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도예프색기에 대해 좀 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하면 ‘죄와 벌’을 먼저 거론할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가 군대의 장교 소위로 제대한 전역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4년 간 하고 또 병으로 군생활을 하고 나온 뒤에 출판한 책 중에 하나인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책도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의 제목은 번역서마다 다른데 '지하실에서의 수기', '지하인의 수기' 등 침침하지 못해 어떤 동굴에 피랍된 인간이 쓴 수기처럼 연상된다. 원제는 'ZAPISKII IZ PODLPOL’IA'이다.
이제부터 그를 도스토옙쌕으로 줄여 부르겠다. 그가 쓴 소설마다 그의 이름에서도 내포되어있는 인간의 색정이 만연한데(하물면, '롤리타’를 쓴 러시아의 나보코프가 도스토옙스키를 가리켜 “이 도스토옙쌕을 용서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겠는가.), 그나마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점잖다. 왜냐하면 한참 수용소(‘옴’스끄, 뭔가 말 한마디 내뱉기도 무척 추운 지역처럼 느껴진다.) 강제 노동 징역을 겪으면서 어릴 적 빈민가 밀집의 병원 앞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차원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인간 이면의 심리를 포착하고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대 현실에 대해서 신랄한 조소를 보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대 현실이라고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현대의 내로라하는 대학(케임브리지, 옥스퍼드, 하버드, 퀸즈랜드 등)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마다 그를 선견지명을 지닌 작가라고 평가한다.
시베리아 수용소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시베리아(영어로는 ‘싸이베리아’) 귤 껍데기나 까먹어라!”라고 말하는 욕쟁이 할머니의 외마디의 그 시베리아를 말하는 순간 이미 당신의 입김은 얼음으로 변하는 극지방의 사막이 시베리아 허허벌판이다. 1900년대 ‘강철’이라는 의미를 뜻하는 이름의 스탈린이 철권 통지로 러시아 인민 수백만을 그곳에서 저승으로 보낸 극혐 무대이기도 하다. 지금의 차르(czar, 예전 러시아 제국의 황제를 호칭)인 푸틴은 그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할 정도로 스탈린의 시대보다 더 이른 시대가 도스토옙스키가 살다 간 1800년대이다. 사회주의의 바람이 불기도 전에 도스토옙쌕은 거기서 인간 군상들의 이면을 진저리 나도록 파헤치게 되는 계기를 갖는다.
지금으로 치면, 사상에 대해서 좀 안다는 지식인들의 모임(일각에서는 사회주의라고 하나, 도스토옙스키는 보수주의자에 가깝다)에 형 미하엘과 잠깐 발좀 들였는데, 하필 그가 그 모임에서 발표를 하는 당일에 국가에서 이때 참석한 자들이 음모를 꾸미려 했다는 구실로 그들을 체포하였다. 한국의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형 미하엘은 풀려났으나 동생 도스토옙쌕은 사형집행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차르의 지시에 의해 짜인 각본이었다. 문제가 될만한 지식인들에게 이번 기회에 뭔가 확실한 교훈을 남겨줘야 한다는 의도로 사형을 내린 거처럼 하고 마치 극적으로 집행이 취소되게끔 꾸며진다.
그때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간질 발작이 있었다는 프로이트의 평론이 있었다. 이것을 떠나서 한 인간이 총살되기 직전까지 간다면 어떠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오며 어떠한 오만 생각이 들었을까? 그런데 그러한 순간에 갑자기 풀려나면 미친놈 아니면 남은 여생을 누구보다 알차게 살 거라는 예상이 들지만, 나는 추측컨데 이때의 경험으로 그가 마조히즘*이나 싸디즘**을 지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쉽게 말해 소설에서 그의 성적 열망을 표출하지 못하면(실제로 그는 카지노 룰렛에 광적으로 집착한 도박증도 지녔었다) 그 시대에서는 이미 매장되어야 할 미치광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좋다. 원인은 위의 배경이며 그럼 결과는 무엇인가? 그가 쓴 소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네또츠카 네즈바노바’, ‘죄와 벌’, ‘백치’, ‘미성년’,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라는 작품들이다. 몇몇 작품의 제목만 보아도 그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떠한 인생 굴곡을 지닐지 예상되지 않는가?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평론가 E.H.Carr도 도스토옙쌕의 작품 속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따른 성적 대상으로서의 묘사에서 어디까지 그의 편에 서야 할지 한계를 내비쳤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어느 지인에게 무턱대고 내뱉은 자신의 성적 대상에 대한 거론이 그의 소설에서도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라는 현실에서는 이성적인 반려자로 평가받는 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광기는 현실 속에서도 발작했을 거라고 예단했다.
다음 편부터 다룰 내용은 도스토옙스키에게 현실은 어떤 세계였고, 현대의 인지심리학을 통해 그것을 재발견하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 단두대다!
* 마조히즘(masochism) : 심리 이성(異性)으로부터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받는 데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변태 성욕.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자허마조흐가 자신에게 내재한 이런 경향을 소설 속의 한 인물로 그려 냄으로써 명칭이 붙여졌다. ≒피학대 성욕 도착증ㆍ피학대 음란증ㆍ피학성애ㆍ피학애.
** 싸디즘(sadism) : 심리 성적(性的) 대상에게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異常) 성욕. 프랑스의 소설가 사드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가학 성애ㆍ가학애(加虐愛)ㆍ가학증(加虐症)ㆍ기학증(嗜虐症)ㆍ학대 성욕 도착증ㆍ학대 음란증.
참조
1) FEDOR, ZAPISKII IZ PODLPOL’IA, 지하로부터의 수기, 계동준 역, 서울: 열린 책들.
2) E.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 권영빈 역, 서울: 열린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