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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여정, 두 번째 이야기

호주인들의 교육상

by Younggi Seo

두 번째 호주 기행문이 좀 늦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두 번째 직장에서 일과를 겨우 끝냈다. 수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한 숨 돌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호주에서의 일상을 밀려오는 잠을 미룬채 기록한다.


5일간 같은 방을 썼었던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저씨는 호주의 명문 오스트레일리아대 전기공학도 출신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호주로 유학 와서 대학 졸업 후 말레이시아와 호주를 오가며 현재는 IT 쪽 사업을 하고 계신다.


처음에 룸 문을 열고 들어서자 1층 침대에서 옆으로 누운 채로 쉰 숨소리를 내면서 나와 마주쳤었다. 좀 특이한 냄새가 나는 중국에서 온 아저씨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저녁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IT 쪽 분야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호주에서의 유년기 생활을 통해 뜻밖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말투는 마치 이웃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동네 아저씨와 사뭇 비슷했다. 어눌한 목소리와 재차 반복해서 말하는 습관이 막상 대화를 하니 편안하게 다가왔다. 첫날 저녁은 퍼스에서 온 호주 청년과 자정을 넘기며 취침하기 직전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라.


호주 친구 말은 그 전날 그 친구와 서로 공감대가 맞아 대화를 나눈 바도 있고 그 친구의 지갑이 사라져 한 바탕 소동을 벌여 많은 감정까지 주고받아 대강 알아듣겠는데 그 아저씨 말은 악센트 자체가 영 거슬리게 다가와서 그때 나는 중간에 키친으로 내려가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다음날 저녁에 아저씨와 비슷한 시간대에 룸에 들어와 서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서로 조금씩 알고 있는 미국의 IT분야 이야기로 꽃이 피었다. 빌 게이츠의 사업적 수완은 배경이 유복한 집안의 출신이어서 가능했었고 그것과 더불어 사업적 재치로 인해 성공한 사례부터 실제 프로그래밍의 능력은 다른 회사에서 이미 코딩한 것을 사서 했다는 등 벤처신화 관련 깊숙한 에피소드를 막 나에게 쏟아부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미래의 빌 게이츠라고 불리고 싶던 한 때 컴퓨터 공학도여서 대강 내가 원서로 접했던 내용과 관심사들이었다. 그래서 쉽게 알아들었고 어느 정도 부연설명으로 추임새까지 넣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호주의 유년기 교육관이었는데, 아저씨와 함께 생활했었던 그들은 어릴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서 혼자서 외로움을 느낄 때면 침상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곤 했단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 체벌은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오히려 학생에게 구타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더욱 웃겼던 건 그들은 스포츠를 방과 후 오후 세 시부터 의무적으로 하는데, 그들에게 인기리에 매년 행해지는 럭비 경기에서 심판을 보는 사람은 학생들의 선생이란다. 그런데 평소에 선생에게 불만이 있었던 학생은 그 기회에 선생에게 돌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물론 그의 말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전제로 들어야 했지만, 다음 이야기만은 사실 같았다.


그들의 교육관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팀워크란다. 팀워크를 어기는 경우는 그들에게 용서가 안 될 정도로 사회생활에서도 철칙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팀의 모든 구성원과 합의 없이 단독적으로 진행할 경우 주의의 몇몇도 그의 방법대로 일이 진척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결과를 놓고 봤을 때 큰 그림이 잘못 그려졌을 경우, 그것은 엄청난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구성원과 함께 의견을 맞춘 후 시작해야 한단다.


미국의 빌 게이츠나 벤처 신화의 경영자처럼 슈퍼스타 한 두 사람의 재능이 특출 나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호주에서 드문 까닭이 이러한 교육관 때문이란다. 그래서 호주에서 뛰어난 IT 업계 인재들이나 인도에서 호주영주권을 취득한 학생들은 대다수 미국의 실리콘 밸리로 유학이나 다시 이민 가는 경우가 많단다.


출국 이틀 전, 토요일 다른 숙소를 찾느라 헤매다가 다시 머물렀던 백팩커스 게스트 하우스로 예약했다. 때마침 그 날 체크아웃하기로 했던 아저씨는 지하 1층 라운지 소파에 앉아 시드니행 비행기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아저씨가 앉아 있길래 또 같이 소파에 앉아서 한동안 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한국에서 곧 면접이 있는데 근처 서울에 살고 있는 나와 체격이 비슷한 중학교 동창 친구 한 녀석이 정장을 안 빌려주더라. 뭐라나, 내 어깨가 넓어서 옷이 늘어난다나...


그래서 시티 내에서 한 벌 뽑을까 하는데, 그 아저씨도 덩달아 지금 호주는 여름이니깐 겨울 정장 싸게 팔 거다, 길거리 지나가 보니 한창 세일하는 곳들이 즐비하더라. 한 500달러 이내면 충분히 한 벌 살 수 있을 거란다.


그나저나 말레이시아에서도 친구끼리 정장 잘 안 빌려주나라고 물으니 말레이시아는 더운 나라라서 본래 정장은 일생에 세 번 정도밖에 안 입고 따로 입는 전통의상이 있단다.


그리고 내 영어 실력은 어떠냐, 그리고 말레이시아인들은 본래 영어를 잘하냐라고 물으니 말레이시아는 영어가 본래 자국어와 함께 공용어라서 어릴 때부터 같이 쓴다며 나의 영어 실력은 제너럴 하단다. 오히려 요즘 호주에서 교육받지 않은 자국민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란다.


그리고 영어를 정말 잘하기 위한 조언 좀 부탁한다고 물으니, '라이팅'이 중요하단다. 어차피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라이팅으로 점수가 매겨지고, 스피킹은 포멀 영어와는 거리가 멀고 대화는 본인이 흥미로워하는 거면 언제나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전날에 본인이 묵으려고 했었던 일주일에 단 200달러의 셰어하우스를 나에게 소개시켜주고 메일로도 보내줬었다. 현재 친구 간 돈을 빌려주고 갚아주는 네트워크 모바일앱을 개발하고 있고 잠시 멜버른에 들렸다고 했었는데 헤어질 때, 시드니에 오면 본인에게 연락해라고 했다.


라운지 입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잠깐 대화가 끊겼다. 한 미국 여자애가 이제 막 체크 인을 해서 여기로 들어왔고 아저씨가 나가려는 시간인 오후 4시가 가까워졌다. 화장실을 다녀온 그 미국애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한 장을 찍은 후 서로 소파에 앉아보라며 두 장을 더 찍어주었다. 마지막 작별을 앞두고 소중한 인연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게 되어 다행이다. 마지막 악수를 나누며 시드니에 오면 뭐라더라. 여하튼 그 인사는 아주 영어적인 뉘앙스였다. 영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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