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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Nov 15. 2022

잘 생각해보세요

지금 쫓고 있는 게 금줄인지 은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를 고민해보세요.





다시 철학이다.


잘 살기 위해서 어릴 때는 열심히 공부해라고 들었지만, 정말 잘살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잘 내기 위한 공부가 하니라, 돈을 벌기 위한 궁리에 도움 되는 공부를 해야 했었다.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더 열심히 일하기를 느끼겠지만, 정말 가정에서 인정받고 행복한 삶이 뭔지 느끼기 위해서는 일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는 아이러니하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사회의 순리대로 사는 게 곧 행복해지는 것이고 잘살기 위함인 것처럼 관념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것은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다. 행복은 무형의 개념이다. 막상 행복한 순간이 다가와도 깨닫지 못한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게, 그리고 그 자식이 자신의 뜻대로 잘된다(자신이 잘 된 건지도 모르면서?)는 게 부모로서 마땅한 행복일까?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통제가 가능한 적이 있었는가?


대부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것을 본인이 평생 일하지 않고 벌어놓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지면 자신의 길을 추구할 수도, 또한 행복을 열망할 수도 없다. 돈만큼 철학만큼 중요한 게 없다. 돈은 삶에서 인간이 자신을 삶을 통제하기 위한 더 나아가 무용지물일 수도 있는 행복이라도, 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그리고 시간이다.


인간은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출퇴근을 위해서 30분에서 1시간(심지어 2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회사 근처가 집이라면 그 시간을 아껴서 자신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 평범한 남들이 갖지 못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회사 근처에 집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이 필요하다. 결국 시간도 돈이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가졌어도 시간만은 되돌릴 수 없기에 시간은 돈보다 사실 더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어떤 무형자산에 대한 가치를 사는 것이 첫걸음이지만, 실제로는 그 성장 가능성을 담보로 우리가 투자한 돈에 대한 썩힘(시간)을 사는 것이다. 기업이든 땅이든 그 돈을 가지고 가치가 상승하면 향후에 묶혔던 돈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철학)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자신의 가능성을 그려(타진해) 보고 나의 현재와 미리 앞으로의 계획(시간)을 거기에 묵혀두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본인에게 떨어지는 것을 담보로 미래에 자신이 어떠한 위치와 입지를 구축했는지 미리 그려볼 수 있다.



그러면 철학, 즉 생각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자신의 성장(돈과 시간의 여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부자들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돼고자 하는 사람이 이미 되었다고 상상하라고 말한다.



상상력이다.


엊그제 본사로 출장 다녀와서 갑자기  일주일 간 집에서 자숙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겼다. 어릴 때는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꿈인 문학도였다. 그리곤 어쩌다 공과로 전향해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리곤 어쩌다 IT 보안을 배우고 정보보안 분야에서 일했다. 그리곤 어쩌다 클라우드 분야로 넘어와 엔지니어로 있다. 그리곤...



이건 내가 통제하고 있는 인생이 아니다. 쉽게 말해 막 굴러가고 있는 삶인 것이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




You Know What I'm Saying?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려면 어릴 적만큼 무한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토대를 지속적으로 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안된다. 부자가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닦아놓은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목숨 거는 부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영혼까지 그 삶에 갈아 넣어야 한다.



나에게 딱 100억만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고 유튜브에 이 콘텐츠를 스토리 텔링 하고 매달 300만 원씩 통장으로 자동으로 꽂히는 자동화 수익 구조를 만들겠다. 그러면 그중 250만 원씩 지금 시중 은행에서 가장 높은 금리의 적금에 부어서 매년 3,200만 원을 만들 동안 미국 S&P 인덱스 펀드에 매달 50만 원씩 넣고, 이 돈을 삼 년째 모아서 1억이 되면, 강남에 꼬마빌딩에 리츠 부동산으로 투자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세 번을 하면 아마도 내 수중에 현금은 여전히 처음의 '100억'이 있을 테다. 그러면 뭔가?



100억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돈을 원하는 만큼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나에게 100억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100억으로 무엇인가를 운용해본 적이 없었기에, 직장인의 사고(벼룩)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면 나에게 100억이라는 돈이 만들어질까? 가능성이 적다. 왜냐하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100억을 가지고 있으면 이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부터 궁리해야 100억 부자가 될 가능성이 그나마 있지 않을까?



어릴 때 나는 무엇을 하는 게 잘 사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소설이나 써서, 그 소설로 가장 위대한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최고의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회사에 출근해서 8시간 일하고 매달 월급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당신이나 나에게 최고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일주일 간 쉴 때, 토익이나 다시 한번 볼까 하고 어느 인강 강의를 들었다. 너무 씁쓸했다. 십수 년째 토익을 이 악물고 공부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토익이라는 무쓸모 영어시험을, 그것도 몇 년째 똑같은 강의를 하고 있는 강사의 열정을 느끼기에도 씁쓸했다. 변한 게 없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은 미국 말이고 미국에서 건너온 정량적 지표라면 치켜세워주고, 그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중국어 시험이 정량적 지표로 내세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토익 강사가 말하기를, 문법을 박사 공부하듯이 파헤쳐서 더 어렵게 만드는 게 토익공부의 왕도가 아니란 데서, '또 사기치고 있다'라고 느꼈다.



그 강사는 문법이 둘째라면 서러워서 울고 갈 위인임에 틀림없다. 토익에만 한정해서라도 말이다. 본인이 토익을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네이티브처럼 말발이 좋아서, 필력이 좋아서, 무당처럼 잘 알 들어서도 아닐 것이다. 자기가 네이티브보다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문법밖에 없으면서 문법에 얽매이지 마라고 한다. 그러면서 '품사'는 당연히 외워햐 한단다. 품사는 문법에서 등장하는 용어 아닌가, 한국인과 일본인만이 잘 내뱉는 '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기타 등등...'



사실 이 글을 쓴 목적은 대한민국 1등 토익강사의 말을 맹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막 쏟아붓는 강사의 말(자칭 얕은 문법 지식과 문제를 해석하지 않고도 푸는 요령=한국에서 답습하는 교과서 학습)은 토익(우물 안 개구리 영어) 점수(한국에서 가장 객관적인 인재 판단의 지표)를 잘 받기 위한 것이지, 궁극적으로는 영어(정답이라 표현하기 구차한 네이티브의 일상 표현)를 잘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답(사람마다 각자 나름의 해석이 필요로 하는)이라는 게 없는 사람(네이티브든 한국인이든)마다 다른 무한한 인생의 바다에서 당신과 나를 가르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가 토익 점수라는 게 우습지 않은가?


많이 들어보지 못했고, 읽어보지 않았기에 질적으로 나름의 꼼수, 그리고 알고 보면 외국인보다 빠삭한 문법 지식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게 토익이다. 양질 전화보다 '질량 전화'로 점수를 높게 따면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나, 중요한 건 여전히 머릿속에만 박혀있는 이 질적 지식의 방해로 인해 입으로 내뱉기에는 민망해진다.


내뱉는 순간, 한국인의 자의식이 가득한 토익 문법의 완성체인 예문이 다시 네이티브가 느끼에는 생소한 영어로 들린다. 그러면 원어민들은 '이 정도 수준이면 영어로 마음껏 갖고 놀 수 있겠는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토익시험에서 원어민에게 가볍지 않은 가정법 3rd conditional 문제도 순삮했던 토익 고득점자도 말하기에선 어벙벙으로 낙인찍히는 이슈에 한몫 거들게 된다.



그러면 외국 나간 들 영어가 저절로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유학이 필수코스인 줄 알지만, 영어는 본인 입으로 훈련해서 본인이 스스로 영어에 노출시키지 않는 한, 하와이서 평생 산 한국인이나 제주도서 평생 산 한국인이나 영어 수준은 비슷할 수도 있다.



토익이 900점 이상이라는 것은 그만큼 영어를 이해하는 정확한 해석력은 뒷받침되어 있다는 반증 정도로 받아들이고, 실제 영어를 많이 사용하기 위한 첫 스텝이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필자는 근래 영어도서관에서 테스트한 렉사일(Lexile) 지수가 1095 정도 나왔는데, 이전에 봤던 원서들의 구문이 더 쉽게 와닿고 정확하게 해석이 되었다. 영어는 외운다고 주야장천 듣는다고 느는 게 아니다.



원서를 읽거나 유튜브 영상의 영어를 들을 때 그 구문의 해석이 자신이 갖고 있는 문법 지식에 의해 정확하게 해석되는 과정이 숙달됨으로써 비로소 체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누락된 영어 원서 읽기와 듣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 낭비다. 그리고 시간은 곧, 가장 '비싼 돈' 낭비다.



그 토익 강사가 일타강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기반 지식인 문법에 대한 이해도에 맞춰서 순삮으로 정답으로 고르는 방법을 전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부터 배운 영문법을 정확하게 하나로도 실생활의 예문에 적용해서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온 사람이면, 한국인이라도 토익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확하고 빠른 이해도에 플러스 토익강사들의 꼼수를 더하면 상대 점수를 내는 토익에서 한, 두 문제 틀려도 다 맞힐 수가 있다.



현재, 내가 쫓고 있는 게 '영어' 겸(>) 토익인데 한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 지표가 가장 객관적일 수밖에 없는 게, 보통 사람들은 토익이 뭐 대수냐는 그룹을 일단 700점 하단에서 제외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익 900점 이상은 보통의 원어민도 받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900점 이상은 순수한 토종 한국인이 학교 다닐 때부터 영어 공부를 성실히 했다는 지표로는 객관적일 수도, 다소 주의가 필요로 하는 지표이긴 한 것 같다. 마치 웨런 버핏이 이 지표가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한 이후로, 한국 개미들이 ROE, *ROE(Return on Equity, 자기 자본 이익률)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 돈, 철학 얘기하다가 영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빠졌다. 이렇게 글을 장황하게 써 본 지도 오랜만이라서 어쨌든 다 쓴 보람은 느껴진다.


* ROE: 자기자본이익률 - 나무위키 (namu.wiki)

  


 

퍼옴 (Kihyo Park) ∨ (박기효) 님의 트위터: "나: 이 문장 이거 문법적이라고 생각되시나요? 실험참여자: 잘 모르겠는데요. 나: 몇 번 더 잘 생각해보세요. 실험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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