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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Jun 20. 2021

줄행랑치게 만든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Quiet Place) II'와 '언힌지드'영화리뷰





개인적으로 러셀 크로우보다 영화 '글래디에디터'에서 콤모두스 황제 역을 연기했었던 호아킨 피닉스를 좋아한다(그의 형은 제2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렸던 리버 피닉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러셀 크로우가 이때 호아킨이 연기한 악역보다 더 잔인하게 연출한 분노 연기가 압권이었던 '언힌지드'를 통해 뚱뚱한 그도 좋아하게 되었다. 



악역의 대명사에 어울리는 호아킨 피닉스는 재작년에 영화 '조커'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탔었다. 하지만 악역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영화 '레옹'에서 주인공 레옹을 잡으려는 형사 역을 연기했던 게리 올드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모두 악역이라는 2인칭 시점에서 주인공을 쫓는 구성 방식이라서 오늘 본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II'에 비하면 심장 졸이게 하는 장면은 몇 개 없었지만 말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놀이공원으로 치면, 처음 타봤을 때의 자이로드롭에서 느꼈던 수준의 긴장감을 전달받은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미친 듯이 해댄 리액션으로 쫄깃해진 심장을 추스리기보단 근래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의도가 궁금했다.




아파트에 살면 위층이 아니라 아래층에서 울리는 층간소음이 위층으로 전달되어 밤만 되면 잠들기 무서운데, 혼자 살 때면 바깥의 어떤 개 XX 꼭 한 두 명이 차량에 마우라를 장착하여 밤마다 싸돌아다니다가 주차하기 무섭게 그 차량 엔진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터널 내에서 차선 변경 금지가 의무화되기 전에 한 번은 앞차량의 속도가 느리길래 차선을 변경해서 달렸는데 변경한 차선에서 달리고 있던 트럭이 내가 차선 변경한 것이 못마땅한 건지 트럭이 달리던 속도를 줄이게 만들어서 열 받았는지, 고속도로에서 그 트럭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패스트 퓨리어스"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다.



보복운전은 일개 시민이라도 한 번 뚜껑 열리면 속도고 나발이고 사고 날 것을 겁내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전 세계적으로 범시민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노출된 소음과 흐트러진 교통정체 속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는 시대를 현대 사회로 바라볼 수 있다.




영화 '언힌지드'에서도 아이를 태운 엄마가 학교로 데려다 주기 위해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대형 픽업트럭에 막혀 경적을 울리자, 트럭 운전수(러셀 크로우)의 보복운전이 시작된다. 그런데 오늘 본 '콰이어트 플레이스 II'는 그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언힌지드'는 러셀 크로우의 연기력에 압도되어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일 거라는 개연성이 충분히 느껴지면서 그 잔인함을 예상할 수 있는 영화였더라면, '조용한 곳'이라는 영화는 주인공 여자가 청각장애인라는 설정부터 자지러지게 만드는 영화였다.



일단 외계 생물체의 압도적인 인간 살인력을 처음에 각인당한 이후로 나 혼자만 몸을 움츠리고 리액션을 하며, 숨을 홀 딱 홀 딱 거린 건지, 시종일관 조용한 객석에서 혼자 쇼하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 영화는 이 영화가 생애 처음이었다. 요즘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었나... 어쨌든 뭔가 또 튀어나올 거 같거나, 삼인칭 시점에서 '야야, 소리 내지 마라 말이야... 야 인마, 말하지 마라 말이야...'라고 속으로 혼자 불안에 떨 때마다 옆에 앉아 있는 다른 관람객을 흘끗 보면서 영화의 긴장도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속마음에서 되뇌게 만드는 이 메시지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였을 거라는 것이 짐작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감독은 단순한 스릴러 장르에서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해주려고만 이 영화 시리즈를 만들었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언힌지드' 영화에서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트럭 운전수(러셀 크로우)를 통해 현대 시민들의 속마음을 표출했다면, 이 영화는 외계 생물체의 침입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차용해서 소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비상식적인 현대인들에게 "쫌, 조용히 좀 다니고, 조용히 좀 물건 내려놓고, 조용히 좀 문 닫고 살라고!" 말하는 감독의 의도가 느껴졌다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자막으로 감독 이름이 등장하기가 무섭게 나는 무언가가 자꾸 찔리는지 줄행랑치듯이 영화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살금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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