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실태를 잘 표현해주는 국가자격증의 의미론
정보통신업계에서 오라클 국제 자격증을 취득하고 IT 업종으로 이직하기 위해 한 중소업체를 나온 적이 있다. 그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그때 취득한 국제자격증을 가지고 계속 그 분야로 몸을 담을까 했다. 하지만 아직 합격일의 통보는 시일이 걸렸고, 그동안 호주에 들고 간 돈만 빈축 내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면접 보자고 연락 온 이 중소기업 대표의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합격일을 기다리던 자격증은 미국의 한 민간기관(한국의 대한상공회의소와 같은류의)에서 주최한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백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자격증의 가치는 있었는지, 그 중소업체에서 주임의 직책으로써는 꽤 높은 연봉을 제시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만약 호주에 계속 있으면서 그 직종의 TAFE 교육을 받고 현지에서 취업했더라면 3배는 더 받을 수 있는 직종이었다.
이직 후, 하필 그때 한국의 여러 대기업이 국가에 의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M&A로 매각되거나 합쳐지는 시국이었다. 호주에서 갓 건너와서 몸담은 이 중소업체도 그 여파를 받았다. 대기업에 있다가 중소기업에서 일해보니깐 업무강도는 그렇게 세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수출업종이라서 고객사의 입김이나 국제무역 경기에 그냥 나자빠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추풍낙엽처럼 직종을 IT업종으로 바꾸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17년도에 '정보보안기사'(이하 보안기사)라는 자격증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삼십 중반을 달리던 필자로서는 '정보처리기사'나 비싸기만 하고 알맹이는 없는 국제자격증류보다는 이직하는데 훨씬 효용성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2018년도에 재수만에 합격했다. 업계에서 '정보처리기사'(이하 처리기사)는 IT직종에 몸을 담는데 운전면허증과 같은 시험이라고 들었다. 당시에 처리기사를 취득하지 않고 보안기사에 매달린 까닭은 시험이 어렵기로 소문이 나서 도전적인 필자 성향에 맞았기 때문이고 빨리 이직에 골인하기 위해서라는 까닭도 있었지만, IT 개발업계가 아니라 IT 보안업계로 이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행간에 '자격증의 범람'이라는 이슈가 회자될 때, 특히 정보처리기사는 공시생(공무원 준비 응시생)들이 가산점을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따놓는 쉬운 자격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둘째 치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개발자로서는 꽤나 이름값이 높았던 'Pope'(교황의 영어 표기를 축약함)라는 필명의 캐나다의 한 억대 연봉의 한국인 개발자가 말하기를...
IT 자격증은 국가가 기반 전략산업으로 예산을 밀어줄 때, 정부에서 많이 취득하게 하라고 권장하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SI 업계에서 요구되는 전유물이지, 실제로 IT 종사자가 자격증을 딴다고 몸값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뭐 연봉 상위 10%의 개발자(자신이 한국에서는 1% 안에는 들기에)는 자격증이 없고 오히려 하위 50%의 IT 종사자들이 자격증을 가장 많이 소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당시 저 말의 저의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보안기사를 엊그제 취득하고 IT보안업종으로 커리어를 전환한 필자로서는 그의 관련 유튜브 영상에 댓글 하나 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와 다투기를 몇 차례 하고 필자가 마지막으로 결론내기를 '그 따위 자격증의 내용은 하등 쓸모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내가 말하려는 바는 우리나라 개발자 1세대도 V3 백신을 개발했고, IT 보안직종이 왜 개발자들이 실력이 모자라서 건너오는 파생물에 불과한 업종이라는 거냐? 보안업종에서 개발자보다 디버깅을 더 잘하는 이도 수두룩하고 보안 솔루션 개발은 무슨 호구로 보냐?' 한 방 먹였더니, 오는 답변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 저번에는 그레이 햇 해커(Gray Hat Hacker)라고 하시더니,, 뭐시기 어쩌고 저쩌고'...
자격증 디스 하는 것까지는 오케이, 그래도 보안 기사 자격증은 무시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필자가 그의 유튜브 영상에 댓글 하나 달았는데, 그 '포프'라는 작자는 자신이 아는 MS의 한 친구가 개발자로서 실력이 딸려서 보안업계로 이직했다는 등 본인 자랑을 하길래, 필자는 본의 아니게 현재 지지하지도 않는 1세대 개발자까지 운운하게 되었던 것이다. 연대 법학과 나오면 다인가?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판사나 변호사나 할 것인지, 뭐할라고 필자의 친구가 나온 캐나다의 워털루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까지 공부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게임 개발자가 되었는가?(그리고 오래전에는 왜 게임 개발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영상이나 올리고 있는 건지...)
필자가 이 글에서 본인 자랑하려고 '보안기사'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개발자 교육을 받을 당시에 '처리기사'도 취득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처리기사가 지금처럼 이론적으로 더욱 어렵게 바뀌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필기에서 두 세 문제 틀려서 하릴없이 보안기사에 올인했었다. 물론 열심히 노력했던 것은 후자가 맞기도 하고 그 'Pope'라는 개발자에게는 자격증이라고 다 같은 자격증으로 보지 말라는 의미에서 딴지를 걸었던 거였다.
나는 엊그제 이직 면접을 본 한 IBM을 고객사로 둔 패스워드 인증(auth) 서비스 업체에서 마지막에 나에게 던진 질문인 'RSA'에 대해서 답변한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에 당황했지만 Rivert, Shamir, A.... 등 이것을 호칭을 만든 세 명의 교수를 기억해내면서 이 암호화 알고리즘의 기초개념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하니, 이것을 물은 면접관이 오히려 당황한 기색을 보였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 면접관은 자신이 보안기사 3회 차에 응시했는데, 떨어졌다며 산업기사가 아니라 기사를 취득한 게 맞냐고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우스개로 필자에게 물은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