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글 Oct 02. 2022

잃어버린 물건들이 사는 세계

리리쿠마 교통카드  안녕


한참 전에 회사를 다닐 때 잃어버린 리리쿠마 교통카드와 출근길에 재회한 적이 있다. 더 한참 전에 리리쿠마 머리 모양의 이 조그만 카드를 어디에 놔뒀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해 허무하게 이별했는데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다시 만난 것이다. 출근길에 내가 자주 매는 목걸이 지갑을 손으로 더듬거리다가 지갑 앞주머니에서 리리쿠마가 마법같이 얼굴을 내밀었다. 놀랍고 반가웠지만 약간 무섭기도 했다. 딱 머리 모양만 있는 물건이라 혹시 이 조그만 머리통이 살아서 동동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려고 이 지갑에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들에는 진짜 발이 달려있든 어떻든 아무도 모르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침대 밑이든 책장 밑이든 우연히 구석으로 미끄러진 물건들은 주인에게 자기를 찾을 수 있는 약간의 유예 기간을 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무심한 주인이 전혀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자기들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순간 이동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주인에게 잊혀버린 물건이 순간 이동 같은 너무 쉬운 트릭을 쓴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숨어있던 곳에 계속 머무르기에는 하염없는 기다림이 힘겨울 테니 아주 가깝고 이동하기 쉬운 곳으로 움직여가리라 생각된다. 바로 방의 벽 속이다. 벽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걸레받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문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똑똑 노크를 하면 걸레받이 전체가 스르륵 열리는 건 아닐까?


잊힌 물건들은 그 안에서 다채롭게 섞여 자기들만의 기쁨을 누리며 잊힌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산다. 그리고 벽에 가끔 귀를 가져다대고는 정말로 주인이 자기를 잊었는지 궁금해하겠지. 웬일로 주인이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들으면 잊힌 물건 중 심약한 친구들은 가슴 아픈 사랑놀이를 시작하는 거다. 주인을 그리워하는 몇몇은 순간의 사랑에 속아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돌아가고 싶은 물건들 중 누가 더 어리석은지 경연을 벌여 그중 제일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난 물건 단 하나만 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기대에 차서 방으로 돌아갔건만 정작 주인은 자신이 물건을 찾고 다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후다. 대신 내가 리리쿠마를 찾았을 때처럼 무서움을 느끼는 주인의 얼굴빛을 보며 아주 서럽게 울어대는 거지. 울다 보면 서러움의 감정도 다 흘러 내려가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기분으로 방 안에서 주인과 가끔 재회하며 무덤덤하게 살게 되는 거다.


작은 세상을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이야기를 밀어 넣으면 빈틈이 촘촘해지면서 시간과 공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그럼 한 시간이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하루가 한 달이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로장생의 기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위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