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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May 07. 2017

세상의 이미지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질량



황금연휴기간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 마냥 들어오고 머릿속에 아직 남아있는 기억들이 하나둘씩 환기되었다. 나의 현재와 과거의 나를 이어주는 매개들이 나란히 출입하면서 그때의 감정들이 스스럼없이 개울가 물처럼 흘렀다. 그리고 나의 미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미래의 식구들이 살았으면 하는 보금자리를 그냥 올려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파트 정문 맞은편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쯤, 어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보게 된 정치인이었던 유시민이 떠올랐다. 본래 엊그제 사전 투표한답시고 터울 없이 나눴던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등장했던 이정희를 검색하다가 방아쇠처럼 연결된 관련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몇 다리 건너보니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한 때 본인이 창당한 당 대표로 나와서 당시 이십 대 중후반의 대학생들과 설전이라는 키워드의 동영상을 두 배속으로 돌려봤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


그리고 작가 유시민이 얼마 전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논리적 사고에 관한 강연을 하는 동영상을 초반에 보다가 잠결에 그만 보게 되어 어제 하루를 마감했었다. 아마도 지금 시중에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과 같은 맥락의 인생철학에 관한 강연 같았다. 그가 강연 도입부에서 환기시켜 준 명제는 나와 고등학생(16세)들과의 지적 역량의 차이는 없다, 다만 나는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은지라 어떠한 일에 대한 책임을 먼저 생각할 수 있지만 지적 역량이 오히려 부모세대인 나보다 좋을 수도 있는 학생들은 개인이 가진 권리에 대한 사회적 책무 의식이 아직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55세와 16세의 차이는 결과에 대한 책임감의 유무가 유시민이 발언한 당위 명제였고 그 이후는 그의 가치와 사실 논거를 통해 학생들의 이목을 계속 집중시켰다. 잠깐 내가 우리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건널목을 건너려는 순간으로 문맥을 되돌려보자. 내가 이때 왜 유시민이 떠올렸냐면 조금 더 나의 발걸음을 거꾸로 걷게 해서 되돌려 보겠다. 이때, 나는 이 생각을 하면서 샤베트라는 가게 옆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국어를 토익처럼 문법 따로 분석하고 암기해서 공부한 적이 없는데 모국어에 대한 독서나 의사소통을 외국어보다 왜 쉽게 하는지에 대해 이제 말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사용하는 말이나 글들은 단지 그 언어나 문자들로만 통해서 받아들인 학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절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지식의 차원을 몸의 감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이상으로, 내 생각에는 그 당시 내가 언문을 익혔던 상황과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고 갔던 감정들이 뒤섞이여 이런 것들이 수반된 하나의 환경적인 맥락 속에 자잘한 말들이나 글들이 함께 포함되어 두뇌에 누적되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외국어와 달리 출력 구조가 말이나 글의 단위가 아니라 그러한 언어들의 쓰임을 받아들였던 기억들이 먼저 환기되어 그때 자연스럽게 익혀졌던 말과 글들이 무의식적으로 발화나 작문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환경적 맥락으로 입력되었던 언어의 모임들은 출력 역시 그러한 환경적 맥락을 먼저 환기시켜서 거기에 엮여있는 단어나 구문들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모국어로 익혀진 언어행위라면, 외국어는 절차적 기억이든 서술적 기억이든 언어의 쓰임을 먼저 연습해서 그러한 쓰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가상의 환경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야 하는 입출력 구조이다. 뇌의 가용량을 무시한 채 자잘한 단어나 구 단위의 언어의 쓰임을 구태여 쉽게 기억해내려면 수많은 반복을 통해 각인시켜야 하는데, 모국어는 그러한 언어의 쓰임새를 환경적 맥락에 엮여서 입력되어있어서 출력은 단지 그 환경적 분위기나 그때의 이미지만 상기시키면 이루어진다는 게 나의 유레카이다.



그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영어 원서 읽기나 간간이 실력 테스트라고 보는 토익이나 이러한 영어 자체를 위한 공부는 삽질인가? 일단 그걸 떠나서 다시 앞으로 감기를 해서 내가 건널목을 건너면서 떠오른 유시민은 왜 갑자기 내 생각의 꼬리에 물려있었는지 그리고 그때 나는 무엇을 욕했었는지 떠올려 보자니, 나도 토익점수를 위해 영어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굴복을 한 상태라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지식인들과 전문가라고 자신의 명판을 호명하는 사람들의 지식들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진 지식이냐... 이제부터 말하려는 바는 그러한 지식들은 '허접 쓰레기들'이다라는 주장의 근거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자신의 전문지식인 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치인 유시민이 당시 자신을 포함, 심상정과 일부 정의당 의원들에게 던진 말인 '떨거지'들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세계 어느 나라로 유학 가서 공부를 하든 간에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오든 간에 책을 통해 서술적으로 혹은 논문과 시험을 위해 절차적인 반복을 통해 익힌 학문들은 책 속의 저자들이 겪은 경험과 그것들을 불러일으킨 그 당시의 환경적 맥락을 본인이 직접 환기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지금 내가 외국어라는 자잘한 언어적 의미를 해부하기 위해 매스로 살짝 토막 내야 하는 토익 문법 수준의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걷다가 갑자기 떠오른 유시민 작가를 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독일 유학파 경제학도라서 똑똑한 그를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니다. 해명하자면 그와 어제 한 동영상에서 설전을 벌였던 이십 대 대학생들과의 차이는 그가 말했던 열여섯 살과 오십 대인 자신과의 차이는 책임감 하나라는 것보다 더욱 큰 간극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일 때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었고 정치인이 되기 전 노무현, 이해찬과 함께 일하던 시절에는 노동법 관련 많은 사태를 피부로 느껴본 사람이다. 나는 유시민이 독일에서 공부했었던 지식보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자신의 정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느꼈었던 당시의 환경적 맥락이 지금의 유시민처럼 똑똑한 지식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겪은 텍스트


한미 FTA에 대한 분석력과 대단히 예리한 지적으로 정치인 유시민을 깜짝 놀라게 하였을지도 모를 대학생들의 반박들이었지만 그들이 말한 한미 FTA의 쟁점이든 야권 통합이든 유시민 발언의 팩트 체크이든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든 지식은 유시민의 머릿속에 든 지식과는 입력되어 저장될 때의 단위 질량이 다르다. 그것이 이미지이든 글자이든 말이든 그러한 자잘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구조적 맥락이 형성되려면 최소한 그러한 말과 글 그리고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현장에 두뇌가 노출되어 있었어야 했다. 청년들에게 누락된 것은 단지 이것이지만 작가 유시민이 강연회에서 말한 '결과에 대한 책임'의 누락이라는 것과 인과관계를 따져봤을 때 전자는 원인에 해당하므로 어쩌면 이것이 더 근본적인 게 아닌지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sPGWK21rP2w

(유시민, 그럼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retrived youtube.com)

https://www.youtube.com/watch?v=DXFln02qgng

(유시민, 20대 청춘들과의 끝장토론, retrived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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