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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고기 500원어치 주세요!

by 해피연두

브런치에 음식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먹는 거라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정도로 좋아하지만, 직접 만드는 음식이라면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나'이다.

하기 싫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 '엄마'라는 역할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꾸역꾸역 부엌에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했던 요리,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보다는 남편이나 나의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로 쓰게 된다.

지금까지 엄마가 계셨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엄마와 이별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엄마가 계셨다면 나의 글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대화도 하면서 더 많은 소재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요리 레시피도 전수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먹어보고 싶었던걸 해달라고 졸랐을 수도 있고,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결혼한 지도 20년이 되어가니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기억도 점점 가물거리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되살려볼 수 있으니 브런치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음식들이 참 많겠지만, 아쉽게도 많이 먹지 못했던 음식도 있다.

바로 "돈가스"


아주 아주 어릴 적 초등학생인 나는 엄마 심부름으로 정육점에 갔었다. 엄마에게 받은 금액은 500원 정도.

"아저씨, 돈가스 고기 500원어치 주세요!"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셨지만, 이내 고기를 주셨다.

어린이 손바닥만 한 고기 한점.

돈가스를 만들기 위해서 고기에 살짝살짝 칼집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기계를 통과한 한 점의 작은 고기가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없는 가격의 돈가스 고기를 달라고 한 나에게 별 말없이 웃으면서 고기를 준 아저씨에게 감사하다. 너무 적은 금액이라서 팔 수 없다고, 엄마 불러오라고 야단을 쳤다면 난 울어버렸을 것이다.

그 고기를 가지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내밀었다. 고기를 보고는 난감해하는 엄마가 생각난다. 아마도 엄마는 나에게 돈가스가 아닌 다른 용도의 고기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던 것 같다.

그런데 심부름을 가는 사이에 왜인지 나도 모르게 '돈가스고기'로 그 생각이 변해버렸고 엉뚱한 고기를 사 오는 걸로 끝이 나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하게 '돈가스가 먹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아쉬운 건 그 500원어치의 고기로 돈가스를 해먹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4인가족이 먹기에는 아이 손바닥만 한 고기한점은 양이 너무 적었다. 그 작은 고기로 돈가스를 해 먹는 것보다는 다른 걸 해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날 식탁에는 돈가스가 올라오지 않았다.

예전과 지금과 물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500원으로 돼지고기를 사서 돈가스를 해 먹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었다.


지금이야 돈가스를 먹고 싶으면 아주 쉽게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마트에 가면 냉동 돈가스들이 종류별로, 회사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골라 먹을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돈가스를 튀겨서 파는 곳도 있어서, 핸드폰으로 주문만 해두면 따끈따끈한 돈가스를 금방 사서 먹을 수 있다. 또 돈가스 전문점도 있어서 더 고급지고 다양한 맛의 돈가스도 먹을 수 있다.

돈가스뿐만 아니라 생선가스, 치킨가스, 치즈 돈가스등등 비슷하고도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 돈가스들을 먹을 때면 가끔은 나의 500원 돈가스가 생각이 난다.


500원 돈가스 이후에도 엄마는 돈가스를 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돈가스를 먹는 게 소원이었다. 분식집에 가면 커다랗고 동그란 접시에 양배추, 단무지, 밥과 함께 있는 돈가스사진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맛이 있을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자 한 번은 엄마가 큰 마음을 먹고 돈가스를 준비하셨다. 돈가스 사진과 비슷하게 준비하고 싶으셨는지 동그란 접시에 준비된 돈가스였다. 하지만 반은 양배추! 반은 고기! 였다. 같이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 엄마의 말에 돈가스와 양배추를 하나씩 섞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의 돈가스와 같은 소스는 없었다. 그냥 튀긴 고기와 양배추였는데도 난 아주 만족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야 나의 돈가스 노래는 끝이 났다.


내가 돈가스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을 훌쩍 지나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쯤으로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해 먹는 돈가스가 아닌 주로 음식을 사 먹을 때 접할 수 있었다. 한 손에는 포크, 다른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왕 돈가스를 썰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육즙이 가득 담긴 일식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물면서 엄마생각도 난다. 이제는 나도 돈가스를 만들 수 있다. 우리 가족이 다 먹을 만큼의 넉넉한 돼지고기도 준비하고, 새 기름도 준비할 수 있다. 아니지.. 유명한 돈가스 전문점에 예약을 해두고, 입에 맞는 다양한 소스를 찍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음 한편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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