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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Nov 12. 2020

개츠비 말고 게이츠, 당신은 누구냐?

빌 게이츠는 오리발 천재가 맞다.

빌 게이츠의 저서는 중학생부터 읽어왔다. 그의 첫 책 ‘미래로 가는 길’은 까까머리인 필자가 중학생 때 알고 이해하기에 무리였다. 그 이후 그 책을 다시 펼치면 그의 10년 이상 내다본 통찰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가 중학교 시절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겠노라며 열심히 친구 집의 데스크톱을 손보러 다닐 당시, 친구에게 건네받은 신문기사 쪽지 하나가 의아하게 만들었다.


오리발 천재 빌 게이츠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윈도 95가 출시되고 이후에 윈도에 익스플로러가 탑재되어 다시 출시되었다. 넷스케이프(오래전에 사라진 인터넷 브라우저로 이후 넷스케이프에서 나온 개발자들이 만든 브라우저가 리눅스의 파이어폭스 아니면, 모질라이다)라는 회사가 익스플로러(지금의 윈도 인터넷 브라우저 맞다)가 MS에 의해 독점 판매된다며 고소한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 MS 회장인 빌 게이츠가 재판장에 출소해 미 상원의원들로부터 추궁당하는 장면이 미국 전역에 방송되던 때였다. 이때만 해도 필자는 차기 출시된 윈도 98 베타 테스트를 PC잡지를 보고 따라했다. 이때 레지스트리를 조작하곤 한 윈도 크래커(먹는 거 말고 해커의 또 다른 표현)였는데...;



각설하고 근래 아이엘츠(IELTS) 영어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워밍업 차원에서 토익 문제를 풀었는데(신토익 유형이 이건 뭐 신세계다. 파트 7의 10회분을 5일에 걸쳐 풀었는데, 총 54문제 중 열 개 안으로 틀린 게 두 번뿐이다;), 쉬는 타이밍에 게이츠의 두 번째 저서, ‘생각의 속도’ 원서를 읽고 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 오리발 빼는 거 맞구나’하며, 23년 전에 중학교 친구가 보여준 신문기사 제목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왜?


그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며 대중으로부터 자신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씻어내려 하고 있다.


첫 번째,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을 통해 자신이 MS 회장 시절에 인터넷을 회사의 우선순위 항목에서 서너 번째로 간과해오고 있었다고 말한다. 1995년도는 이 글을 읽는 월드컵 세대 이후의 애들은 생소한 시기이겠지만, 윈도 95가 출시되었고 전문가들이 인터넷은 MS의 사업에서 빠질 거라는 예측을 하였다. 그런데 게이츠는 어떻게 인터넷을 사업화(=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무료로 끼워 파는 독점 판매)를 하게 되었느냐는 대목에서 인터넷이 앞으로 시대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정보를 준 당시 회사의 뛰어난 인재들 덕분이었다(오리발 천재)라고 말한다.



두 번째, 그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가치 있는 정보의 빠른 공유를 디지털 시스템(지금으로 치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하나로 인공지능 시스템에 빅데이터를 학습하게 하는)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의 불만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이 살아남을 거라는 행간에 데이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나는 수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떠한 수치도 계속 바뀌는 사업의 실적에 따라 종이로 고정된 것(fixed, 잡스가 즐겨 말한 ‘fix it.’)이 아니라 항상 갱신되는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동료가 자신보다 주식의 몇 퍼센트(상대적 비율)라도 높으면 자존심을 못 배기는 성격으로 부하들의 월급과 퇴근시간까지 일일이 다 꿰차고 있던 이미지로 유명하다. 그러니 당시 자신의 하버드 동기생이었고 두 번째 MS 회장인 스티브 발머까지 거론하며 발머가 영업진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와중에 어떠한 수치에 대해 질문을 해서 발표자가 쩔쩔매면 발머는 단 번에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는 사례를 든다. 마치 이것은 자신의 비하된 이미지에 대해서 두 번째 오리발을 내민 것처럼 보였다.



세 번째, 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세계 갑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그를 부러워했던지라 넷플릭스에서 자체 제작한 빌 게이츠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삼부작을 봤었다. 하지만 그 시리즈조차 본인에게는 게이츠의 심연이 계속 엿보였는지 왜 이 작자는 자신의 오래된 이미지에 대해서 이토록 집착을 하는 것일까라는 추궁만 하게 되었다. 그의 삶의 이모작으로 시작한 자선사업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소규모 연구에 대한 스폰서를 대주는 것 자체는 아프리카의 발전과 신기술의 빠른 상용화를 도와서 인류에게 이로운 혜택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22세기에 후손들이 에디슨만큼의 똑똑한 사업가(에디슨은 사업가로서는 망했다)로 결코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기억된다면 아마도 철강왕 앤드류 케네기 정도와 비견될 것이다.



그의 본업은 사업가이기 때문에, 그는 에디슨처럼 발명가(엔지니어)로서 인류에 공헌한 이미지를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잡스는 프로그래밍을 잘하지 못했고, 나는 프로그래밍을 해서 돈을 벌게 되었다며 우스개 소리를 내더라도 그 말에는 뼈가 있다. 대중은 잡스의 ‘사업가’ 이미지 때문에 그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두 개를 잘 버무린 융합적인 인재보다 한쪽으로만 특출난 인재를 우리는 항상 기억한다. 즉 게이츠는 세계 1위의 갑부로서 명성을 다시 회복해서 이것의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 후세에 길이 남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MS-DOS(개인용 컴퓨터의 초기 CUI 모드의 운영체제)를 개발해서 GW-BASIC(MS-DOS에서 쉽게 실행되는 초기의 인터프리터형 언어)을 상용화시킨 엔지니어라는 수식어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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