청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부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주변 사람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면 약간 모자란 나한테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일인거다. 일타쌍피가 아니고 일타다피가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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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진짜 어마무시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도 좋아하고 일도 좋아한다는 걸 이 글을 쓰다가 뜬금포처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멍청한 계산기를 들고 있는 어리석은 애정결핍증 환자구나. 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