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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Sep 10. 2020

하나부터 열까지

핑프족 도대체 넌 누구냐?

상담을 하다 보면 10대부터 70대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문의를 합니다. 때로는 나이 들었지만 어린아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데도 엄청 성숙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짧게 혹은 길게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을 봅니다.

오늘의 민원인은 사소한 것까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상담하는 '핑프족'  유형의 민원인이었습니다.

*'핑프족' :  '핑거 프린세스(finger princess)'나 '핑거 프린스(finger prince)'의 준말로, 간단한 자료조사 등을 통해 스스로 찾아보면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직접 찾지 않고 온라인이나 SNS 등에서 손가락만 움직여 질문부터 하는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이다.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설명이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어르신들은 고용보험과 관련된 용어를 무척이나 낯설어 하기에 자세하게 풀이해서 설명합니다.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청년층은 어느 정도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문의를 하기에 긴 시간을 통화하는 극히 드물죠. 상담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안내를 해야 하는 필수 정보들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오정보를 차단하고 민원인의 입장에서 필수적으로 숙지해야 할 사안들을 절차에 따라 상담해야 하는 기본 스크립트가 있습니다. 그래야 상담을 하면서 발생되는 서로 간의 오정보들을 차단할 수 있게 됩니다. 민원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기에 잊지 말고 안내를 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스크립트 구성 절차별로 묻고 답하면 상담은 가볍게 종료가 됩니다. 기본 필수 안내사항에 민원인이 궁금해하는 한 두 가지의 질문이 더 추가되어도 어렵지 않게 상담을 마칠 수 있답니다. 간혹 민원인중에는 정보를 수집하는 형태의 문의를 하시는 민원인이 있습니다. 그런 정보 수집형 민원인은 본인의 궁금한 점을 해소한다기보다 다량의 정보를 체득할 목적으로 문의를 합니다. 그런 유형의 민원인을 만나면 그냥 나 죽었소 하고 그 사람과 하루 종일 상담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과 서로 간에 문의 내용을 주고받으면서 상담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힘들고 더 지치게 됩니다. 제 머릿속 상담 정보가 휘리릭 다 날아가는 소모적인 느낌도 들곤 합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길게 20분~30분 정도를 기다리다 연결되는 수많은 민원인에게도 그런 사람들은 민폐입니다.


 상담을 해 온 그 청년은 스무 살 정도의 앳된 목소리로 실업급여 문의를 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인 이런 청년들에게는 좀 더 자세하게 상담을 해줍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사회 초년생이라 학교생활을 했을 때의 언어와 고용노동부에서 상담하는 용어 자체가 정말 생소한 용어들이 많기에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을 해주곤 합니다. 자세히 풀어서 상담을 해준다 했을 때 30분 정도면 신청하는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내용은 안내가 끝이 납니다. 그 청년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세하게 상담을 해주었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자세한 걸 뛰어넘어 세세하게까지 설명을 해줘야 했습니다. 용어 하나하나 죄다 설명을 해줘야 했고 설명을 해줄 때마다 반복적으로 두서너번 설명을 해줘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서류를 제출 요청하라고 거듭 강조해서 알려줬더니 사업장에 어떻게 요청하는지까지 묻더군요. 그래서 "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를 접수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멘트까지 알려줬습니다. 스스로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들까지 설명해주고 나니 1시간이 넘도록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핑프족' 유형이었죠. 요즘 젊은 청년들 중에 본인이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들도 온갖 질문 공세를 하며 해결한다고 하던데 딱 그 짝이었습니다.


 언론에서 보도된 악성 민원인들 때문에 2018년에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됨에 따라 저희 상담센터에서도 상담사의 상담시간이 길어지면 소속 팀장이 삼자(상담사, 민원인, 팀장) 통화를 통해 1차적으로 상담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게 됩니다. 피드백 제공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민원인의 경우에는 상담사 보호 차원에서 소속 팀장이 상담사에게는 상담 종료 지시를 내리고 이어서 상담을 하게 됩니다. 해당 청년과 상담이 30분쯤 되어갈 즈음 소속 팀장이 삼자 통화를 시작하면서 해당 민원인과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팀장으로서 피드백을 줄 내용은 아닌 듯 싶었는지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이 민원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게 많은 분인가 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도 질문을 하시네요.
반복적으로 알려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신데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도움이 필요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상식적인 일들도 질문에 질문을 꼬리 물듯하는 민원인이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일들도 세하게 몽땅 다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상담을 하고 1시간 30분쯤이 지날 때 본인이 상담받은 내용을 또 확인을 하더군요. 반복적으로 여러 번 설명해준 효과는 있었는지 제대로 리뷰를 마치길래 이젠 신청절차를 다 아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잘 알았다고 했습니다. 신청하러 가는 곳도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방문해서 신청토록 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뭐 때문에 방문했느냐고 담당자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갔으니 당연히 실업급여 신청하러 왔다고 하면 될 것을 질문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맘을 가다듬고 "실업급여 신청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세요"라며 알려주고 나니 마치 유치원생에게 이거 저거 다 알려주는 엄마가 된 꼴이었습니다. 해당 민원인과의 상담은 다량의 정보수집형 사람들보다 두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2시간가량을 통화하고 나서야 종료가 되었죠. 종료 후에는 저와 연결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민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해당 청년과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난 뒤 깨달은 인생의 지혜는 아이가 어릴 때 자립심을 키워주자! 였습니다. 살면서 모르는 것은 당연히 배움으로 익혀가면 됩니다. 아마도 그 민원인은 어릴 적부터 엄마가 모든 걸 다 해결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스스로 해보지 않았으니 뭐든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을 해서 타인에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 해본 일을 하는 건 당연히 두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 부딪치고 스스로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내 것으로 체득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기대고 의지하려고만 하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의지는 사라집니다. 정말 어른 아이가 돼버리는 것이죠. 요즘 주변에는 어른이지만 아이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뭔가를 찾아보며 해결하려는 저의 두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자립심을 키우며 올바로 자라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이들 어릴 적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에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려면 못 미더워도 눈 질끔 감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과의 상담을 통해서 스스로 자립심을 갖추는 것이야 말로 타인에게 민폐를 덜 끼치는 일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대부분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이다 보니 한 명 혹은 많아야 둘입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부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부터 열까지 뭐든 다 부모님 손으로 해결해 주려 합니다. 그러니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가 되어갑니다. 그런 아이들의 24시간 대기조처럼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엄마들을 '헬리콥터 맘'이라고 한다던데 그런 엄마가 키워낸 어른 아이가 '핑프족'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가 어릴 땐 엄마의 손길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나 아이가 유치원을 들어갈 즘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은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그 사소한 일들을 엄마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다 해결을 해줍니다. 아이에게 독이 되는 행동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자라면서 아이는 으레 엄마가 당연히 다 해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는 안 해주게 되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드니 떼를 씁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어집니다. 늘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면서 엄마는 육아 문제로 힘들고 지쳐 갑니다. 그런 실랑이를 벌이고도 엄마는 아이의 모든 문제들을 또 슈퍼맘처럼 다 해결해 주려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혼이 나면 아이는 득달같이 엄마에게 모든 문제 해결권을 넘겨주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는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한다한들 달라지진 않습니다.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기에 스스로 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한동안은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란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스스로 자립심 있는 아이로 키우라는 뜻으로 이야기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야 부모가 세상에 없을 때에도 아이는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성장해 나가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도 설정하면서 원하는 바를 이뤄가는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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