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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Mar 19. 2017

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Generalist vs Specialist

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어른이 되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퇴근 후나 주말엔 항상 테니스와 바둑에 빠져 계셨고,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뒤론 리스트에 골프가 추가되셨다.


나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엔 한동안 '어른은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명제를 충실히 따랐으나, 시대가 바뀐 것인지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 아버지도 나이 마흔이 다 된 시기에 석사 학위를 받으러 유학을 가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부서에 배치를 받으셨고, 회사에 있는 동안은 새 업무에 적응하시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는 충분히 쉬면서 본인이 하고 싶으신 일들을 하셨을 것이다.


이제 착각은 뒤로 하고 직장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생각해보자.



Generalist vs. Specialist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드는 고민이다. 메시 vs 호날두, 마이클 조던 vs 코비(요즘은 르브론?)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이기도 하다. 보통 어느 한 분야를 깊게 아는 사람을 specialist, 얕지만 넓게 아는 사람을 generalist로 칭한다. 물론 이 두 개념을 양 극단으로 놓고 보통 사람들은 그 스펙트럼 상의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Generalist vs Specialist. 난 그림엔 별로 소질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에 (사실 지금도) T자형 인재라는 개념이 유행했다. 넓게 알되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파이(�)형 인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드라큘라형 인재라 부르고 싶어진다. 장점이 더 많아지면 석회동굴형 인재가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인접 분야까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게 파려면 우선 넓게 파야한다.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다. 우리가 일을 삽질이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다섯 번째.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는 회사는 망한다.


나는 원래 어릴 적부터 호기심의 영역이 넓은 편이라, 직장생활 동안 어찌하다 보니 가장 앞단의 전략기획부터 시작해서 마케팅(고객 조사와 브랜딩), 뒷단의 영업관리와 수요예측, 짧게나마 매장에서 직접 물건을 팔아보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케팅 효과 분석과 판매량 예측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의 깊이는 한 가지 업무를 10년 동안 해온 사람과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반면에 한 가지 업무만 해온 사람과는 꽤나 다른 관점에서 일에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혹시 generalist vs specialist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싶다. 어느 한 function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자기가 속한 회사/산업의 큰 그림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한 회사/산업에 오래 있을 경우). 혹은, 여러 회사/산업에서 본인이 전문성을 가진 function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회사/산업을 몇 번 옮기려 하는 경우). 즉, 진정 전문가가 되려면 가로축(여러 산업 내 한 function)이든 세로축(한 산업 내 여러 function)이든 적어도 한 축으로는 어느 정도의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움의 속도


그런데 직장인에게 generalist가 될 것이냐 specialist가 될 것이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당신은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있는가?


서두에 언급했지만, 배움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조차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첫 몇 년간은 일 년에 책을 다섯 권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처음 직장에 들어가면 배울 것이 많고 업무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부서를 자주 옮겨 다니지 않는 한) 2~3년이면 많이 줄어든다. 어느 상황이 되면 크게 배우고 공부하지 않아도 주어진 업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낼 수 있는데, 그때부터는 회사에서의 배움 만으로는 성장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회사의 업무량/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와는 약간 다른 문제다. 물론 일을 많이 하면 많이 배우기는 한다. (상사가 일을 마구 시키는 논리로 악용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회사에서의 배움은 소속 부서의 업무 boundary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부서나 회사를 옮겨 다니지 않는 한 위에서 언급한 어느 한 축으로의 확장은 직접적인 업무 경험 만으로는 쉽지 않고, 책과 강연 같은 간접적인 경험들이 필요하다. 나도 직장생활 초반 집에 오면 놀고 자기 바빴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파트타임으로 석사 공부를 하고 Coursera에서 관심 가는 수업들을 듣고 있다. 단기간엔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시간이 3년 5년 쌓이다 보면 회사에서의 경험이 전부인 사람과 업무 외적인 노력을 한 사람은 본업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generalist vs. specialist를 고민했던 시기도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안감에서 왔던 것 같다. Steve Jobs의 connecting the dots를 떠올려보라. 물론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dot들은 connect 될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일단 dot을 많이 찍어야 이후에 connect고 뭐고 할 수 있다. 구슬이 서말이 있어야 꿰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커리어의 초중반에 있다면, connect를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dot을 충분히 빠르게 찍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Company-specific Knowledge


어느 순간이 되면 회사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점점 실무의 비중이 줄며 경영진을 위한 보고서를 쓰고 이곳저곳 보고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난다.


조직에 오래 몸담게 되면 어느 순간 사내정치라는 것에 빠져든다.


학생 때부터 공부만 열심히 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유독 조직의 생리에 일찍 눈뜨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선생님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선생님에게 이쁨을 받으려면 어떤 것이 먹히는지... 조직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매일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정받고 조금이라도 빨리 승진하고 무엇보다 규모가 큰(여러 부서가 얽힌)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다양한 부서의 임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우리 부서의 일만 하면 되는 단계를 지나 부서 간의 업무를 조율하고 부서를 뛰어넘어서 진행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임원들의 역학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누구와 누구가 같은 라인인지, 누가 빅마우스인지, 누가 우리 프로젝트에 호의적이고 누가 딴지를 걸 가능성이 높은지, 심지어 어느 임원들은 어떤 스타일의 보고서와 보고 방식을 선호하는지 까지도 차츰 알아간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배워가는 동안 점점 "내가 이 회사에서 일이 되게 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다"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전 직장에서 여러 경영진들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거나, 심오한 이치를 배우고 있는 것처럼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한 일을 어떤 식으로 포장하고 어떻게 경영진들에게 노출시켜서 인정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정작 일 그 자체에서 배울 기회는 줄어든다.


이러한 포장 기술이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일이 되게 하는데 중요한 노하우 임은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노하우는 당신이 회사를 옮기는 순간 연기와 같이 사라진다.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general 한 지식이 있는 반면, 특정한 분야에서만 적용되는 지식을 domain-specific 하다고 한다. 혹시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는 것들이 company-specific 하지는 않은지 한번 돌이켜보라. 물론 열심히 일하고 인정은 못 받는 상황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런 지식은 임원이 되어서, 혹은 임원을 바라보는 시기 정도 되어서 집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창 실무를 배워야 할 시기에 포장 법만 신경 쓰고 있다면, 언젠가 그 포장 안의 부실한 내용에 대해 해명해야 할 순간이 온다.



한편 조직에서 이러한 포장과 사내정치만 끝내주게 잘하는 임원을 만나게 된다. 작은 성과를 크게 떠벌리며, 본인의 영역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 기웃거리고, 무슨 일이 되려면 그 사람의 마음에 우선 들어야 하는 사람. 빅마우스여서 여러 임원들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윗사람은 또 깍듯하게 챙기는 사람. 하지만 정작 본연의 업무에 어떤 역량이 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불분명한 사람.
보통 윗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잘 손대지 못하는데, 우선 빅마우스이고, 본인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어필하며, 결정적으로 자기에게 잘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에 이런 임원이 있다면 꼭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여기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1) 본인의 업무와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하며, 2) 회사 다른 부서의 업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권한 남용을 막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비선 실세'이기 때문이다. 최순실도 그렇게 탄생했다. 비선 실세가 비선인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지금은 조직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런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조직의 부작용이 훨씬 크다.


잠시 옆으로 샜지만, 최근 몇 달간 본인이 회사에서 배운 것 중에 '이 회사에서만 쓸모 있는 것'과 '어느 회사에 가든지 필요한 것'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전자가 압도적으로 높다면 당장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 상태로 몇 년이 흘러가버리면 당신은 금세 '이 회사에서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될 것이다. 다른 회사에선 당신이 아는 것이 쓸모가 없는데 어떡하겠는가?



조직문화와 개인의 성장


그런데 조직에서의 커리어와 성장 문제들은 개인의 노오력 문제일까 조직문화의 문제일까?

나는 후자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Generalist를 선호하는 회사인가 Specialist를 선호하는 회사인가?


물론 어느 회사나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분위기는 분명히 있다. 성급한 일반화겠지만 다음과 같은 경향은 있는 것 같다.


작은 회사일수록 generalist가 많아야 한다. (스타트업엔 일당백이 필요하다)

산업 자체가 기술기반일 경우 specialist를 좀 더 선호한다. (꼭 R&D부서가 아니더라도)

여러 function을 두루 관리해야 하는 포지션은 generalist가 필요하다. (브랜드장은 생산-기획-영업을 모두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비슷한 이유로 관리자가 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generalist가 될 수밖에 없다.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무에서 멀어짐에 따른 현상이기도 하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회사, 혹은 특정 포지션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문제는 직원 입장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회사/포지션에 지원하는 경우다. 본인은 성향상 좀 더 폭넓게 아는 것을 선호하지만 specialist가 필요한 회사에 입사한다든지, 반대로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데 폭넓게 아는 것을 강조하는 회사에 입사한다든지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엔 우선 다니는 동안 마음 한 켠이 계속 답답할 것이다. 폭에 대한 갈급함이든, 깊이에 대한 갈급함이든, 배우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우리 부서나 내 상사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반의 분위기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이직이나 업계까지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입사하기 전에 본인이 가려는 회사가 generalist를 선호하는지 specialist를 선호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은데,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겠지만 추가적으로 몇 가지 힌트는 다음과 같다.


이 회사는 석박사에게 학부생보다 얼마나 혜택을 주는가? : 가장 강력한 지표이다. 아예 학위 없이는 지원이 불가능한 연구직들이 있는 반면 석박사 학위가 아무 메리트가 없거나 심지어 불이익이 있는 포지션도 있다. 전문성을 선호하는 회사일수록 학위에 대한 메리트가 확실하다. (물론 공부한 분야가 업무와 연관이 있다는 가정하에) 삼성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박사에 대한 대우였다. (연구직이 아니어도 그렇다) 이전에 경험한 회사들은 대부분 MBA가 아닌 이상 학위에 대한 특별 대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석박사 학위가 없더라도 석박사에 대한 대우가 어떻게 다른지는 한번 알아보는 것이 좋다. 비슷한 기준으로 자격증/고시에 대한 대우도 볼 수 있다.

면접관들이 무엇을 물어보는가? : 면접 시 (이때는 이미 늦긴 했지만) 면접관들이 얼마나 다양한 경험들을 해봤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반대로 이력서의 어느 한 부분을 붙잡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 깊게 파고들 수도 있다. 이런 질문들은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회사 내부에 사업부가 얼마나 잘게 쪼개져 있는가? 사업부마다 직원들이 얼마나 있는가? : 회사 자체가 작거나, 작은 규모의 사업부/브랜드로 쪼개져 있을 경우 위에서 언급했듯이 generalist를 선호할 확률이 높다.

이 회사에서 제시하는 CDP(Career Development Plan)가 어떻게 되는가? : 공채에 지원하는 신입사원이야 이력서 넣고 면접을 보게 되면 정해진 스케줄대로 단체로 일정이 진행되지만, 좀 작은 회사나 경력직 지원의 경우 공식 면접 전에 채용담당자와 먼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처음엔 어떤 일을 맡다가 몇 년 후에는 이런 업무/포지션을 맡을 수 있고 그럼 나중에 이러이러한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회사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Generalist를 선호하는 회사는 당신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의 다양함을 어필할 테고, specialist를 선호하는 회사는 당신이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물론 직원들의 성장 경로에 대해 아무 계획이 없는 회사도 많다... 비추한다...)



한 부서에 얼마나 오래 근무하는가?


보통 회사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몇 번은 부서 이동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로테이션의 주기와 이동 가능한 범위는 회사마다 다르다. 얼핏 보면 인사제도의 문제 같기도 하지만, 로테이션의 주기와 이동할 수 있는 부서의 범위를 제도에 명시하는 회사는 없기 때문에 이것도 조직문화의 이슈라고 볼 수 있다.


로테이션 주기와 범위를 정하는 데에는 인재 배치에 대한 몇 가지 철학이 필요하다.


Generalist를 키울 것인가 specialist를 키울 것인가?

회사의 안정적인 운영이 중요한가 직원들의 성장이 중요한가?

뽑아서 키울 것인가 큰 사람을 뽑을 것인가?


Generalist로 키우려면 몇 번의 부서 이동이 필요하다. 이런 회사에서는 한 부서에서 1~2년, 길어도 3년 정도면 이동을 한다. 반면 전문가를 선호하는 조직은 그 주기가 더 길다. 전 직장에서는 2년 정도면 부서 이동을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성장 경로를 그렸었는데, 삼성에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 중 하나는 부서 이동 자체가 매우 드물고, 부서를 이동하게 되면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5년 정도는 한 부서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한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얼마나 맡아야 그 일의 전문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회사의 철학이 부서 이동 주기에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는 5년, 심지어 7년 10년이 되기도 하는 이동 주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즉, 어떤 직원이 부서에 2~3년 동안 근무해서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하게 되었을 때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다수의 회사는 그 직원이 이제 업무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생산성도 높다!) 더 이상 이 일을 하기 싫어서 이직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그 일을 시킨다. 만약 운영상의 효율만을 따진다면 맞는 방향이다. 게다가 직원 입장에서도 본인이 잘 아는 일을 적당히 하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도 없고 월급도 나오고 일 잘한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나쁠 것 없다. 


'An Everyone Culture'에서 소개하는 성장 추구형 조직 Deliberately Developmental Organization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책에 사례로 나온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사람이 자기 업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익혔으면 그 자리에서 빼서 다른 자리로 이동시킨다. 책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 부서 이동 주기가 길어야 2년 안팎일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보면 운영 상의 낭비로 보일 수 있다. 그걸 떠나서 직원들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무언가 익숙해질 만하면 새 부서로 떠나라니, 어떤 이들에게는 고문 같은 회사다.


하지만 그런 점들 때문에 그 회사를 선택한 직원들도 많다. 부서 이동의 범위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이전에 해본, 혹은 할 줄 아는 업무 위주가 아니라 새로운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보낸다. 회사 입장에서 단기적으론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결국 모든 직원들이 큰 맥락 속에 자신이 맡은 일이 어떤 부분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업무에 대해서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후보군이 여럿이 있으니 조직이 사람에게 끌려가는 사태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MIT에서 두 경제학자와 한 사회학자가 각 조직에서 뛰어난 생산성을 보이는 '슈퍼 히어로'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연구했다고 한다. 그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한 번에 다섯 가지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너무 여러 가지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처음에 학자들은 그들이 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예전에 한 일과 비슷한 일들을 찾다 보니 그 정도 수의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런데 실제로 조사해보니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슈퍼스타들은 기존의 기량을 활용할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지 않았고, 새로운 동료를 찾고 새로운 역량을 배워야 하는 프로젝트들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었던 것이다. 1)


물론 이 문제 또한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직 운영의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많은 회사들이 사람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부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퇴사하면 그 자리를 채운다"는 원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서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작은 조직이더라도 직원들에게 언제 어떤 일을 맡기고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줘야 회사도 직원도 성장할 수 있다. 회사가 작다고 해서 "I'm a 사장, you are a 직원. 요즘 세상 월급 주면 감사하게 일하세요 당신 나가면 다른 사람 뽑으면 돼요" 같이 직원을 대하면 그 회사는 영원히 작은 상태를 못 벗어날 것이다. 아님 망하거나.




내용이 좀 두서없어졌지만, 결국 결론은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과, 본인이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자 입장에서는 어떤 직원들을 뽑아서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에 대해 철학이 있어야 한다. 단지 돈을 많이 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혹은 월급 줬으면 됐지 무엇을 바라냐는 태도로는 서로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해봤어요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어필하는 인재가 요즘 세상에 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복장 자율에 무한 간식 제공, 도서비와 헬스비도 지원해 줍니다가 아니라, 업무를 통해 당신을 어떻게 성장시켜 줄 것인지가 보이는 회사가 그런 인재를 데려올 수 있다.




아 참,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1) 이 내용은 '1등의 습관' (찰스 두히그)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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