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
멜버른에 도착 후, 숙소 잡는 데까지 우여곡절은 아니더라도 영어를 사용할 기회를 스스로 참 많이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스텔을 제쳐두고 멜버른 시티 내의 플린더스 스트리트 아래로 내려가다 어느 투어 예약업체에 들렀다. 여자 둘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게스트하우스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뜸 여긴 여행사이지, 숙박업체가 아니니 옆에 호스텔로 가보란다. 싹수는...
바로 옆에 유나이티드 백팩커스라는 노란색 간판의 호스텔로 들어갔다. 방을 잡은 후 오후 반나절을 머무르다가 우연히 떠오른 예약 시 환불규정 안 때문에 인터넷으로 다시 예약한 호스텔의 규정 안을 훑어봤다. 하루 전에 요청하지 않을 경우,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계약조건을 다시금 확인한 뒤, 부랴부랴 취소하러 나갔다.
2인 기숙사실을 3박 4일 간 예약해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픽업을 전화로 요청했는데 거절당하는 바람에 너희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고 이메일로 먼저 보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난 후 날아온 답장은 환불 불가였으며, 요즘 어느 호스텔도 공항 픽업을 해주지 않고, 여러 가지 교통편으로 자기네 숙소를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직접 찾아가서 환불 요청을 하기 위해 방 잡은 호스텔 밖을 나섰다. 막상 예약했던 숙소의 체크인 초과 제한 한 시간을 앞두고 찾으려니 헤맬 수밖에 없었다. 시내지만 밤에 그 호스텔을 찾으려니,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같은 명칭의 렌털 빌딩으로 들어가는 인도인 부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체크인 제한 시간을 넘기지 않고 본래 예약했었던 호스텔의 데스크 매니저를 만났다. 얼굴을 보자마자, "결국에는 여길 찾았다."는 말과 나의 이름을 건네며 다른 숙소로 들어간 사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한동안 주저리주저리 말했고 데스크에서 하루는 계산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루치 70달러만 계산할 거라는 확인까지 받았어야 했는데, 단지 3일 중 오늘 하루치만 계산되는 건지만 확인받고 나왔다. 그리고 머무는 호스텔로 돌아와 무료 와이파이를 통해 환불 요청 확인 이메일을 보냈다. 거기 호스텔 이름은 '플린더스 백팩커스'다.
2인실을 기준으로 3일 치를 예약해서인지 비싼 가격이었다는 것은 '유나이티드 백팩커스'에 방을 잡으면서 알았다. 여기는 당일 직접 들려서 4인실 기준 4박 5일을 문의했는데 170달러가 나왔다. 어쨌든 연말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라서 방 예매가 이미 꽉 찼을 거라는 여행책자 글과 달리 막상 도착하니 싼 값에 잡을 수 있는 방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잡은 여기가 백팩커스의 게스트하우스 중 숙박자가 뽑은 올해의 숙소로 선정된 곳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하루치의 방을 잡을 때도 다행히 여기서 방을 구할 수 있었고, 주말은 방 구하기가 예약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평일 도착이면 예약이 필수는 아니지만, 주말 도착은 도착하기 전 최소한 이틀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호텔 중에 올해의 호텔로 선정된 곳은 RMIT대학 기념 건축물로 옛날 죄수들의 감옥을 유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장소의 건너편에 있는 'Space Hotel'이다. 여기는 호주 도착 후 구입한 백팩커스 VIP 카드 할인을 적용할 수 있었지만, 토요일에 방 구한다고 들어가 봤는데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풀리 북'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갈고닦은 영어의 첫 실전 무대는 멜버른이 되었다. 유나이티드 백팩커스의 카운터 여자에게 이미 다른 숙소에 예약을 해놨는데, 그쪽에서 환불도 안 해주고 먼저 예약을 했었기 때문에 여기 방을 빼야겠다고 환불을 요청했다.
당연히 자기네들도 이미 계산했는데 규정에도 없는 환불을 어떻게 해주냐면서 그쪽 호스텔에 직접 가서 얘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이 와중에 나는 환불조치를 해줌으로써 뒤에 걸려있는 올해의 호스텔에 선정된 고객 만족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왜 못해주냐면서 손가락으로 직접 그 포스터 액자를 가리켰다. 미시즈로 보이는 카운터도 감정이 약간 흔들렸는지 마지막에 웃으면서 여기서는 안되니, 플린더스 백팩커스에서 담판을 지으라고 한다.
그래서 밤 10시가 되기 직전에 멜버른 시내를 헤매며 '플린더스 백팩커스'를 찾아 나섰던 거고 일단 말로는 해결 지었지만, 그 당시 휴대폰을 일시 정지해놓은 상태라서 그쪽에서 카드 결제를 얼마로 했을지는 귀국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귀국 후 두 주일이 지난 뒤 결제 문자가 날아온 건 내가 확인 메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호스텔 쪽이 까먹을 수 있었다는 건가...
한편, 다행히도 귀국하기 전날 모기업에 면접을 보기 위해 약 500달러 가까이의 정장 한 벌과 구두까지는 구입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당연지사 사드리려고 했었던 달맞이꽃 약과 스위스제 오메가 시리즈는 결제하자 '디클라인'이 되었는데, 그 까닭이 아마도 250만 원의 카드 결제 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
미안해서 이다음에 또 오면 사가리라 마음먹었지만 빅토리아 마켓 내의 ATM기에서 비밀번호 오류가 나서 사용할 수 없게 된 체크카드의 오류 해제를 한국에서 엄마가 대신할 수 없을까 하고 연락했다. 그 날이 일요일인 줄 어머니가 카톡으로 답변해 준 뒤에 알았다. 이러한 우여곡절이라면 나에겐 정말 큰 세계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멜버른에서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생각의 바운더리를 조금 넘어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지금까지 그 바운더리 안에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한국을 넘어 멜버른이라는 또 다른 도시의 생활상을 그리면서 비교우위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말이다. 인간이 혼자서도 자신을 판단할 수 없듯이 내가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한국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던 거다. 그 기준이 멜버른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부산 그 외 살아보았던 도시들은 정성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한국인은 정이 많다.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고 주저리 거리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멜버른에서조차 한국인은 한국인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때마다의 시선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이는 첫인상으로 사람의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런 얼굴 상을 한 사람은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일 거라는 무의식적으로 쌓인 대뇌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호주에서조차 눈에 쉽게 들어왔다.
물론 그것이 편견일 수 도 있지만 인간 자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편협적인 동물이기에 시각의 한계는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또한 0.1초 이내에 결정되는 첫인상의 판단은 무시할 수가 없다. 수사법에서 일컫듯이 인간은 보이려는 척하는 게 결국 그 인간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소크라테스는 진정성의 중요성을 강요했지만 현대사회는 소피스트들의 수사학으로 이미 도배된 이미지의 사회가 되었다.
여하튼 여기 유나이티드 백팩커스에서 숙박할 때 몇 가지 팁을 주자면 첫 번째, 카운터에서 방을 잡을 때 아시아계 여자 애 한 명이 있는데 얘를 통해서 잡으면 신속하고 정확한 값으로 정해주고, 나중에 방 빼고 나갈 때도 자물쇠 사용 환급료 10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요일에 체크아웃할 때는 규정 시간 오전 10시를 많이 넘어 나가서인지, 보관료 10 달러와 5$ DC 쿠폰을 받지 못했는데 출국일 하루 앞두고 나갈 때는 왠 10 달러와 쿠폰을 주었다. 이팔 천원이 없었다면 툴 마린 공항으로 갈 때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환승할 때 버스에서 잔액이 없어서 캐시로만 충전이 가능했던 마이키 카드 충전도 못했을 거고 버스도 못 탔을 것이다. 나에게 수중의 현찰은 그게 다였다.
참고로 마이키 카드 사용 규약이니 여기 홈피 참조하기 바란다. 대체로 일주일권을 구매하도록 권하더라.
호주 멜버른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놀고먹고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들을 이제 막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어떠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들은 한국인처럼 바쁘지 않게 사는 것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숫기가 없기까지 보였다. 같은 방을 썼던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호주인의 어릴 적 성장과정을 많이 들었지만 다음 기회에 말하겠다.
한국에서 형편에 여유가 없었던 한국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드림을 안고 새로운 터전에서 여유롭게 생활을 하려니 현지 한국인들은 이민생활이 더 힘들다고 말들 하는 거 같지만, 그들이 평상시에 지나는 거리와 시티 내 곳곳의 볼거리는 휴가가 따로 없으리라...
반면, 호스텔에서 함께 지내는 애들을 볼 때면, 한국에서처럼 어떠한 경계심이 없었다. 주방 앞에서 조금만 길이 막히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먹을 때도 혼자서 쑥스럽게 먹는 모습이 내가 예상했었던 서구문화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울리고 말할 때는 분명 한국애들처럼 끼리끼리 조곤거리는 경향은 없었다.
한국이나 아시아계 애들처럼 주위 눈치를 밥 먹듯 보는 습성과 끼리끼리 어울리고 정치에 '정'자도 모르면서 정치나 하려는 성질은 차라리 인종차별보다 못하다.
한술 더 떠 나는 호주인들도 질겨서 먹기 힘들다는 켕거루 스테이크를 한국의 어느 블로그의 레시피를 참조해서 만들어 먹었다. 질긴 질감과 캥거루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레시피는 간단하다. 역시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봐라.
숙박 첫날에, 지하에 마련된 라운지의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한 백인 여자 애가 다가와서 여기서 뭐하냐면서 우스개로 숙소 규정 5항에 어긋난다며 농담을 걸어왔다.
자정 무렵이 되자 펍에서 한껏 이야기하다가 들어온 여자 애들이 내가 드러누운 소파의 맞은편에서 대화하는데, 좀 있다 들어온 한 여자애는 아무렇지 않게 춤을 추며 혼자 취했는지 흥얼거렸다. 어느 나라 건, 술에 취하면 그 분위기에 서로들 즐거우리라.
마이키 카드도 2시간 이내에 환승은 무료라고 들었는데, 탈 때 찍어서 무료가 안 된 건지 하루권이라 금액 초과가 되어서인지 잔액부족이 나왔다. 그때 같이 버스에 올랐던 유럽에서 온 커플은 내릴 때 카드를 찍는 걸 봤는데, 아마도 오를 때는 찍지 않았으리라. 어쨌든 멜버른 시티에 직행으로 도착할 때는 블루버어드 버스 탑승비로 20달러를 날렸지만, 공항으로 올 때는 어느 블로거의 도움으로 열차 노선에서 경유 버스로 환승해서 갈 수 있는 길을 알았다. 그 경로는 아래 사진과 같다.
일단 어느 열차역에서든지 종착지가 'Craigieburn'역으로 향하는 플랫폼에서 탑승한 후 'Broadmeadows'역에서 하차한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아래 첫 번째 사진 건물의 맞은편에서 901번을 타면 바로 멜버른 공항으로 직행할 수 있다. 굳이 18$나 하는 스카이버스를 타지 않고도 말이다.
호주에서 유일한 멜버른의 교통수단인 트램을 타고 내가 어릴 적부터 마냥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꿈꿔왔던 동네로도 이틀 만에 구경 나갔다. 그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십 년 전쯤에 프린터 했을 터인데, 직접 찾아가서 동네를 거닐다니 감회가 어릴 적 동심처럼 새로웠다.
서울에서 온 3살 어린 동생은 태즈메이니아의 농장일을 구해서 곧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탈리아 친구는 영어가 초급 수준이라서 본인이 원하는 시티 잡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직종이 건설업이라서 자기네 정부지원을 통해 다행히 구해서 고국에 홀로 두고 온 딸애를 위해 많은 돈을 벌어 나가기를 기원했다.
멜버른 트레인 광장 앞 건널목. 건널목 가운데 인종차별 반대 피켓을 든 흑인을 찍으려다 어떤 백인행인이 앞서갈 때 부딪혀서 흔들렸다. / 멜버른의 전형적인 교통수단 트램(우측)
나의 경우는 시드니에서 10개월을 보낸 후, 여기 멜버른에일하고 있다는 지인과 연락을 앞두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면접을 보자는 기업이 있어서 처음의 계획과 달리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 사이 멜버른 시티 내의 거리를 두 발로 그리고 남부 외곽까지 자전거로 무수히 헤매었던 기억은 멜버른이 서울보다도 크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또한 아직 한국말 표지에 익숙한 나에게 간접적인 문화충격을 던져주었다.
수십 킬로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왔는데 아까 보았던 거리 명칭이 왜 여기도 버젓이 있는 건지, 그리고 구글 지도에 나온 거리를 믿고 이제 아래로만 내려가면 되겠구나를 수없이 믿었지만 지도와 다른 길목들이 나올 때마다, 걸어서 57분이면 갈 거리를 자전거로도 2시간 내에 못 찾고 헤맨 나는 소외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의 경계뿐만 아니라 물리적 공간의 경계까지 나름 의미 있게 개척한 이번 여행은 나에게 타지 생활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계기를 확실히 주었다. 훗날 기술이민을 위한 사전답사일 수 도 있고 또 재취업할 회사에서는 호주의 열차 아웃핏을 만드는 회사이다.
다행히 그녀가 코디해준 정장 한 벌을 차려입고 또 구두를 신고 면접에서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현재 그 기업에 일주일째 출근하며 첫 번째 멜버른 기행문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