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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Mar 26. 2017

조직을 말려 죽이는 micromanager

Micromanagement, 위임, 그리고 방임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상사 복'이라는 것이 있다. 새 직장에 들어갔을 때, 새로운 팀으로 이동했을 때, 팀장이 바뀌었을 때마다 같이 일하기 싫은 상사를 만난다면 상사 복이 더럽게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같이 일하기 싫은 상사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째가 인성이 글러먹은 유형, 둘째가 무능력 + 결정장애 유형, 셋째가 오늘 이야기할 micromanager이다.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고 전부 자기가 직접 하려는 사람, 맡긴 업무에 대해 팀원을 믿지 못하고 미주알고주알 세세한 내용까지 지시하는 사람을 micromanager라 한다. 시시때때로 팀원에게 맡은 업무에 대해 보고하라고 하며, ppt의 줄 간격이 어떻다느니 네모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하는 부장을 떠올리면 된다.


Micromanager가 같이 일하기 싫은 다른 유형에 비해 특이한 것은, 나머지 유형은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스펙/경력 따지는 대기업, 컨설팅 등)으로 갈수록 만날 확률이 낮아지는 반면, micromanager는 오히려 그런 곳에 더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성이나 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인지하고 있다. (인지해도 계속 반복하긴 하지만...) 하지만 micromanager들은 본인이 micromanager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고, 누군가가 그 사실을 지적하면 자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광분하는 경향이 있다.



자율적 조직문화에 대한 이전 글에서 micromanagement의 폐해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다.


1) 조직원의 사기가 떨어진다

그러나 미셸 아비브와 모리시오 델가도 같은 과학자들은 자발적 동기 부여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라며 학습되고 다듬어질 수 있는 능력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 적절한 방법으로 연습하면 자발적 동기 부여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동기 부여를 위한 전제 조건은 행동과 주변 환경에 대한 지배권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려면 스스로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 '1등의 습관' (찰스 두히그)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첫째는 manager가 자기 스케줄대로 내 일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을 때(시간에 대한 통제권), 두 번째는 micromanager 밑에서 일할 때 (일에 대한 통제권)다.


Micromanager 밑에서 일할 때는 상사가 시킨 일을 그대로 하거나, 본인이 한 일을 상사가 다시 다 고치거나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럼 조직원들은 동기 부여 수준이 급격히 떨어지고, 그 모습을 본 상사는 아랫사람들의 일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더 micromanage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 악순환은 보통 팀원(들)의 퇴사로 마무리되며 그 자리에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면서 다시 시작된다.


2)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Micromanager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 본인이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싫어한다. 보고서 글자 크기에 토시 하나까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으니 자기는 그냥 손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좋았을 때는 그나마 낫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가 문제다. 일을 진행한 사람은 본인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일을 시킨 사람은 자기가 시켜놓고도 보통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부하가 한 일에서 자기가 시킨 대로 안 한 부분을 집요하게 찾든지, 자기는 아이디어를 줬을 뿐이지 그걸 그대로 하면 어떻게 하냐는 둥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제일 짜증 나는 부류는 이렇게 하면 일이 안될 것을 알았으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왜 그대로 했냐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경우다. 도저히 주도적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평가 철이 되면 주도적이지가 않네 운운하며 C를 준다. 역시 팀원의 퇴사로 마무리된다.


3) 리더를 키울 수 없다


Micromanage가 만연한 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조직에서 더 이상 리더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는 연습 가능한 영역이다. 그래서 조직에서 조금씩 위로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넓은 범위의 의사결정을 내려보고, 그 의사결정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관찰하며, 혹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을 때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 조직에서의 성장 과정이다.


'An Everyone Culture'에 소개된 B2B 이커머스 회사 넥스트 점프엔 문화 과제 Culture Initiative라는 것이 있는데, 회사의 본업과는 덜 관련된 조직의 여러 이슈들에 대해 일종의 임시 TF를 꾸려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본업에서는 아직 팀장이 될 준비가 덜 된 사람들도 이런 기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를 이끄는 연습을 할 기회를 얻게 된다.


Micromanager들의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들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연습 기회를 갖지 못한다. 무엇을 결정하려 해도 윗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결정을 뒤집는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회사를 떠난다. 그 자리에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올라온다. 못 미더우니 간섭한다. 또 반복이다. 이 순환을 겪고 나면 미래에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던 후보군들이 싹 말라버린다. 그럼 회사는 더더욱 지금 있는 리더들(micromanager)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 회사는 팀원들에게 하루하루 출근길이 지옥 같은 곳이 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micromanage의 폐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micromanager들은 어느 때고 부하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통 manager's schedule 문제가 동시에 나타난다. 이전에 manager's schedule 문제와 micromanage 두 가지를 모두 구사하는 임원 밑에서 일하는 분과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그 임원은 매주 월요일마다 모든 팀들과 연이어서 끝없는 주간회의를 하시는 분이었다. 팀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첫 팀만 제시간에 시작하지 뒤쪽 팀들은 한두 시간은 예사로 딜레이 되고 저녁도 못 먹고 대기한다. 월요일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으로 주간회의에 들어가시던 그분은 매주 일요일 점심부터 속이 아프고, 일요일 저녁엔 피똥을 싼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micromanager가 될까?


에 따르면, 명확하게 일이 위임delegation 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가?

그 일의 제약조건(constraint)들은 무엇인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이 micromanager가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명확한 목표나 제약조건이 없다


모든 일에는 목표가 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일이 성공했는지를 어떻게 평가할지 명확해야 한다. 또 제약조건(constraint)들도 있다. 일을 하는데 주어지는 예산(budget), 가용한 인력부터 각종 중간 산출물들의 일정(milestone) 등이 제약조건으로 주어진다. 이러한 부분들은 명시적인 제약조건들이고, 암묵적인 제약조건이 붙는데 바로 회사의 원칙이다. 꼭 이 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응당 지켜야 하는 원칙들이 또한 제약조건 중의 하나가 된다.


위임을 할 때는 일의 목표와 제약조건들이 일을 위임한 사람(sponsor)과 일을 맡은 사람(owner) 에 처음부터 명확하게 공유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항상 align 되어 있어야 한다. 목표와 제약조건이 명확하고 서로 공유된 상태라면, 위임한 사람은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제약조건 하에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 나가는지 방법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시도하도록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위임한 사람을 sponsor로 부르는 이유는 owner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면서 그 외에는 정말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것이 위임한 사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목표와 제약조건이 불명확하면 자꾸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에 집착하게 된다. 일을 시작할 때 제대로 공유가 안된 '무엇을'은 일이 끝날 때쯤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동안 상사 입장에서는 부하가 무엇을 해올지 불안하다. 그럴수록 '무엇을(목표와 제약조건)'에 대해서 소통해야 하는데, 상사 자신도 그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자꾸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떻게'를 보려고 한다.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표와 제약조건은 일을 맡긴 사람(sponsor)과 맡은 사람(owner) 간에 구체적으로 공유하고 align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sponsor는 머릿속에 그림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 그림이 필요한 이유는 owner가 도움을 청할 때 같이 고민하고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너무 구체적으로 owner에게 알려주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그 일을 풀어 나갈지는 owner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Sponsor가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알려줘 버리면 owner는 그 안에 생각이 갇힌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윗사람이 이야기한 내용으로 경계가 쳐지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지 않고, 혹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했다'라고 변명할 거리까지 주어진다.


더 큰 문제는 점점 더 VUCA(volatile, uncertain, complex and ambiguous) 해지는 시대에 상사가 생각하는 방식이 맞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그렇게 하면 되던 방식이 이제는 아닐 수 있다. 목표와 제약조건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공간을 열어줘야 하는데 자기 방식에 집착하는 micromanager는 그 가능성을 닫아 버린다.

 



목표와 제약조건을 자세히 공유하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줘야 하는데, 우리는 보통 그 반대로 한다. 나만해도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어느 특정 페이지를 두고 '이런 페이지를 만드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들어갈 분석을 해달라'는 식으로 일을 부탁할 때가 많다. 전체 보고서의 목적이나 제약조건은 무엇인지, 그 페이지는 무슨 메시지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등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어떤 분석이 필요한지만 부탁하는 식이다. 근본적으로 '일의 전체적인 모양은 나만 알면 되고 팀원들은 내가 시키는 부분만 해오면 된다'라는 마인드가 깔려있으면 micromanager가 된다. 팀원들은 전체 모양을 모르니까, 내가 시키는 모양 그대로 해오지 않으면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퍼즐 모양을 정교하게 맞춰서 가져오도록 계속 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체 모양을 보여주고 조각을 나눠가지면 된다.



위임 vs 방임


어떤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는 것을 심성모형mental models이라 한다. 위에 설명했듯이, 위임은 심성모형은 머릿속에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owner가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을 남겨주는 것이다. 이 심성모형은 최종적인 결과물의 모양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개념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1등의 습관(찰스 두히그)'을 보면 추락 위기의 두 비행기에서 조종사들이 '제대로 나는 비행기의 각종 지표들에 대한 심성모형'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단어는 조금 다르지만 'An Everyone Culture'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언급되는데, 정신 성숙도Mind Complexity의 두 번째 단계인 자기 통제적 정신Self-authoring Mind는 주변 환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을 가진 단계고, 그다음 단계인 자기 변혁적 정신Self-transforming Mind는 자신의 관점을 갖되 그것에 갇힌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나 자기의 관점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outdated 되어 바뀌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신 단계이다. 같은 개념을 국내 뇌과학 권위자인 정재승 교수님은 자기 객관화라고 표현하며,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의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즉, micromanager들은 일의 진행 과정과 산출물에 대한 심성모형mental model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의 관점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갇힌 자기 통제적 정신self-authoring mind 내지는 자기 주관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의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어야 하는 control freak 들이다.


반면 일을 시작하는 시점에 심성모형 자체가 없는 상태로 일을 넘기는 것은 위임이 아니라 방임이다.


컨설팅/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말로만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 설명해놓고, 설명대로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 가져가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라고 손을 많이 대는 상사를 간혹 만나게 된다. Storytelling은 잘하지만 그 story를 머릿속에 visualize 하는 것이 약한 사람이다. 더 안 좋은 case는 story 자체가 없는 경우인데, 이 정도가 되면 그 상사는 '무능력'한 상사다.


Micromanager를 굳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자면, 처음부터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며 통제하는 유형과, 처음엔 아무 제약조건도 없는 것처럼 '마음대로 해봐' 식으로 방임하다가 초안을 보여주면 그제야 전부 고치는 유형이 있다. 후자가 위험한 것은 본인은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좋은 상사이고, 부하들이 내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본인이 결국 손을 대게 되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다. 목표와 제약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봐' 하는 것은 곧 전면 재작업을 불러온다. 일의 초반에 본인이 고민해서 명확히 하면 될 것을 manager의 직무유기로 모두가 고생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도쓰카 다카마사)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일하는 습관이 있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상사에게 새로운 일을 추가로 받으면 지금 하던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하지 말고 10분만이라도 새로 받은 일을 시작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상사가 시킨 일의 산출물이 어떤 모양일지를 종이에라도 그려본 뒤, 그것이 맞는지 상사와 바로 확인해 보는 습관은 상사가 심성모형이 있든지 없든지 (없으면 특히!) 생산성에 큰 도움을 준다. 심성모형이 있는 상사라면 owner가 가져온 산출물과 본인의 심성모형을 바로 비교해볼 수 있고, 심성모형이 없던 상사라면 owner가 가져온 것을 보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시킨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상사에게 보여준 산출물이 기대했던 모양과 전혀 다를 때가 최악의 상황인데, 이러한 습관을 통해 상사의 기대와 다른 산출물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Micromanager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스스로 micromanager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관리자로써 일하는 법을 배우자


높은 임원 분이 micromanage 하는 경우도 많지만, 의외로 많은 경우 팀원에서 갓 관리자가 된 사람이 micromanage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직접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능한 팀원이었을수록 manager가 되면 팀원들의 산출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저기 고치거나 아예 직접 해버리게 된다.


리더십 이론 중에 멍키(monkey)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업무들을 내 어깨에 매달린 멍키라고 생각하자. 조직에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어깨 위의 멍키는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엔 내 어깨의 멍키들을 하나씩 부하들에게 나누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나누어준 멍키 중에 제대로 케어 받지 못한 녀석들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자기가 직접 그 멍키에게 먹이를 주거나 멍키를 다시 자기 어깨로 옮겨오면 안 된다. 부하들이 멍키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울 때까지 멍키가 죽지만 않게 지금쯤 먹이를 줘야 한다고 사인만 보내고 자기가 직접 하려는 충동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그 부하도 멍키 기르는 법을 알게 된다. 모든 멍키를 자기가 직접 먹이고 자기 어깨에 지려는 사람은 절대 일정 수준 이상의 멍키를 관리할 수 없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원칙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자


제약조건에는 예산과 인력, 일정 같은 명시적 조건들도 있지만, 조직의 원칙 또한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했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조직의 원칙에 구체적으로 담겨있고, 그러한 원칙이 그저 벽에 걸린 좋은 문구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 무언가 토론할 때 인용된다면 그러한 조직에서는 sponsor와 owner가 방법론에 대해 세세하게 논의하지 않아도 비슷한 심성모형을 그릴 공산이 크다.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정의해서 일의 품질을 높이는 방식을 프로세스 기반 경영Process-based Management라 하며, 원칙을 제대로 세움으로써 일의 품질을 높이는 방식을 원칙 기반 경영Principle-based Management라 한다. 원칙이 제대로 살아있지 않은 조직은 프로세스로 밖에 관리할 수 없다.


삼성은 대단히 특이한 조직이다. 프로세스 기반 경영의 화신과 같은 조직인데, 반면 조직의 원칙이 정리된 정도는 놀랍도록 취약하다. 프로세스 기반 경영을 하면서도 삼성엔 micromanager가 많지는 않다. 프로세스 관리를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니냐고? 통제의 주체가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바뀌었을 뿐 owner 입장에서 업무의 자유도가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삼성도 변화하려 하고 있지만 자율적인 조직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반면 얼마 전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우아한형제들은 수직, 수평이 아닌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합니다

‘자유’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입니다.
‘규율’이란 질서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 놓은 행동의 준칙이 되는 본보기입니다.
‘자율’이란 자신의 욕망이나 남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원칙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규율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의 원칙과 규칙을 세워 일할 수 있는 자율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의 사소한 규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Owner가 조직의 원칙 안에서, 그리고 스스로 세운 원칙 안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sponsor는 믿고 일을 위임할 수 있다. 만약 업무를 위임할 때마다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조직에 일에 대한 원칙이 제대로 정의된 적이 있는지 돌이켜보자.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자


상사 입장에서 항상 마음에 드는 팀원들하고만 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채용을 잘못했든, 다른 팀에 있던 사람을 잘 못 받아왔든, 믿고 맡길 수 없는 사람에게 일을 위임할 수는 없다. 아무리 위임이 중요하다고 해도, 능력이 명백히 부족하거나, 태도가 잘 못된(원칙을 안 지키는) 사람들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기면 안 된다. 섣불리 맡겼다간 '역시 위임하지 말고 내가 직접 챙겨야 되는구나' 편견만 생기고 스스로 micromanager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차라리 솔직하게 상황 설명을 하는 것이 낫다.

이번 일을 맡겨주고 싶지만 아직은 이러이러한 부분이 걸린다.

이번엔 내가 이 일의 owner가 될 것이며, 당신은 나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러이러한 부분이 언젠가 보완된다면, 그때는 당신에게 owner 역할을 맡기고 나는 sponsor가 되어주겠다.


쿨한 척하며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방임했다가 나중에 가서 서로 감정 상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일을 위해서나 그 사람을 위해서나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위임은 항상 코칭과 함께라는 것을 기억하자


원래 위임의 원칙은 '맡기지 말든지, 맡겼으면 믿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섭하지 않는 것이 관심을 끊고 일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멍키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일을 남에게 위임을 했으면 그 사람이 owner가 되고 나는 sponsor가 된다고 표현한다. Sponsor가 owner를 지원하는 방식이 바로 코칭이다.


Owner의 능력을 어느 정도 믿고 일을 맡겼겠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능력을 조금 벗어나는 일 일수 있다 (누군가를 성장시키려면 이러한 난이도의 일을 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owner가 어딘가 막혀있는 듯한 순간에 (멍키가 죽기 전에) 코칭을 통해 개입을 해줘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어떤 입장으로 개입할 것인가이다. 내가 지금 sponsor로써 조언(advice)을 해주는 것인지, manager로써 피드백(feedback)을 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적절한 시점의 조언들은 듣는 사람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만, 간섭과 지시로 잘못 받아들여지면 스스로를 실패했다 여기거나, 이 멍키는 더 이상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멍키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스스로 인정하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팀장님이 이 글을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Ron Ashkenas는 Harvard Business Review에 micromanagement에 대한 article을 올리면서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댓글로 달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100여 개의 댓글에는 micromanagement의 피해자들만 있고 자기 스스로 내가 micromanager인 것 같다고 고백한 사람은 단 두 명 있었다.


피해자들은 어디에나 널려있는데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micromanager일까? 사실 우리 모두는 micromanager의 성향을 일부 가지고 있다. 자기가 manager라면, 지금 내 팀원들이 나를 micromanager라고 1%라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라.


나부터 고백하자면 나도 일을 처음 배울 때부터 상사가 종이에 그린 dummy pack을 보고 차트를 그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지금도 특히 누구에게 차팅을 부탁할 때는 원하는 아웃풋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편이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내가 주문한 레이아웃과 다른 차트가 나오면 뭔가 불편하다. 심지어 나는 성격 테스트상 완벽주의자 성향도 있어서, 아마 예전 내 팀원들은 나를 까다로운 상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당신의 부하들은 당신의 관리 성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글과 세트인 글이 있는데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Micromanage가 필요할 때 (brunch.co.kr)


피해자로써, 그리고 가해자로써 겪었던 micromanagement에 대해 댓글에 공유해 주세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조직생활 동안 저는 항상 '상사 복' 만큼은 타고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를 키워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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