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Body)
'하! 하! 하! 하지만 이런 욕구는 당신이 원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지.' 당신은 요란하게 웃으며 내 말을 가로막을 것이다. '오늘날 과학은 인간을 분석하는 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욕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자유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잠깐만, 신사 양반, 나도 그렇게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인정하건대 놀라기까지 했다. 나는 이러한 욕구가 무엇에 달려있는지 신만이 알 것이라고 소리치려 했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제 뇌과학이라 부르면 일반인들에게도 낯선 용어가 아니라, 인지심리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이를테면 시중에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심리학을 뇌의 작동법(인지)을 통해 설명하려는 책들 말이다.
하지만 시중에 출판된 뇌과학과 관련된 책들을 모조리 합쳐도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 한 권만큼 뇌과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은 없다. 왜냐하면 이 고전이야말로 인간 본성(뇌의 '변연계'와 그 밑단에 해당)을 통해 묘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예리하게보다 더욱 'Forte'하게 말이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면, 지금 당장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20페이지쯤부터 시작하는 쥐에 대한 그의 사색을 들춰보기를 바란다.
이 책은 1864년의 뇌과학이라는 말자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책의 설정인 지하라는 곳(옛 러시아 수도인 빼쩨르부르그의 구석진 방)에서 퇴직한 하급관리의 고백론으로 인간 내면의 '근본'을 파헤치고 있다.
이건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와 같은 묘사를 하는 모순된 현실에 대한 수사법이기도 하다. 동굴의 우화는 동굴 속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동굴의 벽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단지 횃불에 의해 자신들의 모습을 비춘 벽면의 그림자만으로 이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판단을 하는 그들의 한계가 인간의 현실과 같다고 플라톤이 말한다. 그리고 반대되는 의미가 이데아(idea)인데 철학에서, 경험으로는 알 수 없고 순수한 이성에 의해서만 찾을 수 있는 완전하고 참다운 본질적 존재라고 정의하나, 도스토옙스키는 이것을 ‘고상한’ 이상주의라고 표현한다.
어디서 들어본 거 같겠지만, 이어나가면 그 동굴 속의 한 사람이 포박된 상태에서 풀려서 동굴 밖으로 나갈 기회가 생겼다. 대낮에 실제 세상의 모습(이데아)을 보고 와서 동굴 속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한 번도 빛이 비친 세상을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뭐라고 하겠는가?(시대를 좀 앞으로 돌려서 이건 마치 소련의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가 1980년대 미국을 방문하여 한 슈퍼마켓을 들렀을 때 받은 문화충격을 소련 인민들에게 전달할 때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거 또라이 아냐?
맞다. 도스토옙쌕은 이 고백론적 수기를 쓸 당시에 첫 번째 아내가 폐병에 걸려 죽기 직전이었고 그 역시 간질병으로 인해 신경질적이라 작품 속에 격분된 어조가 자연히 실리게 되었다. 그의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을 출판한 후(강제 수용소에 징집되기 이전),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지만 이후 이렀다할 작품이 없어 하류 수준급의 고료만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경도 쇠약한데 그의 아내로부터 데려온 의붓아들은 유럽의 한 도시에서 그의 돈을 축내고 있기까지 했으니, 그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그 시대의 고상한 이상주의에 대해 비꼴만도 하다.
이 원고가 발표된 '세기'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형 미하엘조차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관하여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아마도 쓰레기 같은 것이 될 것이다(그 동생의 그 형이라 직설적인 걸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에 큰 희망을 갖고 있다... (중략)... 아마도 그것은 매우 훌륭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희망의 불씨가 자본주의의 한계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현시국에 와서는 진실이 되었지만 말이다.
필자는 뇌과학을 설명하기 위해 도스또옙스끼의 작품을 끌어 온 것은 아니지만, 잠깐 '변연계'라는 용어를 비롯한 뇌의 주변부에 대해 설명하겠다. 변연계는 인간이 현대에 와서 가장 많이 발달시킨 전전두엽(뇌의 앞에 위치하여 대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나, 이것의 진화는 곧 인공지능이 추월한다.)이나 후두엽(뒤에 위치하여 시각과 관련된 신경 통제)과 달리 뇌의 한가운데 시상계(감각 신호의 전달자)와 기저핵(무의식적 절차기억으로 저장)을 둘러싸고 있다. 본래 파충류 단계에서 발달을 하고 있던 변연계는 인류가 불을 발견함으로써 육식을 간편히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소화를 담당하는 기능이 발달함으로써 변연계의 본래 진화는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데 변연계는 인간의 감정이 비롯된다고 지금의 임상심리학자나 신경의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러한 감정의 통제는 아까 말한 뇌의 바깥인 대뇌피질의 앞쪽에 위치한 전전두엽이 하지만, 말했듯이 '비롯되는 곳'이 변연계이다. 보통 인간의 감정이라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예닐곱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두세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한 연유인지 대다수의 인간은 평소에 부정적인 감정을 머금는 게 일상의 80% 이상이다. 그렇다면 이 부정적인 감정을 단 10%만 줄여도 우울증이나 신경쇠약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만약 80%을 줄이면 바보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럼 왜 도스또옙스끼가 선견지명으로 현대의 평론가들로부터 더욱 주목을 받는지 얘기해보겠다. 그는 이성적인 존재로서만 인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당시 막 서유럽에서 유입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모순적으로 바라보았고(직접 영국의 만국박람회에 가서 그 산업혁명의 총아가 전시된 기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것을 과학 신, ‘바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것이 인간 이전(포유류 뇌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이전)의 파충류 단계의 뇌의 성질(생존 본능 욕구)을 더욱 충동질할 거라 내다보았다. 이런 추론으로까지 이어진 까닭은 유년 시절에 정신 수용소와 비슷한 빈민촌의 병원으로 전근한 의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 환경으로 인해 병원의 환자들과 대화하기를 즐겼으며, 또한 그가 글을 쓸 무렵의 시대에 내로라하는 심리학자나 신경과학자들의 글에 대해서도 섭렵한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유럽에서 막 건너오기 시작한 자본주의나 물질주의 혹은 과학문명(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바알')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생존경쟁이 가속화될 거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또한 당시 러시아 최고의 인기 문예가였던 푸시킨을 기립하는 행사에서 그가 민중들 앞에서 그들의 감정을 동요시키기 위한 연설을 한 슬라브주의(국가주의)자로 자처한 까닭이기도 하다.
참조
1) FEDOR, ZAPISKII IZ PODLPOL’IA, 지하로부터의 수기, 계동준 역, 서울: 열린 책들.
2) E.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 권영빈 역, 서울: 열린 책들.
3) 타라, The Source, 부의 원천, 백지선 역, 서울: 알에이치코리아(RHK).
4) 조던, 12 RULES FOR LIFE, 12가지 인생 법칙- 혼돈의 해독제, 강주헌 역, 서울: 메이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