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특이한 장르의 글이 난무하는 곳이다.
에세이(수필)란 자신의 사변을 특별한 형식 없이 내뱉는 글 아닌가? 지금은 수필이라는 정의를 학교에서 주워들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명확한 뜻은 기억나지 않는다. 브런치라는 작가 등용의 기회를 주는 플랫폼을 통해 많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글을 정보 제공의 목적이든, 자신의 사변 잡담을 목적으로든 여러 매개(medium)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브런치 글을 올리는 초기에 나는 에세이류의 글을 올리는 작가들을 보면 비평하고 싶었고, 실제로 비평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평 댓글을 보낸 저작의 글이 시중에 책으로 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로까지 오르는 것을 보고, ‘언어의 품격’만으로도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브런치에 어떤 명확한 목적이 없는 일기 형식의 글은 남기지 않는 게 브런치에 글을 쓸 때의 소기의 주관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글이라도 많이 써서 ‘양질 전화’의 법칙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앞서자, 본인도 반드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잡지에서나 볼만한 세련된 에세이 글을 따라 쓰지는 못할 망정, 개인적인 사색이나 일기 같은 글을 긁적이기도 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글을 잘 쓰기 위한’ 가이드라인의 수많은 책들을 대강 보면, 일단 구상을 먼저 하든 말든 간에 무조건 쓰기부터 시작하라고 권유는 한다. 그리곤 하나의 문단에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만 전달해야 하는 원칙이 있듯이 한 편의 글에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단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가 깃들여 있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법칙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쉽게 나타낸 말을 제목이라고 한다.
어떠한 글이라도 서론의 방향 제시와 결론의 말끔한 정리만 있으면 본론이 모로 가든 도로 가든 대부분의 독자는 유명한 작가라는 권위자의 법칙에 의해 글이 우습지는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보 전달의 객관적인 글이나 어떠한 에세이류라도, 남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말미에 제시하지 않으면 본인은 그런 글은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없다면, 굳이 글을 통해서 찬찬히 숙고해가면서 음미할 이유가 없다. 그러한 의견은 말 그대로 어떠한 특정 관점에 투입되어 그대로 나온 배설물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런치가 그러한 해우소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는 내지 못하더라도 다른 권위자의 내용을 모방해서 결국 자신의 의견으로 재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작가 양성 통로(pipeline)라는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n번의 모방으로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