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된 영어 코너

일본과 한국의 영어 성적이 만년 하위권이었는데 한국은 지금...

by Younggi Seo






어제 나의 영어 이름과 같은 원어민과 CC(Complementary Class)라는 유창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수업을 가졌다. 영국의 뉴캐슬에서 온 그는 일본에서 토익과 아이엘츠를 전문으로 가르쳤던 강사직을 하다가 한국으로 넘어왔단다. 뉴캐슬 하면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에게 자주 지는 팀으로 기억한다고 말해 강한(?) 인상을 처음에 그에게 남겨서일까, 아니면 불리는 이름이 같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제도 본인이 그를 주도하면서 대화를 이끌 수 있었다. 물론 외국인인 내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 주의 깊게 들어야만 했다.




수업은 그가 준비한 '빅 파이브' 테스트라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MBTI 성격유형검사와 비슷한 진단을 하고 나온 결과에 대해서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섯 개의 성격 유형 중 우호성(Agreeableness)이 보기와 달리 그보다 내가 높게 나와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와 같은 성격은 일본인들에게 더 두드러 지게 나타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주위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주로 동의하는 편이라고 들었거든.' 그가 말하길, 맞다. 또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영어를 못한다. 대체로 질문이나 말을 '더' 안 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주변의 관계를 먼저 살피거나 혹은 주위의 맥락에 따라서 자신의 발언을 아끼는 성향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너 나할 것 없이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보면, 예전에 공인 영어시험 등수가 아시아 국가에서 서로 하위권을 앞다툰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오늘 검색해보니 한국이 아시아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토익 및 토익스피킹 점수가 높게 나오는 국가로 확인했다.




필자가 10년 전에 간간히 치른 토익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 영어에서 말하기와 쓰기 시험이 많이 유행되는 아마도 그 시점부터 한국도 이제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영어를 많이 접하는 싱가포르, 홍콩 같은 국가들보다 객관적인 지표에서 많이 뛰어오르긴 올랐어도, 내공은 정말 일지 사실 의문스럽다.


내공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수준에 맞는 영어 페이퍼북 하나 붙잡고 그것을 지루해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볼 수 있는 문해력을 갖춘 사람(bilingual)이 몇 명이나 될까라는 반문에서 비롯된 '영어에 대한 감각'이다. 아마도 토익 수험자들 중 열에 아홉 명은 영어 원서 한 번 읽어 본 적이 없었을 거라고 예상된다.


10년 전에 필자는 무작정 영어를 외우고 발화하는 방식으로 토익스피킹을 준비했고, 시험을 위한 패턴 암기는 몇 개만 외우고 시험을 보면 5급 정도 나왔다. 그 당시 전공이 이공계 쪽이었으니, 그 정도면 양호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토익스피킹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준비를 할까?


모범 답안에 해당하는 스크립트를 통째로 외울까? 좋다~. 그것이 네이티브가 자주 쓰는 구어체의 구문(덩어리 표현)과 텍스트라면 일단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오더라도 가장 무식하지만 점수 잘 받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데 계속 구겨 넣으려고 할 때, 그 반발(스트레스, 공학 용어로는 '저항')이 크기 때문에 결국에 시험 당일에는 외웠던 내용을 말해보기는 커녕, 머릿속으로 헤집다가 몇 마디 못하고 시험이 끝날 확률이 클 것이다.




일전에 영어는 9할 9푼 9리는 인풋의 양이 아니라, '파워(입력의 세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무조건 쑤셔 넣는다고 머릿속에 원어민도 베껴 쓰고 자주 쓰는 표현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입력시킬 수는 없다. 그러한 표현이 영어가 외국어인 외국인으로서 암기를 하려면 암기가 되도록, 즉 '저항이 덜 느껴지도록' 필요한 선행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점가에 매년 베스트셀러를 지키고 있는 어학분야의 서적은 토익 대비용 책이 단연코 첫 번째다. 그리고 외국어 코너에 가면 각자도생의 영어 방법론에 대한 책들만으로 도배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 또한 초심자였을 때, 여기서 단 한 권의 책만 이른바, '훅 포인트(첫 3초 만에 눈에 끌리는 제목으로 낚는다는 마케팅 용어)'에 잘못 걸리면 보통 10년은 영어에 대해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해 줄 수 있는 책들이 즐비하다는 데서, '인생 10년은 한 방'이라는 진리가 서점가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작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네이티브들은 영어가 자신의 모국어이기 때문에 절대 영어가 외국어인 외국인에게 자신들과 같이 자연스러운 습득('처음에 몰라도 입력만 반복해라! 그러면 언젠가 알게 되리라~.') 론만으로는 핸디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나마 타일러라는 외국인이 한국인에게는 영어를 배우는데 단비와 같은 존재로 다가오기는 해도, 외국인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인풋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원리를 나열한 지식인 '문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행간에 일본인이 지은 책 중에 '영어, 문법과 사전은 버려라'라는 제목의 영어 원서 읽기 신봉론자가 있던데, 그 책을 본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당신도 영어문법을 보통 영어를 학교에서만 배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어 원서를 봤으면서 왜, 문법은 아예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저자는 ‘학교’ 문법이 왜 잘못되었는지 A부터 Z까지 설명하는 수준의 이공계 대학 교수였다(하지만 단어집을 버려라는 의견은 동의한다).


원서를 읽기 전에 최소한의 문법 지식, 문장의 어순(영어의 논리)대로 어떻게, 무슨 뜻으로 해석이 되는지는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영어교육자 '스티브 크라센' 교수의 이 영상을 보면 마치 먼저 영어를 읽고 듣는 게 말하고 쓸 수 있는 효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스티브 교수도 말했듯이 이해를 했다는 전제 하에서 입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국어가 영어인 미국인이나 캐나다인들과 달리 한국인은 영어 자체를 따로 한국어라는 모국어의 도움도 없이(이해 없이) 계속 듣고, 읽기만 한다고 원어민들처럼 영어실력이 늘까?


착각이다. 많은 한국의 엄마들은 아직도 자녀들에게 영어동화나 원서를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검증된 번역본을 통한 선행학습도 없이도 읽기만 하면 모국어처럼 실력이 늘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영유아기에 아직 한국어가 모국어로 자리 잡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영어만을 사용하는 유치원에 줄을 서서라도 비싼 돈 내고 보낸다. 하지만 초등학년 3학년쯤 되는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었던 영어에 대한 쓰임새는 곧잘 까먹게 된다.




깨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교육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기유학도 계속 보낸다.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갖다와도, 심지어 미국에서 대학 다니다가 중간에 좌천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어릴 적에 과연 영어에 투자한 교육 시간이 모자랐을까, 실력이 모자랐을까?


이해가 된다는 전제 하에 머릿속에 부어야 하는데, 한국인이 영어를 처음부터 영어 원서를 읽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많은 문법 배격론자들도 영어 원서를 읽을 때 자신이 아무리 쓸데없다고 치부하는 학교 영어문법에 대한 지식이나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는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이해할 수는 없다. 왜? 외국인이 머릿속에 기억한 내용을 불러올 수 있는 매개체는 자신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어 원서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법 지식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고, 그것의 첫걸음이 문장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지식이고 그것이 동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많이 쓰이는 동사의 의미와 쓰임새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서 머릿속에 약간이라도 자리 잡은 개념을 조금씩 가지고 쉬운 원서부터 붙잡고 읽기 시작하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문법 지식이 책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하면서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다. 처음에는 그 표현이 잘 와닿지 않더라도 이 구문은 이렇게 해석한다는 문법 지식이 기억나고 그것을 적용하면서 여러 번 읽다 보면 이야기 흐름 상 어떠한 느낌인지와 비교해가며 해석(분석이 아니라, 직관적인 뜻)을 추측할 수 있다. 처음에 잘 와닿지 않는 문장의 의미와 느낌을 무시하더라도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거나 아니면 번역본을 미리 읽어 본 뒤 다시 접하면, 맥락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 그럴듯하게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해낸 의미 해석이 언젠가 우연히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해당 용법의 해석을 검색해보거나, 번역본을 다시 찾아봐서) 원서 읽기에 흥미를 붙일 수 있다.


예를 들면, 'repeat'라는 단어를 단순히 '반복'이라고만 알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은 이 단어가 법정과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발설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즉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부에 쓰인 단어(secret)와 함께 자연스럽게 아~ 여기서는 우리나라말로 치면 아마 이런 뜻으로 사용했었구나(아핫!)를 통해서만 진짜 영어 어감이 늘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어감이야말로 영어권에서는 네이티브들이 일상에서 하나의 단어를 여러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는 영어 실력을 나타내는 (그러운 자식아, 그 정도면 됐다… 는)다.


다만 수학처럼 전체를 쪼개서 개념을 하나씩 완벽히 이해한 다음 진도를 나가는 방법과는 달리 많이 털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까먹고 반복하기도 수없이 해야 나중에 눈덩이처럼 굴릴 수 있는 자신의 영어실력 효과(말하기와 쓰기)를 볼 수 있으므로 성격이 급한 사람(‘대한민국인’)이 영어를 잘하는 실력(유추)을 갖추는 것은 서두에서 말한 ‘쏟아붓기 패러다임’을 깨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읽다가 이미 지친 독자라면 더 할 말이 없다.




필자는 근래 이전에 읽고 실천하려다가 포기했던 '진짜 영어공부 트레이닝 북' 책에서 단어 리스트를 제공한 시드니 셀던의 '게임의 여왕(Master of the game)'을 초반에만 단어학습을 선행하면서 읽다가, 귀찮아서 그냥 한 번에 일독했다. 그런데 이러한 스릴러물은 이야기 흐름에 한 번 빠지면 이야기의 긴장감에 몰입되어 중간중간에 생소한 단어가 나오더라도 쉽게 유추하고 정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초반 다섯 챕터까지는 가지고 있던 책 속의 어휘 스펠과 뜻까지 적거나 이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확인해가면서 보기는 했으나, 사실 생소한 단어 하나하나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았다. 스릴러 특성상 인물들이 표현하는 감정의 세기나 반전미를 느끼면서 읽는 재미에 비해 세세한 단어(수식 역할을 하는 단어나 정말 드물게 쓰이는 단어, 이 책의 렉사일지수는 1000L이다.)들은 전체 흐름에서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의 이 스릴러의 묘미를 다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