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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Jun 03. 2016

영원한 진리란 없다

당신의 말이 백 년 이후에도 옳다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잠깐 낮잠을 청했다. 미래로 시간대가 옮긴 꿈을 꿨다. 아버지가 이 세상 분이 아니셨다. 그분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살아계실 때 잘해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 슬펐다. 목청이 터져라 아버지라고 외쳤으나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고 나는 지금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앙금을 지울 수가 없다는 감정을 한동안 머금는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지금은 떳떳이 믿는다. 아버지와 언쟁이 일어나면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나의 목소리만 냈다. 하지만 꿈이라는 매개 덕분에 결코 유교 경전에서 강조하는 효성이라는 주입식 덕목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께 그러면 훗날 후회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옛 모습을 보고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그림자를 보고 자책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비평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논거가 없다면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가장 논리적인 사고가 타인의 허점을 찌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가 현대사회다. 누군가의 약점과 허를 찌를 수 없다면 나의 강점을 내세울 수 없는 시대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물들이 현대사회의 인간군상이다. 하지만 그의 혀가 백 년 뒤의 시대와 사회 그리고 윤리적 관점에 비추어서도 존속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가장 논리적인 것이 결코 가장 강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송곳과 같은 뚜렷한 정신의 산물이 아니다. 나 자신이 부모의 품속에서 잉태한 이상, 인간성이라는 특성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토록 누군가를 짓밟고 오를 수밖에 없는 경쟁구조를 가장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회로 바라보게끔 만든 이유는 이것일 줄도 모른다. 다음 시대의 피조물에게 우리의 정신유산을 상속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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